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원금 연간 12조 원, ‘눈먼 돈’으로…아이들이 고스란히 피해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국민의 혈세로 지급되는 유치원·어린이집 보조금이 일부 몰지각한 원장들의 주머니 속 쌈짓돈으로 둔갑해 흥청망청 쓰이고 있다. 자녀의 학비로 쓰이거나 명품을 사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되고 있는 것. 심지어 유흥비로도 사용돼 충격을 주고 있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의 점검 결과 적지 않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시설 운영비가 불법적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무조정실 부패척결추진단이 지난해 10월부터 교육부, 보건복지부, 시·도교육청, 시·도, 식약처와 합동으로 서울을 비롯한 경기·인천·대구·부산·울산·광주·대전·세종 등 9개 시·도에 있는 대규모 유치원·어린이집 95곳을 점검한 결과는 놀라웠다.

전체의 96%인 91곳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무려 609건이 위법사항으로 적발됐고 205억 원의 운영비가 부당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운영비 부당사용의 사례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가 막힌 것들이었다. 유치원 설립자이자 원장인 A씨는 아들 대학 등록금과 개인차량 할부금, 노래방 등의 유흥비로 1억2000만 원을 탕진했다. 또 다른 유치원 원장인 B씨는 아들이 운영하는 업체와 몰래 거래를 하며 유치원 운영비를 빼돌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립유치원 여러 곳을 운영하는 C씨는 영어교육비는 물론 각종 비용을 부풀려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또 운영자금으로 자신의 차량 보험금과 연금 납부, 심지어 천만 원대 도자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한 유치원 설립자는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 등을 유치원·어린이집 교사로 이름만 올려놓고 고액의 보수를 타간 사례도 있었다.

추진단에 따르면 이 외에도 유치원 운영자금이 개인 용도의 선물 구입이나 명품 구입, 친인척의 여행경비, 자녀 학비나 유흥자금 등으로 사용됐다. 국민들의 혈세로 지원된 돈을 제 돈 쓰듯 한 것이다.

추진단은 적발된 유치원과 어린이집 중 8곳에 대해 수사의뢰·고발 등 형사책임을 묻기로 했고 이들과 거래한 탈세 의심 업체 19곳을 세무서에 통보했다. 부당하게 사용된 운영비는 환수 조치 등 행정처분을 통해 회수하기로 했다.
 
열 곳 가운데 아홉 곳 이상 ‘회계 조작·위생 불량’
 
적발 사례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역시 위법·부당한 회계집행 사례로 개인적인 운영비 유용과 계약 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거래 등 원장들의 주머니로 들어간 돈은 총 135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실태점검에서 드러난 적발사항 가운데는 아이들의 위생과 직결되는 문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는 유통기한이 지난 식재료가 발견되기도 했고 찌든 때가 붙어있는 비위생적인 조리기구가 적발되기도 했다. 조리사 건강검진과 위생교육이 소홀한 경우도 있었다.

일부 유치원의 경우 원아의 부모가 부담한 급식비에서 교직원의 급식이나 간식비를 충당하고 있는 사례도 확인됐다. 특히 운영비의 유용으로 제대로 된 급식이 이뤄지지 않고 부실한 급식이 제공되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위법 부당하게 운영비가 집행된 사례를 볼 때 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심각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관계 당국의 관리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각지대였음이 드러난 상황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개인 호주머니로 혈세가 빠져나가다니.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이런 곳에 어떻게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겠나? 암담하다”, “국공립 유치원을 더 늘리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등의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설립자나 원장의 자질도 큰 문제지만 사실상 이러한 위법사항들을 방치하다시피 한 당국의 책임도 크다”며 엄중한 처벌과 함께 시급한 대책 마련을 주문하기도 했다.
 
처벌 강화·운영 투명성 위한 회계규칙 개선 등 필요
 
추진단은 이번 종합점검 결과 수면 위로 드러난 문제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각종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기로 했다.

우선 유치원과 어린이집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고 운영비의 출처와 사용처를 명확히 하는 재무회계규칙을 개선한다. 특히 정부지원금과 보조금, 학부모 부담금 등을 세분화해 관리하고 사립유치원의 경우 예·결산서 정보를 전산보고 하는 등 ‘회계관리 전산시스템’을 전국적으로 구축·시행하기로 했다.

정부 지원금을 부당하게 사용할 경우 정부보조금 재정 지원을 배제하고 장기적으로 환수 등 처벌규정을 강화하는 한편 유치원 정원 감축, 원아모집 정지 등의 제재 규정 신설을 검토할 예정이다.

또한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노후시설 개선과 안전을 위해 노후시설 개선 목적의 적립금을 유치원 회계 수입으로 허용해 변칙적 적립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서 적립해 온 노후시설 개선 목적의 적립금은 대부분 개인명의 보험으로 적립해 유용의 우려가 많았다.

이 외에도 개별 유치원의 원장, 교직원에 대한 급여 수준을 정보공시사이트 ‘유치원알리미’에 공개하도록 해 인건비 부당 지출에 대한 자율적 개선 노력을 유도하고 유치원 입학 지원부터 등록까지 온라인으로 하는 ‘처음학교로’라는 이름의 유치원 입학관리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관계자는 “정부가 이번 실태 조사를 계기로 ‘유치원 어린이집 재무회계 투명성 제고 방안’을 내놓은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라며 “아무리 제도적 장치가 잘 정비돼 있어도 운영자의 도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로, 유아교육 기관 관계자 모두의 통렬한 반성이 우선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