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이 빚을 낳는 악순환, 이자 갚기도 버거워”

.<뉴시스>
가계 빚, 10년 만에 가장 빠르고 크게 증가 
‘제2금융권 손 보기’ 도리어 위험할 수도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가계부채가 2016년 연말 1300조 원을 넘었다. 지난 한 해 동안 141조 원이 늘어 연간 증가율은 11.7%에 달하며 이는 10년 만에 가장 빠르게 증가한 수치다.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제2금융권 대출 증가가 꼽혔다.

특히 제2금융권 주택 담보 대출이 높은 증가 폭을 보였다. 청년·중년실업난과 계속된 내수 침체 등도 가계 빚 의존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서울이 현 상황과 관련해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다.

서울 도봉구에 사는 40대 전모씨는 지난해 월세를 살다가 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30평대 집을 마련했다. 그는 “가족 중 돈을 버는 사람은 나 하나인데 매달 빠져나가는 월세금이 부담스러웠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집 살 때 당장 목돈이 없어서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을 받았다. 전 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이자에 원금까지 갚을 생각을 하니 막막했다. 하지만 노후 대비를 위해서도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전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제2금융권에서 생활비 대출을 받아야 했다. 이자와 원금을 갚는 것도 빠듯한데 초·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들어갈 돈이 생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전 씨는 “빚이 빚을 낳는 것 같다”며 “원금은커녕 이자를 갚는 것도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지난 21일 한국은행의 ‘2016년 4분기 가계신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가계신용은 1344조3000억 원에 달했다. 2015년 말 기준 1203조1000억 원에서 한 해 만에 141조2000억 원이 늘어난 것이다.

연간증가율로 따져도 11.7%로 2006년 말 이후 최대 증가 수치다. 이상용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장은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고 말했다.

가계신용은 은행이나 보험, 대부업체, 공적금융기관 등 금융기관에서 받은 대출과 카드 사용 금액 등을 말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신 심사 가이드라인 적용과 대출금리 상승 등으로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다소 둔화됐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617조4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3조5000억 원 증가했다.

지난해 3분기 전분기 대비 증가액은 17조2000억 원 에 비하면 상승폭이 낮아졌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도 지난해 4분기 442조6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9조 원 증가에 그쳤다. 지난해 2분기 증가폭이 13조 원과 3분기 13조4000억 원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소폭 증가한 편이다.

주택 담보 대출 비중 높아

하지만 문제는 제2금융권 대출의 급증이다. 지난해 12월 말 비은행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잔액은 291조3000억 원으로, 전분기 대비 13조5000억 원 증가했다. 분기별 증가액으로 역대 최대 수치다. 특히 제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증가폭이 2배 이상 커져 지난해 12월 말 잔액이 118조7000억 원에 달했다.

제2금융권의 대출은 은행권에 비해 훨씬 높은 이자를 내야 함에도 천정부지 전세가와 까다로워진 은행 대출 심사 등으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몰렸다.

숙박업 자영업자 성모씨는 “사업을 하다 보니 목돈이 들어갈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자 대출도 이미 많이 받은 상태라 지난해 업장 내부 수리 비용은 개인 명의로 제2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2금융권 이자가 만만치 않다. 힘들어도 은행 문턱은 높고 급할 때는 어쩔 수가 없다”며 “사실 사업이 언제 부도가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태다”라고 덧붙였다.

내수침체 청년실업도 원인

청년과 중장년층의 고용난과 내수침체 등도 빚 의존도를 높이는 원인으로 파악됐다.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50대 주부 이 모씨는 “대학 졸업 후 1년째 취업을 못하고 있는 아들 때문에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올해, 딸도 대학을 졸업하는데 그러면 집에 실업자가 둘이 된다”며 “취업 준비에도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당장 취업이 안 되니 아이들 학비 대출도 갚아야 하고 집값 대출 이자까지 더하면 허리가 휠 지경”이라고 호소했다. 그는 “남편마저 퇴직할 때가 다가와 불안해 죽을 지경”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가계부채에 대한 대책으로 제2금융권 리스크관리 적정성을 집중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정은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제2금융권 가계대출 간담회’에서 “제2금융권의 지나친 가계대출 확장은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리스크가 전이되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제2금융권은 외연 확장보다 리스크 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2차 경제현안점검회의에서 가계부채 동향 및 대응방향, 2015년 소득분배 악화원인 및 대응방향 등을 논의하며 가계부채 증가율을 한 자릿수로 줄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러한 급작스러운 조처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가계부채 증가는 갑자기 생겨난 위험요인은 아니며 월세 증가 등 주택시장 구조 변화와 관계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조사에 따르면 주택임대업자 개인이나 개인임대사업자 비중이 90%가 넘는 만큼 이들이 대출한 주택구입 자금은 위험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급작스러운 조치를 하지 않아도 경기가 좋아지면 자연히 약화될 수 있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제로 주택담보대출 용도로 21.1%와 5.9%가 각각 사업자금과 생활비였다는 통계를 이 근거로 제시한다. 제2금융권 대출을 줄이는 대책은 저소득 채무자를 더 많은 빚으로 내몰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교수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2금융권도 통제하기 시작하면 저소득 채무자들은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대부업체나 사채시장으로 가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