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이 깔렸다!” 숨죽이던 ‘샤이보수’ 태극기 아래 ‘결집’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촛불집회에 대한 맞불집회가 열렸다". 앞으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지난 1일 태극기 집회는 더 이상 촛불의 맞불이 아니었다. 사상 최대 인원이 모인 이날 태극기집회는 기세등등하던 ‘촛불’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태극기집회 주최 측은 이날 집회 인원이 500만 명 이상이라 발표했다. 주최 측 추산은 100% 신뢰할 수 없다고 치더라도 태극기집회 인원이 촛불집회 인원을 압도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권은 태극기집회의 ‘압승’ 이유로 ‘샤이보수’의 집결을 꼽는다. 그렇다면 전면에 나서기를 꺼려했던 ‘샤이보수층’에게 누가 태극기를 쥐어준 것일까. 전문가들은 ▲언론의 편향된 보도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한 야권의 도를 넘은 정치 행태와 종북세력의 득세 ▲‘가짜보수’ 김무성·유승민 의원에 대한 분노가 이들을 광장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공정보도로 태극기 민심에 화답한 MBC, 헌재는?
- 지지율 1% 유승민. ‘가짜 보수’ 들통나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최종 판결이 다가오면서 보수층 결집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지난 2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3월 첫째주 주간조사 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황 권한대행이 지난주 대비 3.7%p 올라 14.6%를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35.2%)에 이어 2위를 차지한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지난주 대비 4.4%p 하락해 14.5%를 기록했다. 황 대행의 지지율 상승은 곧 보수층의 결집을 의미한다.
 
보수층의 결집은 이제 더 이상 여권의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지난 1일 서울광장에 쏟아진 태극기집회 참가자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태극기집회 주최 측인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는 이날 집회 인원이 500만 명 이상이라고 발표했다. 주최 측 추산 인원은 무시하더라도 단순히 태극기집회가 열린 서울광장과 촛불집회가 열린 광화문 광장의 면적만을 보더라도 태극기 바람이 촛불을 꺼뜨린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평가다.
 
"언론, 대통령에 대한 보복적 차원의 반감 팽배”
 
이에 전문가들은 “‘샤이보수’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전면에 나서기를 부담스러워했던 ‘샤이보수층’을 깨운 일등 공신으로 ‘야당의 나팔수를 자처하는 듯한 언론’을 제일 먼저 꼽았다. 언론들은 탄핵정국에서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무분별한 의혹성 보도와 오보를 남발했다. 언론이 저널리즘보다도 상업적 이익에 눈이 먼 듯한 모습이었다. 실제로 일부 종편은 메인 뉴스 시청률에 따라 기자들에게 포상을 내릴 정도로 시청률에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탄핵의 방아쇠를 당긴 것은 JTBC의 ‘태블릿 PC 보도’였다. 입수 경로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전달 과정에 의도적인 조작이 가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폭로는 온 나라를 흔들었다. 그러자 다른 언론사들 역시 속보 경쟁에 뒤처질까 일제히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언론 담합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모든 언론이 한목소리를 내자 ‘언론은 사실만을 보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은 이 같은 보도를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동정권, 그리고 경제적 공동운명체”라는 한 언론사의 보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순실 씨가 대통령을 팔아 사익을 추구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최순실 씨를 ‘비리의 주범’이 아닌 ‘국정농단의 주역’으로 묘사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순의 비리와 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구분하지 않고 대통령의 통치 자체를 악의적으로 매도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쯤 되자 검찰도 여론을 의식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지켜 공정했다면 제일 먼저 태블릿 PC의 소유자와 그 획득 경로를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유한국당 박대출 의원은 이날 집회에 참석해 “진실을 보도하면 탄핵을 기각시킬 수 있다. 왜곡과 선동, 오류들이 국민을 흥분시키고 타락하게 했다”며 “잘못된 거짓들이 국민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으로 태극기집회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조갑제 씨도 박근혜 탄핵국면을 “언론의 난”으로 규정했다. 조 씨는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전 언론사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보복적 차원의 반감이 팽배했다”며 최근 태극기집회 규모의 증가는 “언론의 선동적 보도에 의한 분노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성 언론은 조작과 선동의 공범 집단”이라고 주장했으며, “조중동은 한 번도 박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적이 없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약점은 최순실이라는 비선과의 부적절한 관계였는데 언론 보도만큼 심각한 사안이 아니며 탄핵 사안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1절에도 종편의 선동은 계속됐다. JTBC는 오후 12시 10분부터 7시 55분 뉴스룸 방송 전까지 보도 프로그램을 편성하지 않고 태극기집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그나마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 3사가 오후에 편성된 보도프로그램을 통해 태극기 집회를 생중계했지만 “이전보다는 많네요” 정도의 두루뭉술한 앵커 멘트를 더한 것이 전부였다.
 
