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부대 죄증진열관 사진 1
세균전·생체실험 증거 전시, 관람객 “가해자 일본 공식사과 없어 분노”
뉴욕타임스, 731부대 만행 엄호한 미국의 ‘거래’ 재조명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정부는 지난 2015년 11월 6일 하얼빈(哈爾濱) 소재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으로 한국 여행업계 인사들을 초청해 역사 투어를 실시했다.

필자는 당시 ‘한·중 관광협력 설명회’의 일환으로 열린 이날 행사에 참가해 재개관한 731부대 죄증진열관을 돌아봤다. 일제시기 만주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세균전·생체 실험 증거를 전시하는 731부대 죄증진열관은 2014년 11월 임시폐관에 들어가 9개월간 보수공사를 벌여 2015년 8월 15일 재개관했다.

기존 벽돌건물 대신 부대 터 동쪽 1만㎡ 부지에 검은색 장방형 신관이 들어섰고 최근 2년간의 발굴작업에서 발견한 세균전 실험증거 2천500여 점을 전시물로 보강했다.
신관 앞 마당의 앙상한 나무 한 그루(실험 희생자를 상징한다)를 지나 입구로 들어서면 정면 벽에 ‘비인도적 잔학행위’라는 큰 글씨가 한·중·러·일 등 6개국어로 붙었고 왼쪽으로 돌아서면 전시실이다.

3층 규모의 죄증진열관은 731부대 설립 때부터 패전으로 철수할 때까지 부대 조직 자료, 생체실험 증거, 세균전 실험 증거, 철수하면서 은폐한 범죄 진상 증거 등 6개의 전시실로 구성됐다.

첫째 전시실에는 1930년대 중반 일본군이 히로히토(裕仁) 왕의 칙령에 따라 731부대를 만든 과정, 세균전 준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는지 등을 사료와 사진을 동원해 설명했다. 731부대 전 부대원들의 범죄사실 증언영상이 벽면에 설치된 TV로 방영되고 일본군이 작성한 실험계획서, 진행보고서 실물이 전시됐다.

부대는 1936년대부터 1945년까지 ‘방역’, ‘급수’의 명목으로 하얼빈에 주둔하며 세균 무기를 연구·제조했다. 페스트 벼룩을 연구하기 위해 대량의 쥐를 사육했으며 이 때문에 ‘쥐 부대’라는 별명을 얻었다며 페스트 실험에 관한 자료도 전시됐다.

다음 전시실엔 일본군이 세균무기의 살상력을 알아보기 위해 피해자들을 벌판 한 가운데 세운 기둥에 묶고 세균폭탄을 투하한 야외실험 모형과 실험보고서가 마련됐다.
산 사람을 대상으로 한 동상(凍傷) 실험, 독가스 실험 등 100가지가 넘는 실험종류가 나열되면서 일제 만행이 고발됐다.

‘특별이송’ 전시실에선 항일 독립운동가, 전쟁포로들이 731부대로 보내져 세균무기 개발 및 위력실험 등 생체실험 대상이 된 과정을 설명했다. 진열관 측은 “일본군이 헌병, 경찰, 정보기관 등을 조직적으로 동원해 항일투사들을 체포하고 범죄자로 몰아 생체실험 도구로 사용했다”며 “현재까지 신원이 확인된 피해자만 1천549명”이라고 밝혔다. 진열관 곳곳에 세균전과 생체해부 등에 사용된 방독 마스크, 비커, 도관, 주사기, 금속, 유리그릇 등이 전시돼 죄상을 보여줬다.

731부대 죄증진열관 사진 2
산 사람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해부실도 실제 해부실 사진과 함께 재현됐다.
진열관을 둘러본 한 여행사 대표는 “731부대의 죄상을 실감하기 어려운데 이곳의 잔혹한 실험증거를 보니 일본군의 비인간적인 행태가 똑똑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정의구현 시민연합 조대석 사무국장은 “범죄증거가 명백한데 전후 70년 동안 일본 정부의 공식사과가 없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아베 정권의 퇴행적 행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진열관 측은 전시관 입구 안내데스크에서 한국어 통역기를 제공해 한국인 방문객의 관람을 돕고 있다. 실내 전시관을 둘러본 관람객은 바깥으로 나와서 731부대 터의 유적을 살펴볼 수 있다. 일본군이 패전 직후 죄상을 감추기 위해 부대 내 80여 동에 달하는 건물 대부분을 폭파했으나 지하실험실 등의 잔해가 남았다.

생체실험 후 시신을 태운 보일러실 잔해는 죄증진열관의 대표적 이미지로 자리매김했고 보일러실에 물을 공급한 물탱크, 독가스 실험실 등도 있다. 1만5천㎡에 달하는 세균실험실 및 특수감옥에 대해서는 지금도 발굴작업이 진행 중이다. 죄증진열관 한 안내직원은 “재개관 초기 하루 4천~5천 명의 관람객이 찾았고 지금도 하루 평균 2천 명 정도가 꾸준히 방문한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는 2015년 10월 22일 ‘중국 침략 일본군 731부대 죄증(罪證)진열관’을 소개하면서 자국이 731부대의 생체·세균 실험 정보를 확보하는 조건으로 이러한 반인류적 범죄행위를 숨기고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을 면해줬다는 비판을 부각시켰다.

이 신문의 디디 커스틴 태틀로 베이징특파원이 쓴 진열관 방문기는 제목부터 ‘일본의 전시 죄악에 대한 미국의 엄호’라고 돼 있다. 종이 신문에 실리기 전 21일 이 신문의 중국특파원팀이 만드는 중국전문 블로그 ‘시노스피어(Sinosphere)’에 올린 기사의 제목은 ‘일본의 전시 잔악행위와 미국의 은폐에 대한 재조명’이라고 돼 있다.

이 기사는 특히 중국인 관람객의 반응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미국이 중국에 사과해야 하느냐는 어려운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고 전망해 눈길을 끈다. 이런 주장은 현재로선 대체로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 사이로 국한돼 있지만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더 커질 수 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특히 “(중국의 선전 차원이 아닌) 진지한 역사학자들과 생명윤리학자들 사이에서도 이 일(실험정보와 면죄부 거래)은 그 심각성과 인류에 끼친 해악 면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뉴질랜드 오타고대학의 진-바오 니 같은 이는 “도덕적인 면에서, (미국의) 가차없는 국익과 국가안보 추구 과정에서 이러한 은폐는 정의를 유린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는 법률적으로 보면 사후공범에 해당한다”고 그는 주장하고 “실용적인 측면에선, 미국이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미국과 중국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해 장기적인 국익에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코널대의 역사학자 마크 셀든도 “우리는 미·중 간에 수많은 긴장이 존재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언젠가는 그런 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그러나 현재 중국의 분노는 거의 전적으로 일본을 향해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731부대의 만행을 폭로한 책을 쓰기도 한 그는 미국과 일본 간 ‘거래’에 대한 중국 측의 주장이 “우리가 아는 한 정확하다”며 이시이 시로 부대장 등 731부대 관련자 아무도 처벌받지 않는 대신 미국이 여기서 얻은 생체실험 정보를 냉전시대 초기 자체 생물학전 프로그램에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가오위바오(高玉寶 진열관 주임과 인터뷰 내용을 별도로 소개한 블로그 기사는 ‘중국당국이 다른 나라들처럼 역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면이 있지만 역사적 자료 자체는 존중해야 한다’는 셀든의 견해와 ‘731부대의 세균전 연구에 관한 진짜 자료는 일본과 미국의 도서관들과 국립문서보관소에 있다’는 셀든과 공저자인 게이이치 츠네이시의 견해도 전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