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시작했다가 악(惡)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뉴시스>
성매매에 사기·폭행까지…청소년 안전 ‘빨간불’
미성년자 성범죄 급증…당국은 ‘사후약방문’식 대처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스마트폰 채팅 어플리케이션이 성매매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 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X톡·OO톡’ 등 불특정 다수와 무작위 만남을 주선하는 프로그램 ‘랜덤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뿐 아니라 사기, 강간 사건까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랜덤채팅 앱의 허술한 실명 확인 절차나 성인 인증 등은 미성년자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제재해야 할 사정 당국과 정부도 ‘사후약방문’식 대처에 그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1. 미성년자 A양은 지난해 3월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을 통해 B씨(26)를 처음 알게 됐다. A양은 익명의 공간에서 주고받는 대화에 심취해 조금씩 경계심이 느슨해졌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손과 발 사진을 교환했지만, 나중에는 알몸 사진까지 보내고 말았다. 이 때문에 A양은 협박을 받다가 성폭행을 당했다.
 
#2. 성매매 알선 업주 C씨(31)는 2015년 9월 스마트폰 랜덤채팅 앱에 ‘한 달에 500만 원 벌 수 있다’는 글을 올리자 이내 답장이 왔다. 돈이 궁했던 D군(17)과 E양(16)이었다. 이들은 처음에 성매매 관련 일인 줄 모르고 C씨의 꼬드김에 넘어갔다. D군와 E양은 주위 학생들을 끌어모아 성매매를 알선하는 ‘중간 포주’로 일하게 됐다. C씨는 D군의 지인인 중학생 F양(15) 등 가출 청소년 3명을 데리고 전라도 일대를 돌며 100회 가량 성매매를 주선했다. 모두 랜덤채팅 앱을 통해 성매수 남성들을 모집했다.
 
채팅 앱으로 인한 폐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채팅 앱을 통해 성매매를 비롯, 성폭행, 성매매 알선까지 범죄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스마트폰 채팅 앱이 또 다른 범죄 창구가 되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광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단속한 성매매 34.3%(282건 중 97건)가 스마트폰 채팅 앱을 이용한 성매매였다. 성매매 3건 중 1건이 채팅 앱을 통한 성매매인 셈이다. 2015년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가 6.7%(10건), 2014년 4.8%(9건)에 비하면 지난 1년 사이에 급증했다.

채팅앱을 통한 성매매가 급증하면서 청소년들의 성범죄 노출 위험도 커졌다. 채팅앱 성매매를 하다 적발된 청소년이 2014년엔 6명, 2015년 5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23명으로 크게 늘었다.
 
청소년 10명 중 1명
‘채팅 앱’ 즐겨 해

 
상황이 이런데도 청소년들에게 랜덤채팅 앱은 인기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스마트시대 대중 매체를 통한 청소년의 성 상품화 대응 방안 연구(2015)’에 따르면 전국 중고교생 4189명 중 14.2% (594명)가 스마트폰에서 애용하는 프로그램으로 ‘랜덤채팅’을 선택했다.

랜덤채팅 앱에 가입해 자신을 여성 미성년자로 설정해 놓으면 가입하자마자 순식간에 조건만남을 암시하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현실이다.

실제 대표적인 랜덤채팅 앱 ‘X톡’에 기자를 20세 여성으로 설정하고 이 앱에 접속하자 5분도 안 돼 20~30대 10명이 넘는 남성이 대화를 신청했다. ‘만나용’, ‘능력있는 오빠 어때요 님’ 비교적 가벼운 인사에서부터 ‘토끼라 30초~1분이면 XX하는데 봐영’, ‘얼마에요?’ 등 노골적으로 성적 만남을 요구하는 남성도 있었다.

이 앱은 닉네임, 성별, 나이, 주제(지금 만나요·애인이 필요해요 등)를 입력하면 별도의 실명확인이나 특별한 가입절차 없이 채팅이 가능하다. 이 같은 채팅 앱은 사기·강간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지는 탓에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성매매를 이용해 남성의 돈을 뜯어내거나, 성매매를 조건으로 만난 여성을 폭행·강간하는 식이다.

지난달 24일 부산에서 김모씨(36)는 채팅 앱을 통해 여성에게 성매매를 약속한 뒤 돈을 뺏으려다 실패하자 강간한 혐의로 구속됐다. 미성년자들도 강간을 당하거나 특히 가출 청소년들에게 강제로 조건만남을 시키는 ‘사이버 포주’까지 생겨나는 실정이다.
 
선제적 대응
현실적 벽 부딪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랜덤채팅 앱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채팅 앱 ‘사후’ 심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성매매를 연상시키는 단어만으로는 게시자에 대한 제재는커녕 게시글 삭제조차도 어려운 현실이라고 한다.

‘사전’ 심의를 하려면 타인의 사적인 대화 내용을 감청해야 하는데 이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소지가 있어 현실적으로 무리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 애플 등 앱 마켓을 운영하는 글로벌 사업자들에게 자발적으로 불법 앱에 대한 삭제를 요청하고 있지만, 여전히 관련 앱을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는 실정이다.

경찰의 단속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온라인에서 성매매 알선 등은 실체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성매매의 경우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한데 함정수사가 위법 소지가 있는 데다 관련 내용을 온라인에서 확인하고 수사를 하더라도 처벌되는 사례는 미미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앱 가입 시 최소한의 개인정보를 입력토록 해야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죄자들이 랜덤채팅 앱 특성상 익명성 뒤에 숨어서 불법 게시물을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랜덤채팅 앱을 아예 ‘청소년 유해 매체’로 지정하는 것도 방법이다. 성인채팅 사이트처럼 주민등록번호 입력 등 성인인증을 받아야만 가입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김동복 남부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랜덤채팅 앱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인증 과정을 만들고, 강력 범죄로 이어지면 앱 폐쇄와 같은 제재와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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