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김종인 민주당 전 대표가 단단히 화가났다. 최근 독일에서 귀국한 이후 탈당 등 자신의 거취 관련 질문에 “내가 알아서 한다”, “쓸데없는 얘기는 묻지 마라”고 불만 섞인 모습을 보였다.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총선전 삼고초려해 영입한 인사가 김 전 대표다. 그는 총선에서 당 대표를 맡아 원내 1당으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개헌과 ‘제3지대론’으로 문재인 전 대표와 갈등을 빚으면서 관계가 멀어졌다. 지금은 ‘반문전선’의 좌장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조기 대선 정국에 ‘문재인 대세론’이 지속되면서 위상은 크게 약화됐다. 당내 일각에서는 “친문으로부터 팽 당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탈당’과 ‘잔류’사이 줄타기 중인 김 전 대표가 어떤 선택을 할지 정치권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김 빠진 개헌론’, 붕 뜬 ‘제3지대론’ 역할 부재
- 안희정 ‘50대 대망론’ 지원? 안 측, “지지 선언만…”


김종인 전 대표의 거취가 정치권 핫이슈로 떠올랐다. 탈당설부터, 대권도전설, 킹메이커역할등 다양한 소문이 돌고 있지만 김 전 대표는 말을 아끼고 있다. 예전 국내 정치 현안에 대해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왔던 김 전 대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난 총선에서 원내 1당으로 만들 당시만 해도  김 전 대표는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다.

文 이어 안희정 ‘팽’당하나…
탈당과 잔류 사이


한 손에 개헌, 또 다른 손에는 ‘제3지대 빅텐트론’을 들고 문재인 전 대표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반문 진영의 좌장으로서 일각에서는 ‘대권출마설’도 흘러나왔다. 승승장구할 것 같던 김 전 대표를 가로 막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탄핵 사태였다. 최순실 등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사건으로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김종인 구상’은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개헌 논의도 제3지대 빅텐트론도 탄핵정국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제3지대 발 정계개편의 한 축이었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결정타였다. 김 전 대표의 대권 구상은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에서 반문전선을 구축하고 그 울타리 역할을 반 전 총장이 할 것을 기대했다.

반 전 총장을 대통령 만들기보다는 안철수, 김부겸, 안희정, 남경필, 원희룡, 유승민 등 상대적으로 젊은 잠룡군의 ‘50대 대망론’을 위한 경선 불쏘시개 역할 정도였다. 김 전 대표가 김부겸 의원과 안희정 충남지사를 상대로 탈당 권유설이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탄핵정국으로 개헌풍이 잦아들고 반 전총장의 불출마로 제3지대 빅텐트론마저 수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존재감마저 흔들렸다. 대신 최대의 수혜자는 김 전 대표의 반대편에 서 있는 문재인 전 대표였다. 조기대선정국과 반 전 총장의 중도하차는 문 전 대표의 대망론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당내 반문전선에 서 있던 개헌파도 위축됐다.

이에 김 전 대표는 2월16일 뮌헨 안보회의 참석을 빌미로 독일로 떠났다. 출국하기 전 김 전 대표는 귀국할 때 “(거취관련)결심할 것이니 기다려 달라”고 밝혔다. 민주당에서는 김 전 대표의 탈당을 기정사실화했다. 김 전 대표가 문재인 천하인 민주당에서 역할은 다했다는 평가도 쏟아졌다. 친문으로부터 ‘팽 당했다’는 냉소적인 평가도 나왔다.

실제로 문재인 캠프 내에서는 차기 총리와 관련, 김 전 대표가 아닌 전윤철 전 감사원장, 장하성 교수 이름이 거론됐다. 두 인사는 김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경제전문가인 데다 호남이 고향이다. 호남 총리가 안될 경우 충청도 출신으로 ‘동반성장’을 기치로 내세우고 있는 정운찬 전 총리도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 민주화’에 대한 상표권을 갖고 있는 김 전 대표는 총리 후보나 예비 내각 후보 명단 어디에도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예비내각 명단’
김종인은 없다


그러나 ‘탈당선언’이 점쳐지던 김 전 대표는 지난 21일 귀국해 “내가 알아서 하겠다”며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았다. 다만 ‘금명간 결단을 내리겠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김 전 대표가 탈당을 포기하고 잔류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왔다.

특히 최근 문 전 대표를 바짝 뒤쫓고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를 지원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김 전 대표는 독일로 출국하기 전 비문 의원과 만찬을 갖고 “안 후보에게는 노무현 대통령 초기 모습이, 문 후보에게는 노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른다는 말이 젊은 층에 사이에 퍼지고 있다고 들었다”는 말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안 지사 측도 김 전 대표에게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해 도와달라”며 지지 요청을 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대표가 안 지사 지지 선언을 할지는 미지수다. 김 전 대표는 평소 “대통령 출마하는 사람이 스스로 해야지 누가 도와준다고 잘 되겠느냐”며 “내가 어디에 특정하게 힘을 쏟는다는 것은 불공정해서 안 된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안 지사 측 역시 “지지 선언을 해 달라고 하는 거지 캠프에 와서 감 내놔라 배 내놔라 하는 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사실상 안 지사에서도 김 전 대표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내심 캠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떨떠름한 모습이다.

이미 한차례 김 전 대표와 안 지사는 탈당 보도로 갈등을 빚은 바도 있다. 지난 1월31일 한 일간지는 김 전 대표가 안 지사에게 탈당을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김 전 대표의 한 측근 인사의 말을 빌려 “김 전 대표는 탈당시점과 명분을 고민 중”이라며 “민주당 대선 후보는 어차피 문재인 전 대표가 될 테고 5년 뒤 안 지사에게 기회가 온다는 보장이 없다. 여야를 뛰어넘어 50대 후보들이 모여 이번 대선에서 돌풍을 한번 일으켜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비밀 회동 자리에서 권유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안 지사는 “탈당하지 마시고 저를 도와달라”고 했다고 김 전 대표 측 관계자가 밝혔다. 하지만 보도 바로 다음날 김 전 대표는 “안희정 탈당 권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안 지사 역시 “김종인 탈당 권유, 있지도 않았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탈당 권유’논란으로 양 측간 갈등의 골이 생긴 것으로 알려졌다.

‘50대 킹메이커’에서
‘3년 개헌 대통령’으로?


김 전 대표의 마지막 남은 구상인 ‘제3지대 발 50대대망론’마저 수그러들면서 김 전 대표의 위상은 더 추락했다. 민주당에 잔류하자니 마땅히 할 일도 역할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탈당해 ‘김빠진 개헌’을 고리로 제3지대에서 정치세력화를 꾀하자니 구심점이 없는 상황이다. 정운찬, 김황식 등 잠룡급 인사들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묵묵부답이다. 일단 박 대통령 탄핵 결정 이후 거취를 표명하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김 전 총리가 직접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안 지사가 문 전 대표에게 상대가 안 될 경우를 상정한 시나리오다. 민주당 내 비문 의원들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주자들까지 포함해 ‘비문 세력’을 규합, ‘3년제 개헌 대통령’을 공약해 대선에 나선다는 얘기다. 

3년간 과도 정부의 수장을 맡고 2020년에는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마무리한 뒤에 다음 정부에 새로운 대한민국을 넘겨주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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