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호(오른쪽) JW중외그룹 명예회장.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꼼수가 판을 친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이번 호는 JW중외그룹이다.
 
JW중외제약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는 JW중외그룹 이종호 명예회장은 지난 2011년 8월 ‘중외학술복지재단’을 설립했다. 선친인 고 이기석 창업주의 ‘생명존중’ 정신을 계승해 만든 비영리 공익법인이다.
 
이 창업주의 호(號) ‘성천’을 따 만든 성천상을 제정해 매년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의료인을 발굴해 1억 원의 상금도 수여한다. 아울러 재단은 학술장학사업, 문화복지사업, 장애인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당시 설립 취지를 두고 ‘순수한 의도’를 의심받은 적이 있다. 공익사업의 목적이 사회공헌보다는 그룹 경영권 승계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그룹 지주사인 JW홀딩스의 지분 8.01%를 보유한 2대주주다. 재단의 이사장은 이 회장이다. 이 명예회장은 재단을 설립한 직후부터 자신이 보유한 JW홀딩스 주식을 재단에 출연해왔다.
 
2011년 15만주(0.32%)를 시작으로 2012년 4만주(0.09%) 등 2015년까지 총 453만5000여 주를 출연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이 회장은 11.16%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현재는 2.61%로 줄었다.
 
이는 이 회장이 아들 이경하 회장에게 실질적인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이뤄져 더욱 주목을 끌었다. 이 부회장은 JW홀딩스의 최대주주(27.7%)다.
 
당시 회사 측은 “2007년 지주사 전환으로 지분구조는 완성된 상황”이라며 “경영권 승계를 위해 재단을 설립했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해명은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업들이 재단의 면세 혜택을 이용해 경영권 승계에 활용하는 공식을 중외학술복지재단이 그대로 대입했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이 5% 이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가 모두 면제된다. 성실공익재단의 경우 10%까지 적용된다.
 
중외학술복지재단은 설립 2년 만에 기획재정부로부터 성실공익재단으로 지정됐다. 2011년, 2012년에는 1% 이하의 지분을 취득한 상태로 있다가, 2013년 8월 성실공익재단으로 지정되자 두 달 후인 10월 7.61%의 지분을 한꺼번에 출연했다. 총 8.01%의 지분을 출연한 데 대한 세금은 단 1원도 내지 않았다.
 
재단이 가진 지분은 최대주주의 우호지분에 포함된다. 향후 재단 이사장직을 자녀에게 물려주면 세금은 피하면서도 지분을 넘겨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출연 당시 400억 원에 가까운 금액의 주식을 내놨는데, 이를 아들에게 증여했다면 절반을 세금으로 냈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의도야 어찌 됐든 재단을 설립해 주식을 출연하는 방식으로 고스란히 지분을 넘겨주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배당을 통한 수입은 이런 의심의 눈초리를 짙게 한다. 재단 설립 이듬해 중외홀딩스는 12억1200만 원의 배당을 실시했다가 ▲2013년 12억 7300만 원 ▲2014년 13억3600만 원 ▲2015년 25억3400만 원 ▲2016년 46억7800만 원 등 매년 배당금을 높여왔다. 이 중 8.01%는 재단의 수익이 된다.
 
반면 목적사업비는 축소하고 있다. 재단은 2015년 문화복지사업에 1억4600만 원, 장애인지원사업 1억8300만 원, 성천상사업비 1억7500만 원 등 총 6억6600만 원을 사업비로 지출했다. 전년(7억2000만 원)보다 약 5400만 원 줄었다.
 
문화복지사업비와 학술장학사업비(4200만 원)의 경우 같은 해 급여 등 관리비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지출했다. 학술장학사업비는 그나마 전년보다 3배가량 늘어난 비용이다.
 
이 명예회장이 재단에 주식만 기부하고 현금은 출연하지 않은 점도 의아한 부분이다. 사업비가 부족하다면 주식보다는 현금을 기부하는 게 사업 운영상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재단에 출연된 현금은 모두 JW중외제약·중외신약·중외메디칼 등 그룹 계열사들로부터 끌어왔다.
 
재단사업에 대해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전형적인 경영권 승계 꼼수로 보인다”며 “본래 목적이 공익사업이라고 하기에는 재단의 자산 규모에 비해 사업비 책정이 터무니없이 적다. 지역의 일부 소규모 재단의 사업비보다 지출 규모가 작다는 건 사실상 ‘보여주기 식’ 사업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중외학술복지재단 관계자는 승계목적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 승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설립됐다”고 일축했다. 지난해 사업비에 대해서는 “임의로 공개할 수 없다”며 홍보실을 통해 공개를 요청하라고 했다. 일요서울은 홍보실과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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