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도 상승에 제격 vs 이미지 정치 그만

잠룡들, 앞다퉈 ‘예능 러쉬’…친근감 부각·방송사와도 ‘윈윈’
‘이미지 메이킹’ 전락 우려…본격 검증 토론에 집중해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조기 대선판’에 예능 바람이 불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여야 할 것 없이 TV 예능 프로그램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비교적 덜 무거운 시사·교양 프로그램이나 종합편성채널을 중심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 모바일 방송에까지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 TV에 자주 출연해 쌓은 인지도를 적극 활용하는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politics와 연예인:entertainer의 합성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엄중한 이미지의 정치와 가벼운 이미지의 예능 사이에서 전략적 줄타기를 하고 있는 대선 주자들의 명암을 짚어봤다.
 
정치와 방송의 만남, 대선 주자들은 방송에 출연함으로써 자신을 최대한 ‘영업’하고, 방송은 대선 주자들이 화제성 있는 ‘흥행 보증수표’라는 점에서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 서로 ‘윈윈(win-win)’인 셈이다.

여기에 방송 출연은 ‘가성비’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다. 방송에 출연하려면 녹화를 위해 4~8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이는 일정 2~3개를 소화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1번의 방송 출연으로 국민들과의 비대면 접촉을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 대비 효과가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연성화된 시사·교양 프로그램이 대세를 이루면서 정치인들은 무거운 정치 이야기를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자신의 철학과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아울러 본인의 개인사와 함께 가벼운 질문까지 다룬다는 점에서 친근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한다.

또 예능 프로그램 등은 사전 녹화와 편집, 선을 넘지 않는 질문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으며, ‘띄워주기’ 측면이 있는 것도 대선주자들이 선호하는 이유로 꼽힌다.

 
SBS TV 화면 캡쳐
    후발 주자들 출연 잇따라
안희정·이재명 가장 많은 편

 
이 같은 전략적 장점이 있다 보니 대선주자들의 ‘예능 러쉬’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후발 주자들의 출연이 활발하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와 이재명 성남시장은 주자들 가운데 출연 빈도가 가장 높은 편이다.

안 지사와 이 시장은 SBS ‘대선주자 국민면접’, JTBC ‘말하는대로’를 비롯, 독립언론 뉴스타파에서 진행하는 술자리 토크 형식 프로그램 ‘뉴스포차’에도 출연했다. 또 안 지사는 ‘강적들’(TV조선), 이 시장은 ‘썰전’(JTBC)에도 각각 출연했다.

이들은 TV가 아닌 모바일에서만 볼 수 있는 인터넷 방송 ‘양세형의 숏터뷰’(SBS)에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지사 측 관계자는 “TV만큼이나 모바일에 익숙한 2030세대에게 더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인지도 상승 효과도 톡톡히 본 모습이다. 숏터뷰의 유튜브 조회 수는 약 92만(안 지사), 109만(이 시장)을 기록했다. 두 사람의 출연이 화제를 모으자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 측도 출연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좀 더 파격적인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고심 중인 주자들도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혼자 사는 주인공이 본인의 생활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나 혼자 산다’(MBC) 출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8월 합의이혼한 남 지사는 본인의 이혼, 자식 문제에 대해 여과 없이 밝히고 싶어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자유한국당 원유철 의원은 어촌에서 생활하는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삼시세끼’(tvN) 출연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네 큰형 같은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게 원 의원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하나의 예능 프로에서 유력 대선 주자들이 ‘한 자리’에 모인 광경을 볼 가능성도 있다. KBS의 대표적 예능인 ‘해피투게더’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 지사, 이 시장, 유 의원이 동반 출연하는 ‘대선주자 5인 특집’을 기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만약 성사된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인 만큼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흥밋거리 치중 비판
진짜 정책 검증 나서야

 
하지만 이러한 정치 예능이 대선 주자들을 가십과 흥밋거리 얘기로 포장하고, 주자들은 이를 ‘이미지 메이킹’에만 주력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국가를 이끌 지도자를 뽑는 선거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우선되는 게 아닌 ‘이미지 정치’로 전락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다.

이 때문에 대선 주자들에 대한 진짜 검증 무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민이 직접 검증한다는 컨셉트로 기대를 모았던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패널 논란에서부터 기대 이하의 압박 면접, 예능화됐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문 전 대표의 경우 각종 시사예능에 출연하면서 인지도는 끌어올렸지만, 당내 후보 등록을 늦게 해 ‘토론 회피’ 논란을 샀다. 이에 문 전 대표 측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선보다 탄핵’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나, 대선은 후(後)순위라고 하면서 각종 예능에는 출연하는 것이 모순적이란 비판이 나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엄중한 시국에 대선 주자들이 앞다퉈 이미지 정치에만 몰두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제는 각본 없는 토론회를 통해 본격 정책 검증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방송사들도 이제 시청률 장사보다는 제대로 된 검증 토론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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