다만 MBC만은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태극기집회의 규모에 놀란 MBC는 이날 저녁 뉴스에서 태극기집회를 먼저 보도하고, 촛불집회를 그 뒤에 전했다. 광화문과 시청광장, 세종로를 잇는 끝이 보이지 않는 태극기 물결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탄핵반대 집회의 청와대 행진 모습, 수많은 군중이 모인 진짜 태극기 집회의 모습, 태극기 집회에 참여하는 젊은이들과 해외 교포들의 모습을 골고루 담아 왜곡 없이 전달했다. 태극기의 편도 촛불의 편도 들지 않은 공정한 보도였지만 워낙 태극기 시위대의 규모가 커 자연스럽게 태극기 시위가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정치권의 관계자들은 이 같은 MBC의 보도가 ‘샤이 보수층’의 마음을 더욱 흔들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에는 분위기 탓에 어쩔 수 없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이제는 판이 깔렸고, 광장에 나가 함께 태극기를 흔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친박 단체’를 중심으로 탄핵에 반대할 수 있는 나름의 논리도 만들어졌다는 확신이 섰을 것이라는 것.
 
종북 세력의 득세, ‘샤이보수’ 결집시켜...
 
한편 ‘샤이보수’를 깨운 두 번째 공신으로는 억지 탄핵을 주도하고 안보 불안을 야기한 야권과 종북 세력이라고 정치권은 분석한다. 지금까지 진보층의 대규모 집회에는 원래 취지와 동떨어진 요구를 하며 불법·폭력시위를 조장하는 세력이 늘 존재했다. 이로 인해 집회의 순수성은 훼손됐고, 동력이 끊긴다는 정치권의 비판에 매번 직면했다. 촛불집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촛불집회’ 장소에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하는 데 청와대가 개입했다며 내란선동 혐의가 확정돼 복역 중인 이석기 전 의원 석방을 주장하고, 제벌을 해체하라는 등 ‘촛불집회’의 취지와 전혀 관련이 없는 플래카드가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차 집회에서는 해산된 통진당 출신으로 이루어진 원외정당인 ‘민중연합당’ 당원들은 이석기·한상균·이정희 3인을 모두 거론하며 “억울한 희생양, 그들이 돌아와야 민주주의입니다”라고 주장하더니 역풍을 우려한 탓인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즉 옛 통합진보당 세력을 비롯한 종북세력이 기지개를 켜자 대한민국이 종북 세력에게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낀 ‘샤이보수층’이 발톱을 드러낸 것이고 나아가 보수층 재결집의 구심점이 됐다는 것이다. 친박 핵심인 윤상현 의원은 이날 태극기집회에서 “탄핵 사태의 본질은 야당과 좌파세력이 힘을 합쳐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을 찬탈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짜 보수’ 응징 위해 모인 ‘진짜 보수’
 
‘샤이보수’를 광장으로 이끈 이들은 문 전 대표를 앞세운 좌파세력뿐만이 아니다. 유승민·김무성 의원을 비롯해 박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비박계도 이들의 뜨거운 결집에 기름을 부었다고 정치권은 지적한다. 실제로 바른정당의 정당 지지율과 당내 대선주자인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지사의 대선 지지율에서도 보수층의 분노가 그대로 드러난다.
 
태극기는 TK에서 시작돼 결국 광화문에서 촛불을 압도하기에 이르렀다. 바른정당은 ‘보수의 심장’ TK에서 ‘배신자 낙인’이 찍히며 민주당보다도 낮은 지지율에 맥을 못 추고 있다. 촛불을 꺼뜨린 태극기 바람의 원동력이 ‘배신자’들에 대한 분노, 특히 ‘가짜 보수’를 응징하기 위한 ‘진짜 보수’의 집결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태극기집회에 참석한 자유한국당 조원진 의원은 “배신의 정치, 탄핵의 주범인 (바른정당의) 유승민, 김무성 의원을 절대 잊지 말자”며 “유승민, 김무성은 대한민국에서 몰아내자. 탄핵 주범을 몰아내는 현장인 대구(집회)에 내일 오셔서 같이 하자”라고 호소했다.
 
김진태 의원 역시 “정치권 한쪽에서는 박 대통령이 탄핵 선고 전에 자진해서 사퇴하라는 말이 나온다”며 “탄핵이 기각되면 바른정당인지, ‘안바른정당’인지가 국회의원 총사퇴를 한다고 해놓았는데 기각될 것 같으니까 이런 입장을 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승민 의원은 아직 상황을 냉철히 판단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 의원은 지난 1일 대통령의 탄핵 심판과 관련해 “김무성 형님은 100% 인용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셨는데, 혹시 재판관들 들으면 기분 나쁠까봐 저는 99.9% 확신한다”며 태극기 세력을 한껏 자극하는 발언을 내뱉었다. 보수층의 민심을 얻어야 하는 대권 주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유 의원은 한 술 더 떠 “헌재의 결정이 나고 나면 제 지지도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지 한번 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기도 했다.
 
이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되면 보수층의 민심이 본인을 향할 것이라는 건가. 도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생각하나. 정치하는 사람 맞나”라며 “문재인도 그렇고 정치권에 ‘탄핵’이 유행하더니 이젠 ‘착각’도 유행하나 보다”라며 조소했다.
 
박 대통령 탄핵심판이 최종 선고만을 앞둔 시점에 태극기 바람은 촛불을 꺼뜨렸다. ‘샤이보수층’도 깨어났다. 비록 MBC 뿐이지만 촛불에 편향되지 않은 공정한 언론 보도도 나오기 시작했다. “태극기집회에 맞서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맞불집회도 열렸다”는 말이 더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세가 바뀌었다는 게 중론으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불구하고 만약 탄핵심판이 인용된다면 그 후폭풍은 고스란히 야권과 종편의 몫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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