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산단지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 출입로 봉쇄-주민들, 농장 등 삶터로 출입 못해

농장으로 올라가는 도로의 진출입로가 철문으로 막혀 40Kg이 넘는 짐을 지게에 지고 1Km의 산비탈길을 하루에도 서너번 왕복한다는 농장주 김모씨.

[일요서울 | 부산 전홍욱 기자] “정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30년 동안 멀쩡히 오가던 도로를 어느날 철문이 가로막았습니다. 자동차로 올라가야 할 농장과 밭에 무슨 수로 오갑니까? 저는 몇 달 동안 40Kg 이상을 지게를 지고 반대 산기슭으로 하루 서너번 왕복하고 있습니다.

허리도 다리도 이제는 버틸 수가 없어요. 병원 진단서를 받아 들었지만 그래도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 농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물들에게 사료를 줘야잖아요.”

산 정상으로 가는 도로가 막혀버려 할 수 없이 지게를 지고 농장을 오간다는 김모(55▪공무원)씨. 교통범칙금 한번 내지 않고 30년 넘게 공무원 생활을 해 왔다는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부산 관광산업의 중심이 될 동부산 관광개발사업이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한쪽에선 웃지못할 파행적 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동부산관광개발 사업의 하나로 건설된 18홀 회원제골프장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회장 구천서▪한반도미래재단 이사장)가 기존 주민들이 삶터를 오고가던 진입도로의 출입구를 철문으로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 출입구로 시작되는 도로를 통해 차를 몰아야 산 중턱과 정상에 위치한 농장과 밭에 이를 수 있다. 출입구의 철문이 닫히고 주민들이 통행을 하지 못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이후 일부 주민들은 결국 맞은편 산기슭 급경사 산길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오르막 산길은 일반인들에게도 등정이 쉽지 않은 자갈투성이로 길이는 무려 1Km에 달한다.

“모든 문제는 동부산관광개발 조성사업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이 사업으로 기장군 대변리 일대 ‘새마실 마을’ 토지 일부가 부산도시공사 측에 강제수용됐어요. 지난 2013년 도시공사측이 골프장에 부지를 팔고 건설이 시작되면서 예상치 못하게 산 정상의 농장 등으로 향하는 도로의 진출입로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 도로는 30년전부터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이다. 이후 주민들은 부산도시공사, 기장군청, 골프장 등에 민원을 제기했고 골프장 측이 진출입로를 만들기로 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했다.

“당시 골프장 측이 세 가지 진출입로 시나리오를 제시했지요. 도시공사, 주민, 골프장 측이 만나 현재의 진출입로를 선택했습니다.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 측은 이 합의안대로 지난 2014년 1월 경 골프장 한 쪽 끝에서 시작되는 진출입로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예전처럼 이 도로를 통해 농사를 짓고 농장의 동물을 돌봤다. 덕분에 골프장도 정문이 아닌 골프장 출입문을 하나 더 가지게 돼 관리동 직원들은 이 진출입로를 사용했다.

부산 동산관광단지 내 해운대비치골프앤리조트(회장 구천서)가 주민들이 삶터로 향하는 도로의 진출입로를 막았다. 닫힌 철문 사이로 진출입로가 보이며 오른쪽 건물은 골프장 관리동이다.

그러던 중 지난해 2월 경 골프장 측은 진출입로 입구에 느닷없이 철문을 설치한다. 당시 주민들은 골프장 보안문제라고 생각했으나 10월 부터는 출입자들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다고 한다.

점입가경으로 그 해 12월 22일 부터는 아예 철문에 열쇠를 채우고 닫아버렸다. 물론 골프장 관리동 직원들은 이전과 다름없이 이 곳을 통해 출퇴근을 했다. 또 12월 31일 골프장 측은 농장으로 이어지는 전기선을 절단, 한전 기장지점에서 출동해 사다리로 철문을 넘어 전선을 연결하는 사태까지 이르렀다.

어느날 갑자기 농장과 밭으로 올라가는 진출입로가 막혀버리자 농장주 김씨 등 주민들은 올해들어 부산도시공사, 부산시, 기장군청 등에 민원을 제기하며 길을 터달라고 하소연 한다. 골프장 역시도 기장군청, 기장경찰서 등에 농장주 김씨를 고발하는 등 맞대응을 펼치고 있다.

골프장 측의 고발내용은 ‘농장주 김씨가 고의적으로 동물들을 짓게 하고 악취를 풍겨 골프장 직원, 회원, 고객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장군청 등에서는 골프장 측의 민원제기에 ‘범법 사실이 없어 행정조치가 어렵다’는 회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실상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김씨 역시 허위날조된 소문이라고 일축했다.

부산도시공사 측은 조금 다른 입장을 보인다. 공사 측은 지난 1월 24일 골프장 측에 보낸 공문에서 ‘골프장 인근 부지 농로(진출입로) 차단에 대해 농장주의 자유로운 통로통행을 위해 법적, 제도적 조치를 취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골프장 측은 다시 농장주 김씨에게 공문을 보내 ‘고의적으로 개를 짓게 하는 등 영업방해를 하지 않는다는 확인을 한다면 출입을 보장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농장과 토지는 골프장이 있기 한참 전인 지난 2001년 구입해 농축을 해왔습니다. 당.시 8000여평던 것이 일부 수용돼고 남은 3000여평에서 농장과 농사를 일구고 있죠. 원래 자유롭게 뛰놀고 소리내는 동물을 키우는 농장에 뒤늦게 건설된 골프장에서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골프장 건설 당시 골프장 측에서 동물 사육장을 옮겨 주기도 하는 등 협조적이었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영업방해를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부산도시공사 동부산사업처는 “민원사실은 인지하고 골프장 측에 건설 당시 합의안에 기초한 협조요청을 했지만 농장주가 무거운 지게를 지고 1Km 이상의 비탈길을 왕복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밝혔다.

“도시를 개발하고 관광수요를 바라는 것은 계획과 기존 주민들의 상생(相生)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합의안의 약속을 어기고 기존 주민들에게 불편을 감내하라는 것은 법을 떠나 인정상으로도 문제입니다. 공무원이 저도 이렇게 당하는데 일반 주민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당할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앞으로 기장 군민, 주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기장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다녔다는 김씨의 고된 ‘지게꾼살이’가 언제 끝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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