김정남의 페이스북 계정.
독극물 스프레이로 살해 추정, 첩보영화 같은 사건
모친 성혜림, 김정일의 동거녀… 정식 부부 아냐
컴퓨터·외국어 능하고, 한국 드라마·음악 즐겨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북한 정권의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47)이 피살됐다. 지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출국 수속 중 의문의 사람들과 접촉 후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숨졌다.

이에 김정남 살해 배후부터 살해동기, 그의 가족들 생존 여부까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 백두혈통(김일성으로부터 내려오는 북한 세습 권력의 가계)의 장자임에도 승계에서 밀려나 망명 생활을 해온 김정남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돌아본다.

지난 13일 오전 9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공항에서 마카오행 비행기 표를 끊기 위해 탑승권 발매기 앞에 서있던 김정남에게 2명의 여성이 접근했다. 현지 다수의 언론에 따르면 한 여성이 뒤에서 그를 붙잡았고, 나머지 한 여성이 그의 얼굴에 스프레이를 뿌렸다.

일부 언론은 정체불명의 천으로 김 씨의 얼굴을 덮었다고도 보도했다. 이어 김정남은 호흡곤란 증세와 가슴 부위 통증을 호소하며 안내데스크로 갔고, 병원으로 이송 도중 숨졌다.

폐쇄회로카메라(CCTV)를 통해 용의자로 지목된 두 여성은 현지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이 여성들은 각각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여권 소지자로 밝혀졌고 김정남 살인을 의문의 남성들로부터 청부 받았다고 진술했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여성들의 증언과 CCTV 자료를 바탕으로 추가로 4명의 남성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다수의 현지 언론에 따르면 남성 4명 중 한 명은 북한 사람인 것으로 밝혀졌다. 첩보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번 피살사건으로 김정남의 불운한 일생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정남은 1971년 평양에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영화 배우 성혜림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백두혈통을 이은 적장자로는 인정받지는 못했다. 모친 성혜림이 리평과 결혼한 유부녀로 우연히 김정일 눈에 들어 동거를 하게 됐고 그사이에서 김정남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성혜림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모스크바로 쫓아내기까지 한다. 그 후 성혜림은 타지에서 30년 가까이 지내다 2002년 병사했다.

적장자로 인정은 못 받았으나 김정남은 한때 후계자로 불릴 만큼 김정일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십대 후반부터 구 소련의 모스크바를 거쳐 스위스 제네바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스위스 제네바대학교는 2006년 ‘세계100대 대학’ 안에 들 정도로 인재들이 모이는 곳으로 신학과 법학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김정남은 대학 재학시절 정치외교학보다 ‘컴퓨터광’이라 불릴 정도로 IT에 높은 관심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대학시절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세계 각국의 문화와 음악 등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일부 언론에 따르면 그는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SNS)를 최근까지도 사용했다. 김정남은 컴퓨터뿐 아니라 다양한 외국어도 능수능란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그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까지 구사하며 남한 말투를 썼다고 한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온 그는 김정일의 권유로 각종 국가 요직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1995년 인민군 대장 계급을 받았다. 당시 김정일이 직접 그가 입을 군복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어 김정남은 ‘북한의 IT 정책실’이라 불리는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끌었다.

하지만 얼마 후 이모인 성혜랑이 미국으로 망명하며 그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또 그가 가진 개혁·개방주의 사고도 그를 후계구도에서 멀어지게 했다.

김정남은 당시 북한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를 거침없이 표명했다. 그러던 중 2001년 4월 도미니카공화국의 위조 여권으로 일본에 밀입국하려다가 적발돼 김정일의 눈 밖에 나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후계구도에서 멀어짐을 감지한 듯하다. 이는 고미요지 도쿄신문 기자와 김정남이 주고받은 메일을 엮은 책 <안녕하세요 김정남입니다>에서 알 수 있다.

그는 “유학을 떠난 뒤로 이복형제들인 정철·정은·여정이 태어나며 부친의 애정도 그들에게 쏠렸다”며 “내가 유학을 통해 완벽히 자본주의 청년으로 성장해 북한에 돌아가자 부친은 이미 나를 경계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밀입국 실패로 중국으로 추방된 김정남은 주로 2002년부터 중국과 마카오에 머물며 무기 수출 총책임자로 활동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관리하는 조선노동당 39호실 책임자 역할을 했다.

