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구속·미국 발 제재에 사드 보복까지 ‘사면초가’

재벌총수 구속, 다음 타깃 될까 잔뜩 움츠려
해법찾기 ‘전전긍긍’…당분간 재판에 올인
미·중 보호무역 강화로 신사업 줄줄이 보류
특검 수사로 총수 출국 금지…해외 사업 차질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재계가 국내외 잇단 악재로 사면초가 상태다. 국내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최순실 게이트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특검 수사로 인한 일부 총수들의 출국금지 조치로 해외사업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엉뚱하게 취업준비생들이 특검 ‘유탄’을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외 여건도 목을 조이는 형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중동국가들을 상대로 진행하던 신사업에도 차질이 생겼다.

중국도 각종 규제를 강화하는 등 전 방위적인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을 진행 중이다. 피해를 호소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방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로 떠오른다. 일각에선 일반인의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내놓고 있다. 

지난 17일 법원이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구한 구속영장 청구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은 즉각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조직을 재정비하는 모습이지만 대내외적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구속 후 삼성전자의 미국 내 평판은 7위에서 49위로 하락했고 그룹의 신 수종사업인 자동차 전장, 바이오, 헬스케어 등은 주춤한 모습이다.

롯데·CJ 특검 수사 촉각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역시 보류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전면에 등장한 2014년부터 약 3년간 15개의 해외 기업을 사들였다. 80억 달러(9조6000억원)를 들여 인수하기로 한 미국의 전장기업 하만의 경우 한국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 사례로는 최대 규모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대한 투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 부회장의 공백 기간 삼성은 불확실성 증대로 최대한 방어적 경영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각종 경영 일정을 미루는 대신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재판과 비상 경영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성열우 삼성 미래전략실 법무팀장을 필두로 한 미전실 법무팀은 변호인들을 보강하고 특검 측 논리를 반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1심 재판에 대비해 시간 제한이 없는 변호인 접견을 활용, 재판 준비에 총력을 기울일 예정이다.

이 부회장의 구속은 최순실게이트에 연루 의혹을 받는 다른 기업들의 불안감도 키우고 있다. 특검이 연장될 경우 롯데·CJ그룹 등 나머지 기업들로 수사가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특검이 연장되지 않더라도 남아 있는 최순실 게이트 검찰 조사와 반(反)기업 정서 등은 잠재 불안 요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기업들도 다시 ‘긴장모드’에 들어갔다. 신동빈 롯데 회장을 비롯해 특검의 수사 대상에 오른 다른 그룹들도 이 부회장의 구속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들 그룹은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자제하면서도 향후 특검의 수사 방향 등을 놓고 내부 대책회의에 들어가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면세점 특허권 획득을 위해 미르·K스포츠재단에 45억 원을 출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지난해 5월 K스포츠재단 하남 체육시설 건립사업에 70억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돌려받았다는 점을 두고 대가성 논란이 일고 있다. 롯데 측은 신 회장과 박 대통령이 만난 시점이 맞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며 ‘대가성’에 혐의는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CJ그룹은 손경식 CJ그룹 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이재현 CJ그룹 회장에 대한 사면 청탁을 했는지 여부에 대해 의혹을 받고 있다. CJ그룹은 이 회장이 2013년 7월 구속된 이후 3년간 오너부재로 인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또 다시 정경유착 의혹을 받고 있어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특검 수사는 이미 기업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순실 여파로 총수와 임원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출석하고 검찰 조사를 받아 회사 경영은 지난해부터 스톱 상태”라며 “각 기업이 대대적인 혁신을 통해 ‘투명 경영’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무리한 수사는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특검 유탄 취준생에 불똥

특검 ‘유탄’을 엉뚱하게 취업준비생들이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삼성과 현대차, 롯데 등 1만 명 이상을 뽑는 취업 시장 ‘큰손’들이 채용 일정과 규모 등을 확정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대 그룹 가운데 채용 일정을 확정한 곳은 SK, 한화, GS 등 3곳밖에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행보는 국내 기업들의 국외 여건도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지 못하면서 기업들이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고 있다.

