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亡國)의 군주로 중국 하(夏)나라에 폭군(暴君) 걸왕(桀王)이 있다면, 은(殷)나라엔 주왕(紂王), 주(周)나라엔 유왕(幽王)이 있다. 유왕은 미녀 포사(褒姒)를 후궁으로 들이고 난 뒤 웃지 않는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여산(驪山) 별궁에서 가짜 봉화(烽火)를 올리게 했다. 봉화를 본 제후들은 도성에 적이 침입한 줄 알고 군사를 이끌고 밤새 달려왔지만, “별일 아니니 돌아가라”는 유왕의 말을 듣고 수차례 허탕을 치고 돌아갔다.

이후 제후들은 유왕의 말을 가볍게 여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적국(견융)이 쳐들어왔을 때 다급해진 유왕은 봉화를 올렸지만 단 한 사람의 군사도 달려오지 않았다. 결국 유왕은 여산 기슭에서 살해되었고, 포사는 사로잡혀 견융의 여자가 되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나타났다”는 거짓말은 많은 양을 잃은 것으로 그쳤지만, 유왕의 애첩을 위한 ‘가짜 봉화 놀이’는 자신과 나라를 파멸로 이끈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멀지 않아 폭군(暴君) 김정은도 유왕이나 양치기 소년의 운명처럼 될 것이다. 김정은이 지난 12일 ‘북극성 2형’ 시험 발사를 했다. 이는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로 기존의 미사일 발사와 그 차원을 달리한다. 사전 탐지 및 패트리어트 요격이 힘들어 한국군의 킬 체인(Kill Chain) 전략이 무력화될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방어를 위해선 사드가 빨리 배치돼야 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힘을 통한 평화’ 노선의 첫 시험대로 간주하고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면서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이 연이어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이복형 김정남을 독살했다. 북한 내부의 혼란 및 친위 쿠데타에 대비해 중국이 김정남을 보호하고 있는 것을 역습한 것이다. 전 세계가 김정은의 ‘살인통치 광기(狂氣)’에 경악하고 있다.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 기조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미 상원 청문회에선 ‘김정은 암살’까지 거론됐다. 마침 13일 북한 인권단체들이 김정은이 고모부 장성택을 고사총으로 처형(2013년)하고, 관련자 1000여 명을 집단학살·고문한 혐의로 헤이그 국제형사재판소(ICC)에 고발했다.

이제 정부는 인권단체와 국제사회와 협력하여 김정은이 ICC에 기소되도록 해야 하며, ‘북한 체제 전환’ 문제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이 암살(1997년)된 전례에 비추어 최근 망명한 태영호 공사 등 국내 탈북자들과 김한솔 등 국외 김정남 가족 신변보호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고 황장엽 선생은 생전에 “비무장지대(DMZ) 철책선에서 노루 한 마리만 뛰어도 신문에 나던 대한민국에서, 이제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쏘아대도 그 위험성을 말하는 정치인도 언론도 없다”며 안보 불감증을 개탄한 바 있다. 지금도 우리 정치권에는 절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천하태평이다. 포악하고 통제 불능인 김정은의 손에 핵과 미사일이 쥐어져 있는데도. 대선주자들이 국민의 안보 불감증과 안보 포퓰리즘을 앞 다투어 키우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리 없으며, 핵과 미사일은 협상용이거나 방어용이다”고 희망한다. 그러나 난세(亂世)일수록 안보태세를 재정비하고 강화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이 발의된 지 11년 만에 제정(2016.3)되고 시행(2016.9)됐다. 그러나 핵심기구인 ‘북한인권재단’이 민주당 몫 이사 4명이 없어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반(反)인권적 상황이다. 야당의 대북관(對北觀)은 더욱 위태롭다. 김정남 독살과 관련, 민주당은 “남북 정세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차분한 대처가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당은 “긴장관계가 발생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사드배치를 중국에 물어보고 하겠다는 ‘사대주의’ 발상처럼,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대북굴종(屈從)’ 발상이다. 촛불 세력의 안보관은 매국적이다.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퇴진운동’이 “사드 배치를 논의하는 한·미 고위급회담을 중단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의 안보관은 매우 위험하다. 2007년 유엔인권위의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을 할 때에 “북한 입장을 먼저 확인해보자”고 했다. 이는 자신이 친북성향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사드 배치는 차기 정부에서 결정하자”고 한다. 이는 사드배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의 조속한 재개”를 주장한다. 이는 북핵에 대한 국제공조를 파기하겠다는 발상이다. “당선된 뒤 북한을 가장 먼저 방문하겠다”고 했다. 이는 국민의 안보 불감증을 키우는 일이다. “군 복무기간을 1년까지 단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는 젊은 표를 의식한 전형적인 안보 포퓰리즘이다.

안보 포퓰리즘의 망령에 사로잡힌 잠룡들에게 묻고 싶다. 표만 보이고 나라의 안위는 보이지 않는가. 이번 신형 미사일 도발을 계기로 잠룡들은 대선레이스를 잠시 멈추고,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대선 전(前) 사드배치’를 합의해야 한다. 황교안 권한대행은 결집된 안보 의지를 북한·중국은 물론 세계만방에 알려야 한다. 미국 국민은 주한 미군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늦추면, 미국은 ‘한·미 동맹’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잠룡들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을 잊어선 안 된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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