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적 집단행동 자제해야 vs 부작용 있으나 권장해야

<뉴시스>
과도한 비난·욕설로 ‘광장 민주주의’ 과잉 지적
직접적 의사소통 창구…행위보다 ‘수위’ 문제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폭탄’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의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문자 폭탄’ 얘기다. 

탄핵 정국 초기, 주로 탄핵을 반대하던 여권 인사들에 대한 시민들의 문자 공세는 지금도 여전한 상황이다. 탄핵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문자 폭탄의 ‘반경’도 넓어졌다. 탄핵 찬반에 국한되지 않고 ‘보수 분열’에 대한 비난, 조기 대선 국면에서 ‘극성 아이돌 팬덤’ 현상까지 사안에 따라 폭탄이 곳곳에 떨어지고 있다. 문자 폭탄을 맞는 국회의원의 전화기는 그야말로 불이 날 지경이다. 

이 같은 행위를 두고 과도한 비난과 욕설 등으로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협박정치’라는 비판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리인’에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직접 정치’라는 상반된 목소리가 나온다.
 
시민들의 ‘문자공세’는 지난해 말 국회의원들의 전화번호가 온라상에 유출된 것이 시발점이 됐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탄핵 찬반 명단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고, 탄핵 반대에 앞장섰던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의 휴대전화번호가 유출되면서 분노한 시민들의 문자가 줄을 이었다.

여권만 공격 대상이 된 건 아니었다. 당시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 탄핵 표결을 연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가 이틀 동안 약 2만개의 항의 문자 폭탄 세례를 받았다. 박 위원장은 “박 대통령 탄핵을 가결하려면 새누리당 비박계를 설득해야 한다”며 표결을 미루자고 주장했다가 한바탕 홍역을 치른 것이다.

박 위원장은 시민으로부터 “박지원씨 대체 이정현(대표)하고는 무슨 밀약을 한겁니까??? 국민이 그나마 좋은 말할 때...”라는 협박성 문자를 받았고, 당은 ‘새누리 2중대’라는 꼬리표가 붙기도 했다.
 
‘번호 노출’ 후폭풍 여전
악성 아이돌 팬덤 현상도

 
휴대전화번호 노출 사고의 후폭풍은 여전한 상황이다. 탄핵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의원들을 향한 시민들의 ‘문자공세’가 계속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의원들은 연락처를 바꿨지만 새로운 연락처가 재차 유출되기도 했고, 상당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기며 연락처를 변경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에는 촛불 집회와 태극기 집회 세력 간의 대결 양상이 격화되면서 카카오톡 등 SNS와 문자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하며 분당한 바른 정당 소속 의원들은 일부 보수 지지자들로부터 보수를 분열시킨 ‘배신의 원흉’이라는 항의 문자에 시달린다.

실제 바른정당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은 최근 한 방송에서 “저의 휴대전화에 읽지 않은 문자가 2만7400개 정도라 문자 앱(애플리케이션)이 잘 작동이 안 된다”며 “악플보다 10배는 심한 욕설도 많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탄핵 찬성 세력은 물론이고, 태극기 집회 세력으로부터도 탄핵이 기각돼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하는 내용의 카톡과 문자메시지를 하루에도 수백 통씩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모르는 사람한테서 수시로 단체 대화방에 초대돼 메시지 폭탄을 맞고 있다.

문자 폭탄 세례는 야권 대선주자들 진영에서도 빈번했다.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가 공격 받으면 ‘팬심(?)’을 발휘해 대규모 항의 문자와 욕설을 빙자한 ‘18원 후원금’도 이어졌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개헌 보고서’ 논란이 불거진 뒤 이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가 친문(문재인) 지지자들로부터 3000건이 넘는 문자 폭탄과 18원 후원금 등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친문 패권’를 비판했던 국민의당 한 중진 의원은 하나의 휴대전화로부터 한 글자로만 쓰인 문자를 지속적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글자를 하나하나 연결하면 문장이 완성되는 식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손학규 전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에 ‘정계 은퇴’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다가 손 전 의장 지지자들의 문자 폭탄 세례를 받기도 했다.
 
지능적인 폭력 수단
vs 정당정치에 ‘쓴 약’
 
이 같은 문자 폭탄이나 각종 SNS 테러 행위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폭력적으로 제압하려 하거나 과격한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 대표는 “필요한 수준의 문자로 정당한 문제 제기나 의견은 보낼 수 있지만 특히 18원 후원금 등은 지능적인 폭력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탄핵 정국과 관련해서도 “지금 법과 절차에 따라 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문자 공세나 압박 등 ‘광장 민주주의’ 요소가 과잉으로 이뤄질 때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는 리스크(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법적 논쟁 소지도 있다. 정보통신망법에 따르면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음향·화상 또는 영상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도록 하는 내용의 정보를 유통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행위’ 자체보다는 ‘수위’나 ‘의도’에 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정보통신망법에서 온라인을 통해 협박을 하거나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주는 행위들은 처벌 받을 소지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의견 전달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며 “국민들이 반드시 본인들의 의사를 따를 수밖에 없게 물리적·정신적 위력을 행사한다기보다는 일종의 의사소통 창구로서 활용하는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들은 그런 국민들의 의사를 본인의 직업적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일련의 행위들이 더 권장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문자 폭탄 등의 행위가 조직돼 있는 특정 정치인들의 열혈 지지자들이 반대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 등 부작용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의원들이) 잘하는 거에 대해 후원금도 보내고 격려와 지지를 보내는 만큼 잘 못하는 거에 대해 비판도 자유로워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의 상시적인 정치 참여가 제한적인 현실에서 정당의 활성화, 민주화란 측면에서 다소 부작용이 있더라도 이는 정당 정치를 강화하는 쓴 약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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