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 언젠가는 희망의 빛 보게 될 것”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지선아 사랑해’로 온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선사한 이지선 씨(39)가 한동대학교 교수로 임용됐다. 15년이 지났는데 역경을 딛고 일어선 이지선 씨의 스토리는 지금까지도 국민들의 눈시울을 적시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모든 난관을 꿋꿋이 이겨내고 우리 사회 긍정의 아이템이 된 이지선 씨의 감동 스토리를 재조명해봤다.

- “천국으로, 하나님 곁으로 데려가 달라 기도해”
- 유학 기간 중에도 강연 통해 희망 전파

전신 화상의 아픔을 딛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준 이지선(39)씨가 포항 한동대 교수로 내정돼 관심을 끌고 있다.

한동대는 최근 면접을 본 뒤 이 씨를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 교수로 내정했다고 지난 1월 17일 전했다. 한동대에 따르면 이 씨는 최근 상담심리 사회복지학부 교수에 내정됐으며, 조만간 인사위원회 임명 동의, 이사장 결재 등 행정 절차를 거쳐 정식 교수로 임용돼 오는 3월부터 강단에 선다.

한동대 장순흥 총장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끊임없이 희망과 소망을 가지는 이 씨의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서 “지혜로운 인재를 기르고 따뜻한 희망을 주는 대학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 씨 역시 본인의 페이스북에 한동대 교수 내정 소식을 전했다. 그는 “일일이 인사 못 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 소식을 들으며 저보다 더 기뻐해 주시는 분들, 오랜 시간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분들 계셔서 참 감사합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이 씨는 지난 1월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한동대학교 교수로 발령이 난 것에 대해 “기쁜 것도 많이 기쁜데요. 떨리기도 아주 많이 떨리고 부담스럽기도 하다”며 “그전까지는 제 이야기를 하면 됐지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야 하니까 좀 떨리네요”라고 말했다.

“어떤 스승이 되고 싶냐”는 김현정 앵커의 물음에는 “(사회복지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며 “이웃을 사랑하는 온전한 마음과 또 좋은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들로 그렇게 가르칠 수 있도록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저도”라고 밝혀 따뜻함을 전했다.

이 씨는 2000년 7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 때 7중 교통사고로 전신 55%, 3도 화상을 입고 자신의 꿈을 잠시 접어야만 했다. 이후 2년이 지난 2002년 이 씨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전한 사고 당시 상황과 치료과정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당시 인터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빠, 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

내가 두 번째 생일이 된, 하마터면 사망일이 될 뻔했던 2000년 7월 30일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만큼 즐거웠던 가족 여행을 다녀온 바로 다음날이었다. 용산 근처에 와서 신호등이 바뀌어 신호를 기다리며 서 있었다.

오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뒤에서 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오빠는 어디서 사고가 나는가 보다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이미 사고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이미 작은 사고를 낸 뒤 도망치던 갤로퍼 지프가 돌진해 와서 충돌했다. 우리 차는 그 충격으로 앞차를 추돌하고 튕겨 나가 중앙선을 넘어 건너편에서 오던 차와 다시 충돌했다. 먼저 정신을 차린 오빠가 불길에 휩싸여 있던 나를 끄집어냈다. 이후에도 내 몸에서 불길이 계속되자 급한 마음에 오빠는 불을 끄려고 나를 껴안았다. 그때 오빠 팔에도 불이 붙었고 오빠의 팔도 화상을 입었다.

정말 엄청난 일이 ‘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오빠에게 ‘오빠, 나 이렇게 어떻게 살아. 나 죽여줘’라고 했다고 한다. 착한 오빠는 내가 아파서 고통 받을 때마다 아마 이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오빠의 슬픈 눈에서, 어떨 때는 눈물을 참기 위해 웃는 그 슬픈 웃음에서 그런 마음을 읽어낼 수 있었다.

이후 매일 아침 지옥 같은 화상 치료실에서의 치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타버린 피부조직을 긁어내는 수술조차 금방 해주지 않았을 만큼 여전히 나는 살 가망이 희박한 환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병원에서는 나를 살 가망이 없는 환자로 분류하여 간호 스테이션에서 가장 가까운 침대에 두었다고 한다.

부끄럽지만 나는 사고 이후 죽으려고 한 적도 있다.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보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렇게 내 힘으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자 나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가고 싶다고 가스펠을 불렀다. 그렇게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다.

이후 이 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자신의 일상을 담은 글을 홈페이지 올렸고, 이 글을 모아 2003년 ‘지선아 사랑해’를 출간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했다. 이 씨는 사고 이전에도 글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장애에 대한 인식 너무 달라”

2004년에는 지인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2008년 보스턴대 재활상담학 석사, 2010년 컬럼비아대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여기에 머물지 않은 그는 ‘비장애인의 인식 변화에 미치는 장애인과의 접촉의 효과’를 연구해 지난해 6월 캘리포니아대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0여 년의 유학 기간 중에도 방학을 이용해 1천 회에 달하는 강연을 펼치면서 희망을 전파했다. 이 씨의 강연 주제는 ‘삶은 선물입니다’였다. 당시 이 씨는 “사고를 통해 내가 느꼈던 것을 전하고 싶었다. 일상을 느끼고,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고, 소중한 선물이었다”라고 말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이 씨는 최근 한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미국 유학길은 큰 모험이었다. 유학을 앞두고 저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었다. 새로운 꿈을 펼칠 수 있다는 데 대해 감사했다”고 회상하며 “친척도 없는 먼 타향에서는 늘 좋은 사람들이 도와줬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이 씨는 “강단에 서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에 대한 편견은 선진국에 비해 멀었다”라며 “박사학위 논문도 이 같은 이유에서 주제를 정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장애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다르다. 선진국에선 비슷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반면 우리 사회는 다르다는 생각이 깔려 있고, 한 군데가 불편하면 모든 것이 불편할 것이라는 오해를 갖고 있다”며 우리 국민의 장애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힘든 삶을 사는 이웃에게 “우리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기가 인생의 끝인 것처럼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무서워한다”며 “그러나 어려움에는 항상 끝이 있었다. 인생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언제가는 희망의 빛을 보게 될 것”이라며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학력사항>
▲ 2001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학 학사
▲ ~ 2008 보스턴대학교 대학원 재활상담학 석사
▲ ~ 2010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2010 ~ 2016 UCLA 대학원 사회복지학 박사

<경력사항>
▲ 2005 밀알복지재단 홍보대사
▲ 2011.01 MBC 나눔 홍보대사
▲ 2005 한림화상재단 홍보대사
▲ 2005 푸르메재단 홍보대사

<수상내역>
▲ 2003 제1회 캔들데이 촛불상
▲ 2007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 선정
▲ 2010 제8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젊은 지도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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