특히 중동 시장을 새 활로로 삼았던 국내 기업들은 미국의 중동 압박으로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건설업계다. 우리 정부와 건설업계는 지난해 초부터 이란 시장 진출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국토교통부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정부 측이 금융 지원 방안을 추진하고. 기업들은 현지 지사를 설립하거나 수주 활동을 발 빠르게 개시했다. 실제로 대림산업은 지난해 12월 이란에서 2조3000억 원 규모의 이란 이스파한 정유공장 개선 공사를 수주했다.

이어 현대건설은 이란과 바흐만제노 정유시설 공사에 대한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대우건설은 테헤란 쇼말 고속도로 3공구 사업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는 등 실질적 성과를 거뒀다. 건설업계에선 향후 이란에서 최대 52조 원의 수주고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하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27일 이라크, 이란, 수단 등 이슬람권 7개국을 ‘테러위험국’으로 지목해 입국·비자 발급을 금지하며 양국의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이란 중앙은행도 달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고, 지난 3일 미국 정부도 이란의 탄도 미사일 발사 책임을 물어 개인 13명과 단체 12곳 등을 경제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이들 개인과 단체는 물론 이란 내 달러를 통한 경제 거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미국이 보다 강격한 제재에 돌입할 경우 향후 이란에서 우리 기업의 전망은 안개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현재 이란 내 사업 전망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가 제3국에게도 이란 경제 제재에 동참할 것을 강요할 경우 신사업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한항공은 40여년 만에 얻은 인천-테헤란 노선 신규 취항 계획을 잠정 중단했다. 대금 결제 및 송금 기준화폐가 달러인 항공사인 경우 사실상 이란에서 영업활동을 하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현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이란 노선을 신규 취항한다 해도 현지 지점 개설은 물론 항공권 판매 등 영업활동 전반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상 포기한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우리 정부도 미국의 이란 제재에 기한 국내리스크 대응 방안 등을 논의 중이다. 하지만 아직 뚜렷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는 실정이다.

중국에서의 ‘사드 후폭풍’은 부지를 제공한 롯데를 시작으로 중국에 진출한 국내 전 기업을 대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롯데그룹은 사드부지 제공 결정을 내린 직후 중국의 소방당국으로부터 전 롯데 계열사 매장에 대한 불시점검을 받았다. 이어 중국 선양에 3조 원을 투자한 쇼핑몰과 호텔, 테마파크 등을 조성하는 롯데타운 프로젝트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지난해 11월에는 일부 한국산 화장품에 대해 수입 불허 조치를 내렸고 12월에는 LG화학, 삼성SDI 배터리에 대한 지원금도 끊었다. 이로 인해 LG배터리를 사용하기로 했던 현대자동차의 전기차 출시도 덩달아 미뤄졌다.

SK플래닛에 1조 원을 투자하기로 한 중국국영기업은 사드 배치 결정 후 이유도 밝히지 않고 투자를 철회했다. 이러한 영향은 문화·레저산업으로도 번져 공연은 물론 방송·여행 일정까지도 무더기로 취소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재계 고위급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자국 이기주의 정책에 한국 기업은 무차별 무역보복과 차별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기업이 놓친 자리는 러시아와 일본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럴 때일수록 정부, 정치권과 기업 간의 협력이 긴밀하게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기업들이 자국에서 홀대를 넘어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찍혔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국내 기업들의 사면초가 상황은 한국 경제에 쇼크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당장 이 부회장의 구속으로 사업 탄력이 떨어진 삼성이 채용을 줄인 것만 해도 타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경유착 청산 필요성 강조

이처럼 대외 사업환경이 악화되고 있지만 국내 그룹들은 대응책 마련은커녕 올해 사업계획도 수립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부 기업은 재계는 올해 경영 키워드를 ‘불확실성’으로 정하고 사업계획 수립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에선 총수의 출국금지 장기화에 대한 우려 섞인 말을 하고 있다. 재판 출석 등으로 인해 법정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라 아예 출국 할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매년 다보스포럼에 참석했으나 올해는 출국금지 조치로 참석 못했다. 지난해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SK그룹 게열사 CEO들은 다보스포럼을 마치고 유럽, 북미, 중국 등 3개 대륙을 돌았으나 올해는 사실상 휴업 상태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외 악재의 해법을 찾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녀야 할 총수들이 국내에 발이 묶였다”며 “대기업들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계기로 정경유착을 청산해야 다시는 정치 리스크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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