그는 김정일이 2011년 사망하기 전까지는 ‘김 철’, ‘존(John)’ 등 가명을 사용하며 세계 곳곳을 자유롭게 다녔다. 김정남은 2008년 김정일이 뇌경색으로 쓰러지자 직접 프랑스로 날아가 지인을 통해 아버지를 치료할 의사를 데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김정일이 회복해 업무에 복귀하고 본격적인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로 후계가 굳어지자 김정남은 신변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홍콩의 한 신문사에 따르면 김정남의 10년지기 지인은 “김정남이 아버지가 아프면서부터 자신이 위험하다는 것과 이복동생 김정은이 자신을 위협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또 이어 이 지인은 “김정남은 종종 김정은이 집권한 후부터 자신의 인생은 ‘덤으로 주어진 것’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기억난다”며 “공포에 질리거나 과도하게 몸을 사리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 같았다”고 덧붙였다.

2009년 사실상 후계자가 된 김정은이 적자인 김정남에게 전면적인 공격을 가했다. 김정은은 우암각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갖고 있던 북한 내부의 김정남 측근들을 모두 잡아다 조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김정남은 일본 도쿄신문을 통해 북한 김 씨 일가의 3대 세습을 반대하는 입장을 강력히 표명했다. 하지만 그 후 그는 몇 차례 암살 시도로 신변의 위협을 느껴 거처를 싱가포르로 옮기고 점차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2012년 북한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살아남았고, 지난해까지 중국의 비호 아래 마카오, 북경, 동남아 일대를 다니며 생활 한 것으로 알려진다.

김정남 살해 배후와 동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한다. 먼저 김정은이 집권 후 북한 권력 2위인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한 것처럼 5년이 지나 자신의 체제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하기 위한 조처로 적장자인 김정남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산케이 신문이 밝힌 복수의 정보원에 따르면 최근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외국에 김정은의 친족을 옹립해 망명정권을 수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북한 당국이 국외에 거주하는 김정은 친족에 대한 감시·경계를 강화해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북한을 떠나온 지 오래돼 북한 사람들 뇌리에서 잊혔다고 봐야 한다”며 “따라서 그는 이미 집권 5~6년이 넘어가는 김정은에게 대적할 상대가 아니다”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일부 외신은 최근 김정남이 미국이나 한국으로 망명을 할지도 모른다는 정황이 포착돼 김정은이 이를 막기 위해 그를 살해했다고 보도했다. 한국일보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미 프랑스·미국 등에 2012년 망명을 시도하면서 거액의 몸값을 요구한 전례가 있다.

또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남이 김정은과 해외자금을 가지고 거래를 하다가 틀어지자 살해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김정남과 최근까지 친했던 지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다른 나라로 망명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또 전문가들은 그가 아버지 김정일 생존 당시 거액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점을 고려하면 김정은과 자금을 가지고 모종의 거래를 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김정남의 신변에 문제가 생기자 그의 가족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피살되기 전까지 2명의 부인, 자녀들과 중국에서 생활했다.

첫째 부인 신명희와 아들 금솔은 중국 북경에, 둘째 부인 이혜경과 아들 한솔과 딸 솔희는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부 언론들이 그들이 거주하는 곳에 찾아가봤지만 이미 그들은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행방이 묘연해진 그들을 걱정하는 시선이 많았으나 지난 15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들 모두 현재 중국 당국이 보호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특히 아들 김한솔은 프랑스에서 유학할 당시 김정은과 북한 체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어 몇 해 전부터 북한 정권이 눈여겨보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한편 이번 피살 사건으로 인해 북한 내부의 김정은 주변 인물들과 친척들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KBS의 지난 17일 보도에 따르면 김정남 피살 사흘 전, 지난 10일 중국 북경공항에 김정은과 5촌 이내의 친척 일가족이 도착해 한국으로 망명할 것을 요청했다.

이들은 김정은 집권 후에도 죽은 김 씨와 자주 교류를 하며 북한과 중국을 오갔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죽은 김 씨 신변에 이상기류가 흘러 일가족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탈북한 김정은의 5촌 일가족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정 대변인은 김정남의 청부살해 가능성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사건조사 결과가 발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에 대해서 지금 언급하는 것은 성급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남동희 기자  donghee070@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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