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능성 열겠다는 洪, ‘줄타기’ 하다 떨어질라…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홍 반장 화법’. 홍준표 경남지사가 과거 한나라당 대표 시절 보여준 특유의 직설화법을 일컫는 말이다. 홍 지사의 ‘판 벌이기’식 정치 스타일이 그대로 나타나는 화법이다. 이 같은 홍 지사의 거침없는 화법이 최근 부활한 모습이다. “양아치 친박이 내 사건을 만들었다”, “당이 갈라서게 된 배경은 양아치 친박 때문이다”, “한국 정치인 중 내공이 (나보다) 낫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는 등 그의 가벼운 발언이 연일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홍 지사는 ‘범(凡) 보수의 새 아이콘’으로 등극했음에도 출마 선언을 미루고 있다. 심지어 행선지도 정하지 않은 채 연일 자극적인 발언만을 이어나가고 있다. ‘홍준표 화법’속에 숨어 있는 의도가 무엇인지 들여다봤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黃 띄우며 TK ‘이삭줍기’ 나섰지만… “글쎄”
- “태극기 민심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여권의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으로부터 ‘대망론’이라는 동남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홍 지사의 대선 출마가 사실상 초읽기에 접어든 가운데 범(凡) 보수에 향후 동남 발 ‘대망론’이 불어올지 여부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홍 지사는 지난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벽대전을 앞둔 제갈량이 주유에게 ‘만사구비 지흠동풍(萬事俱備 只欠東風·모든 조건을 갖췄으나 동풍이 부족하다)’이라 했다”며 “이번에 누명 벗은 무죄 판결이 동풍이 됐으면 한다”고 남겼다.

제갈량이 저절로 동남풍이 불어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듯이, 홍 지사의 최근 행보도 예사롭지 않다. 부산, 대구 그리고 울산에서 홍 지사는 ‘강연 정치’를 이어나갔다. 모두 영남 권역에서도 홍 지사와 연고가 있는 지역이다. ‘대망론’이라는 동남풍을 스스로 불러일으키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TK 민심 구애 나섰지만…

범(凡) 보수 진영을 대표해서 대권에 나서려면, 보수의 핵심 지지 기반인 영남, 특히 TK의 지지를 확보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에 홍 지사 역시 TK 민심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 그는 지난 23일 대구시청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헌법재판소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날 홍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했지만 위법행위를 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정치적 탄핵은 할 수 있으나 사법적 탄핵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헌재 재판관에 대해서도 “태산같이 무거워야 할 헌재 재판관의 입이 새털처럼 가볍다”며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임기 중에 탄핵심판을 결정해야겠다거나 탄핵절차를 형사재판에 준용시키는 언행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탄핵심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나아가 출마 시기 마지노선을 묻는 질문에는 “지금은 시기가 좀 이르다”며 “대통령이 위기에 몰려 있는데 야당이라면 출마하겠다고 뛰어나가겠지만 같은 당 대통령이 탄핵국면에 처한 걸 보고 대통령 하겠다 뛰쳐나가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홍 지사는 특강에 앞서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황교안 권한대행을 극찬했다. 그는 황교안 권한대행에 대한 평가를 요청하는 기자단의 질문에 “훌륭한 분이고 바른 분이고 정의로워 능히 대통령이 돼도 국정을 감당할 수 있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TK에는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깔려 있다. 박 대통령 아바타라 불리는 황교안 권한대행의 지지율이 치솟고 있는 점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에 홍 지사가 현실적으로 황 대행이 대선에 출마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박 대통령과 황 대행을 옹호하며 두 사람 지지층을 모두 ‘이삭줍기’ 하려 한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그러나 홍 지사는 아이러니하게도 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친박계에는 잔뜩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 16일 “내가 DJ와 노무현 10년을 견뎠다. 그런데 박근혜 (중부) 4년을 견디면서 그 10년보다 더욱 힘들게 이겨냈다”며 “일부 ‘양아치 친박’과 청와대 민정이 주도해내 (성완종 전 회장으로부터의 뇌물 수수) 사건을 만들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 술 더 떠 홍 지사는 지난 23일 박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하고 TK에서 ‘배신자 낙인’이 찍힌 바른정당에 대해서도 “(자유한국당이나) 둘 다 같은 정당이다. 이혼한 게 아니라 별거하고 있을 뿐이다”며 “대선후보가 결정되면 그 후보 중심으로 통합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두 정당 사이에서 ‘탄핵 이후’의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몸값을 올리려는 의도에서다. 다시 말해 TK 내부에 ‘대통령을 지키지 못했다’는 친박계에 대한 실망감과 ‘대통령을 배신했다’는 비박계를 향한 분노가 공존하고 있다는 판단 하에 탄핵 이후 TK 민심을 본 뒤 행선지를 결정하려는 속내라는 것.

“이혼이 아니라 별거?”
‘태극기 민심’과 달라…


그러나 일각에서는 홍 지사가 이 같은 발언으로 인해 결국에는 최근 당 지지율과 당내 대선주자들의 지지율 모두 밑바닥을 맴돌며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져 있는 바른정당과 운명을 같이하게 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홍 지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국론이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분열돼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대선은 ‘촛불=진보’, ‘태극기=보수’의 대결 구도가 확실시된다. 다시 말해 대권을 거머쥐기 위해서 진보 세력은 촛불 민심을 얻어야 하고 보수세력은 태극기 민심을 얻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 지사의 ‘양박(양아치 친박)’ 발언은 ‘친박 패권주의 청산’을 외치는 바른정당과 궤를 같이한다. 바른정당의 TK 지역 지지율은 민주당에도 뒤지고 있다. 태극기는 TK 지역에서 시작돼 현재 시청 앞에 펄럭이고 있다. 즉 친박에 대한 실망감보다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비박계와 야권에 대한 분노가 태극기의 원동력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검찰은 최근 홍 지사를 상고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모두 ‘경선 흥행’을 위해 홍 지사가 좋은 카드인 것은 사실이나 조기 대선이 거의 확실시되는 시점에 무죄 확정 판결을 받지 못한 홍 지사를 품는 것은 위험 부담이 있다.

특히나 홍 지사는 자유한국당에 ‘당원권 정지’를 취소해 달라는 요청도 아직 하지 않았다. 인명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3일 "당 대표는 특별한 경우 최고위원회의 협의를 거쳐 당원권 징계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다. 다만 아직 홍 지사의 연락이 없었다"라고 밝혔다.

‘당원권 정지’ 상태인 홍 지사에 대한 상고심이 확정된 상황에서 당이 먼저 나서서 그의 징계를 철회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큰 게 사실이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홍 지사는 ‘줄타기’를 그만하고 자신의 색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그의 행보가 모든 가능성을 닫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태극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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