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행복지재단이 입주해 있는 서울 계동의 한 빌딩.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꼼수가 판을 친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지난 2015년 11월 GS그룹 오너 일가는 사회복지법인 ‘동행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저소득층 아동, 다문화가족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 지원사업을 위해서다.
 
설립 직후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GS의 주식 5만5000주(출연가액 27억7200만 원)를 재단에 출연했다. 현금 5억 원도 쾌척했다. 허 회장은 이 재단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허 회장의 친형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친동생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도 각각 15억 원, 10억 원을 내놨다. 업계는 평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던 GS그룹이 이 출연금을 통해 기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을 기대했다.
 
하지만 동행복지재단의 활동은 그리 활발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설립된 지 1년3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 할 사업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시설을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동행복지재단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아동 복지여건이 취약한 국내 특성상 활발하게 활동만 한다면 모를 수가 없다. 재단은 국내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후원을 받으면 재단 이름을 잊을 수 없다. (아동복지) 시설을 운영하는 분들한테도 들어본 적 없다”고 밝혔다.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의 공시를 보면 동행복지재단은 설립 당시 출연 받은 금액을 해당연도(2015년)에 단 한 푼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설립 후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결과지만, 보통 연말에 몰리는 복지사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1원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동행복지재단 A사무국장은 “(2015년도) 11월 말 설립했기 때문에 준비하느라 (사업을) 못했다. 그래서 서울시, 종로구청 등 주무관청의 양해를 받았다”면서 “2016년에는 외부 기관과 제휴해 미혼모·장애인·저소득 가정에 생계비 지원, 아동보육시설에 물품 지원, 다문화가정에 기저귀 등 영유아 용품 지원 등의 사업을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업비 지출규모는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출연한 지분에 대한 배당이나 이익으로 재단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는 (사업을) 조금 더 다양화하고 큰 규모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단의 사업비 예산을 보면 사업비 지출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지난해 사회적 약자 및 소외계층 지원사업비 3500만 원, 저소득층 아동 지원사업비 1800만 원, 다문화가족 지원사업비 700만 원 등 총 6000만 원을 예산으로 책정했다. 이는 지난해 재단의 인건비(급여 포함 1억473만 원)보다 훨씬 적은 액수다.
 
이 재단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성’이다. 국내 주요 포털에서 재단의 전화번호나 주소는 물론 홈페이지도 검색되지 않는다. 홈페이지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직접 주소를 입력하지 않는 한 접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재단이 입주해있는 건물 외관에도 간판이 없어 이 곳에 동행복지재단 사무실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이 재단에 후원을 하거나 지원을 받고 싶어도 접근 자체가 안 되는 셈이다.
 
채용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재단의 전화번호는 GS그룹 재무팀으로 연결된다. 동행복지재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번호다. 직원 수도 터무니없이 적다. 설립 당시 고용직원은 단 1명(이사 수 7명)이었다. 이마저도 계약직이다. 사업 추진과 계획, 사무, 홍보 등의 실무를 혼자 처리하는 셈이다. 많게는 수십명에 달하는 다른 재단의 직원 수와 비교하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한 재단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복지사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기업이 자신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 대대적인 홍보가 이뤄진다”면서 “이런 점을 감안하면 굉장히 의아하다. 재단은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으면 정부로부터 이사 해임, 운영권 박탈 등의 조치를 당할 수 있어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사업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앞서 A사무국장은 “직원 수는 현재 2명이고 계속 뽑고 있다”며 “(공익) 사업을 조용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홍보 등 외부에 알리는 건 자제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GS그룹의 다른 복지재단인 GS칼텍스 재단 등은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사회공헌활동을 하고 있다.
 
또 허동수 회장은 재계 인사로는 이례적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GS그룹이 공익사업을 하면서 외부 노출을 꺼린다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선 재단의 설립 목적이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단을 활용해 승계에 이용하려 한다는 게 이유다. 재단에 출연한 오너 일가의 나이가 70대인만큼 승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허동수 회장은 지난해 10월 자신이 보유하던 GS 주식 222만6720주 중 60만주를 재단에 추가로 내놨다. 또 허남각 회장이 25만주, 허광수 회장이 40만주를 동행복지재단에 기부했다.
 
허동수 회장의 작은아버지 허완구 승산 회장도 20만주를 출연했다. 각 증여일 종가 기준 총 751억3000만 원이다. 0.06%였던 동행복지재단의 GS 지분은 1.62%까지 늘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이 5% 이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가 모두 면제된다. 성실공익재단의 경우 10%까지 적용된다. 따라서 허동수 회장 등이 동행복지재단에 주식을 기부하는 과정에서도 상속·증여세는 발생하지 않는다.
 
동행복지재단이 가진 지분은 최대주주의 우호지분에 포함된다. 향후 재단 이사장직을 물려주면 세금은 피하면서도 지분을 넘겨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GS그룹 오너 일가는 최근 잇따라 주식담보대출을 받아 지분을 늘리는 등 승계를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매년 배당금을 늘려가며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4.75% 지분으로 최대주주인 만큼, 동행복지재단이 보유한 5% 이내의 지분은 그룹 지배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A사무국장은 “(재단의 승계 목적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고 들어본 적도 없다”며 “이런 질문을 들으니 당황스럽다”고 일축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