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사료에 홍삼 먹는 강아지, 학대당하고 버려지는 강아지

미용 서비스 받고 있는 강아지(왼쪽), 목줄에 끌려가는 강아지 <뉴시스>
5명 중 1명 반려동물 키워… 음식 등 관련 상품 ‘고급화’
유기동물 한 해 평균 8만 마리… 학대 사례도 급증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바야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약 1000만 명이다. 5명 중 1명이 반려동물을 기르는 셈이다.

동물을 단순 애완용이 아닌 ‘반려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가족처럼 대하거나 때로는 ‘상전’처럼 대접하는 세상이다. 홍삼 영양제에 소고기 현미 영양죽, 반려동물 전용 우유까지 등장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고가의 미용 서비스와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학교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대접받는 동물들이 있는가 하면, 사람에게 가차없이 버려지는 동물들도 있다. 해마다 수만 마리의 반려동물이 길거리에 유기된다. 동물 학대 사례도 갈수록 늘고 있다. 일요서울은 반려동물 천만 시대의 두 얼굴을 들여다봤다.
 
경기도 의정부에 사는 직장인 최모씨(29)는 반려견 두 마리(비숑)와 한집에 산다. 본인 식사는 거를지언정 강아지 식사는 꼭 챙긴다고 한다. 사료는 유기농으로만 주고, 최근에는 영양제까지 사 사료 위에 뿌려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바쁜 일상이지만 산책도 꼬박꼬박 챙긴다. 얼마 전에는 큰 맘 먹고 140만 원에 달하는 반려동물 드라이룸(건조기)도 구매했다. 최 씨는 “가족이라 생각하면 아까운 생각은 별로 없다”며 “요즘 삶의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다.
 
동물 보유 가구 3.9% 증가
고급 식품·시설 등 ‘호황’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율은 2012년 17.9%에서 2015년 21.8%로, 3년 전보다 3.9% 증가했다. 반려동물 사육 인구는 457만 가구, 약 1000만 명으로 추정된다. 다섯 집 가운데 한 집, 5명 가운데 1명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관련 시장 규모도 증가했다. 2012년 9000억 원에서 2015년 1조8000억 원으로 3년 만에 2배로 늘었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20년에는 현재의 3배가 넘는 무려 5조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사람들은 동물을 단순히 데리고 기르는 대상에서 ‘반려자’로 여기는 분위기다. 동물을 반려자도 여기다 보니 반려동물을 위한 각종 상품과 서비스도 고급화되고 세분화됐다.

고급 사료와 간식 등 식품이 대표적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반려동물을 위한 질 좋은 식품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돼지 등갈비, 오리 안심, 연어스테이크 등을 해동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돼 있는 간편 간식에서부터 ‘반려견 생일파티용’ 케이크, 홍삼 성분과 북어 농축액이 첨가된 질 높은 건강식품도 있다.

여기에 임신·출산·질병 등으로 회복과 영양보충이 필요한 반려견을 위한 소고기 현미 영양죽, 오리 안심 영양식도 있으며, 반려동물의 음식 소화를 배려한 국내 최초 반려동물 전용 우유까지 나왔다.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반려동물을 위한 전문 쇼핑몰과 전용 호텔, 다이어트 학교까지 존재한다. 국내 대형마트 A업체는 전국에 반려동물 전문 매장 33곳을 운영 중인데, 간식·사료·패션과 위생용품까지 관련 용품 2400여 가지를 한 곳에서 쇼핑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반려동물이 편히 쉬도록 돌봐주는 전용 호텔과 비만견·과체중견을 위한 ‘다이어트 스쿨’, 전문 디자이너가 대기하고 있는 뷰티 스튜디오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다. 반려동물의 ‘천국’이 따로 없어 보인다.
 
휴가철에 유기동물 증가
‘분양’ 말고 ‘입양’해야

 
고급 음식과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반려동물이 있는 반면, 맞고 버려지고 심지어 죽임을 당하는 반려동물들도 있다. 농림식품부에 따르면 해마다 8만 마리 이상의 반려동물이 고의로 버려지거나, 유실되고 있다. 특히 명절 연휴나 이사철, 휴가철에 동물을 버리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농림식품부 관계자는 “휴가철에 특히 강원도 강릉, 속초 등 휴가지 펜션 등에 그냥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유기 동물들은 길거리를 떠돌다 ‘로드킬’ 등 각종 사고에 노출되기도 한다. 서울시내에서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이 하루 평균(2012~2015년 기준) 약 15.3마리에 달한다. 이에 대해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을 쉽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지적했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반려동물 유통이 너무 많다”며 “길 가다가도 충동구매가 가능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쉽게 살 수 있으니 쉽게 버린다는 뜻이다.

이처럼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행위는 수억 원의 반려동물 처리 비용으로도 이어진다. 지난 7일 발표한 ‘서울시 동물복지지원시설 도입방안’에 따르면 전국 유기동물 처리에 2008년 13억, 2014년 9억, 2015년 8억 원이 들었다.

동물 학대 사건도 끊이지 않는다. 동물 학대 혐의로 고발되는 사례는 2013년 160건에서 2015년 287건까지 급증했다. 그러나 제대로 처벌 받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2011년 승려 출신인 이모(58)씨는 술에 취한 채 남의 집에 있는 진돗개가 자신을 보고 짖는다는 이유로 머리를 마구 내리쳐 죽였지만 징역 6월의 실형에 그쳤다. 2015년에는 한 50대 남성이 이른바 ‘고양이 공장’에서 600여 마리의 고양이를 산 채로 끓는 물에 넣고 식용으로 판매했지만 초범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동물 학대 행위에 대한 현행 법의 처벌 수위가 너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국의 경우처럼 학대·상해 시 징역형은 물론 접근금지나 소유권을 제한하는 등의 법률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지난해 8월 동물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소유자 여부와 관계없이 학대받는 동물에 대한 긴급구조를 허용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지난 23일 관련 국회 상임위에서 통과됐다. ‘강아지 공장’ 운영은 기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학대 행위는 현행법의 형량과 벌금이 각각 2배로 높아졌다. 다만 학대 동물의 긴급격리조치 및 소유권 등의 제한, 사육·관리 기준 강화 등은 정부 반대로 개정안에 담기지 못했다.

외국에선 동물 학대 방지를 위한 보호법도 이미 체계화 돼 있다. 독일의 경우 2002년 세계 최초로 ‘국가는 미래 세대의 관점에서 생명의 자연적 기반과 동물을 보호할 책임을 가진다’는 내용의 동물권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는 동물을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여긴다는 방증이며, 생명은 마땅히 법으로 보호돼야 함을 나타낸 것이다.

동물보호단체 관계자는 사람들이 동물을 구매(분양)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입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분양은 판매업자들이 동물을 판매할 때 분양이라고 희석시켜 표현하는 거고, 더 좋은 의미로 쓰이는 건 입양”이라며 “우리가 가족을 돈 주고 사지 않듯 반려동물을 원할 땐 구매가 아니라 입양 방식으로 하나의 생명으로서 거둬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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