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낚시’ 가짜 뉴스에 흔들리는 사회

<뉴시스>
‘최순실 일가’ 재산 10조 원, ‘트럼프, 박대통령 비하’ 등
탄핵심판·조기대선 ‘비상 국면’에 가짜 정보 쏟아져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대한민국이 가짜 뉴스에 몸살을 앓고 있다.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과 조기 대선, 특검 수사 등 사회·정치적 상황이 ‘비상 모드’에 돌입하면서 가짜 뉴스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정미 헌재재판관 남편은 통진당원’, ‘문재인은 북한 정치인’, ‘트럼프가 박 대통령 비하’ 등 정치적 의도를 가진 가짜 뉴스가 판쳤다. 가짜 뉴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속히 퍼지기 때문에 파급력이 상당하다. 또 최근에는 기사 형식으로 진화해 마치 ‘진짜 뉴스’처럼 사람들을 현혹한다. 여기에 언론의 과잉 의혹 보도도 이 같은 상황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짜 뉴스가 이슈화된 건 지난해 11월 무렵부터다. 국내가 아닌 ‘미국 대선’ 상황과 관련된 미국 발 가짜 뉴스였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가 예상을 깨고 당선되자 세계적 IT 회사 페이스북이 ‘가짜 뉴스’ 유통 경로로 지목돼 논란이 됐다. 당시 페이스북에서는 언론이 보도한 진짜 뉴스보다 가짜 뉴스가 더 많은 누리꾼의 관심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 당선에 가짜 뉴스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 언론사들은 이 무렵부터 ‘가짜 뉴스’를 부쩍 많이 다루게 됐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상세검색에서 ‘가짜 뉴스’라는 단어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하면 총 4567건(3일 오전 10시 기준)이 나온다. 이 중 4200건이 지난 4개월 간 생산된 기사다. 가짜 뉴스가 그 자체로 뉴스가 된 건 최근이란 뜻이다.
 
헌재 선고 임박하자
재판관 주요 타깃

 
‘최순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조기 대선과 특검 수사 국면까지 대형 정치적 이슈가 쏟아지면서 SNS를 통해 가짜 뉴스가 활개를 치는 상황이다. ‘비상 국면’을 맞아 각종 선전·선동·유언비어 등이 난무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헌법 재판관들에 대한 가짜 뉴스가 떠돌고 있다.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이 주요 타깃이 됐다. ‘이정미 재판관 남편이 통진당 당원’이라는 글이 지난달 27일 한 인터넷 블로그에 게시돼 빠르게 확산됐다. 이 재판관의 남편인 신혁승 숙명여대 교수가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것이 요지다.

하지만 이 재판관은 통진당과 거리가 멀다. 이 재판관은 2014년 통진당 해산심판 당시 주심 재판관이었으며, 해산이 정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남편 신 교수는 당적조차 가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가짜 뉴스를 피해갈 수 없었다. 1999년에 여 기자를 성추행했다는 박영수 특검에 대한 루머가 지난달 초 나돌았다. 지금도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블로그, 카페 등에서 성추행 내용이 담긴 글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반박하는 내용의 사이트도 혼재돼 있는 상태다.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이 법무부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박 특검은 검사 재직 시절 성범죄에 연루돼 징계를 받은 사항이 없다.

지난달 말에는 특검 기한 종료가 다가오면서 박 특검이 사퇴할 것이란 소문이 퍼졌다. 자진 사퇴해 특검이 공석이 되면 후임이 임명될 때까지는 수사 기간에 포함되지 않아 수사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특검팀 관계자는 “특검 관련 사퇴 관련 지라시는 사실무근이다. 검토한 사실조차 전혀 없다”고 일축했고, 지난달 28일 특검 수사는 종료됐다.
 
정치인은 ‘단골’ 대상
언론 오보도 다수

 
가짜 뉴스는 정치적 의도를 담아 유포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선 주자’급 정치인들은 늘 공격의 대상이 된다. 이들에 대한 가짜 정보는 최근 ‘위키백과’라고 하는 온라인 백과사전에까지 등장했다. 누구나 편집이 가능해 집단 지성으로 운영되는 ‘위키백과’에는 지난달 27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의 국적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소개돼 있어 논란이 됐다. 지금은 정상으로 복구돼 있으며, 논란이 되자 이들에 대한 편집권은 현재 제한된 상태다.

또 지난달 25일 주말 집회를 앞두고는 ‘박원순 며느리가 김재규 딸’라는 제목의 글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딸은 1950년대 초에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박 시장(1956년)보다 일찍 태어난 것이어서 사실상 거짓으로 알려진다.

이 같은 가짜 뉴스는 언론의 과잉 의혹 보도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턱받이’ ‘퇴주잔’ ‘유엔법 위반’ 등 언론의 집중 대상이 됐던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달 초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인격살해와 가짜 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고 한탄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각종 논란 이후 해명과 상황 설명 등 ‘진짜 뉴스’를 위해 노력했지만 이미 상당한 타격을 받은 뒤였다.

‘최순실 사태’에 대해 쏟아졌던 언론 보도 중에는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 여부가 규명되지 않은 뉴스도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최순실 일가 재산 10조 원’, ‘트럼프가 박 대통령 비하’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특검은 전담팀을 꾸려 최 씨 일가 재산을 추적해왔는데 현재까지 정확한 재산 규모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특검이 지난달 24일 밝힌 최 씨의 은닉 재산 규모는 최소 100억 원 대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초 한 방송사는 “여자 대통령의 끝을 보려면 한국 대통령을 보라”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언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보도는 한 네티즌이 트럼프 사진에 관련 내용을 합성해 페이스북에 올려놓은 가짜 뉴스로 확인됐다.

가짜 뉴스는 확산 속도가 빠른 온라인 정보유통 시대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하다. 여기에 자기가 믿고 싶은 정보만 믿으려는 대중의 ‘확증 편향’을 유혹하는 내용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실을 전달하는 ‘진짜 뉴스’보다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악의적인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서는 엄정 처벌하는 한편, 언론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기자협회 자문을 맡고 있는 김태완 변호사는 지난달 23일 가짜 뉴스 관련 토론회에 참석해 “가짜 뉴스의 악의적 목적, 사회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법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면서도 “보다 중요한 것은 언론이 스스로 검증하고 비판기능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독자들도 가짜 뉴스에 현혹되기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언론에 힘을 실어줘 가짜 뉴스가 시장에서 퇴출당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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