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아냐? “몸 찍힐까 두려워”

‘방수 휴대전화’ 목욕탕 내 휴대한 사람들 곳곳
급한 업무·아이들 찍기 vs 몰카 위험·기본 매너 필요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대중목욕탕에서 몸을 씻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사용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경우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일 듯하다. 

최신 스마트폰은 방수(防水) 기능이 장착돼 물 속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목욕탕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종종 목격된다. 목욕탕 내 매점을 운영하는 50대 엄모씨는 “스마트폰을 가지고 탕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을 최소 하루 3명은 넘게 본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행동이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켜 사람들 간 다툼이 되거나 범죄 행위로 비화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몰카 공포’가 바로 그것이다.

직접 촬영 시도해봤더니
시민, "꺼림칙해서 나왔다"

 
지난 2일 밤 서울 중구의 한 목욕탕. 기자는 스마트폰 목욕탕 반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기 위해 대중목욕탕을 찾았다. 평일 밤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목욕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밤늦게도 이어졌다. 탈의 후 방수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을 들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가볍게 샤워한 후 온탕에 몸을 담근 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온탕에는 3명이 피로를 풀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취재를 위한 사진(셀카) 찍기를 시도하자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주변을 살피다 눈도 몇 번 마주쳤고,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다만 직접 대놓고 화내는 사람은 없었다. 5분쯤 지나 다들 자리를 떴다. 이들 중 한 명에게 자리를 뜬 이유를 물었다. 이 남성은 “나를 찍는 건 아닌 것 같아 크게 신경 쓰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꺼림칙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목욕탕 내 스마트폰 사용은 무엇보다 몰카(몰래카메라)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이 같은 우려는 남성보다 여성들 사이에서 높을 수밖에 없다. 직장인 이모씨(28·여)는 “(목욕탕 내 스마트폰 사용자를) 아직 본 적은 없지만 몸이 찍힐 것 같아 가기 꺼려진다”고 말했다.
 
몰카 노출 우려
관련 사건도 잇따라

 
최근 잇따라 발생한 몰카 사고는 이 같은 우려를 증폭시킨다. 지난달 11일 여성우월주의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 ‘워마드’에서는 대중목욕탕에서 목욕 중인 남성 10명의 알몸 사진이 수십 장 올라와 논란이 됐다. 사진에는 남성의 얼굴은 물론 중요한 부분까지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게시물을 올린 해당 여성은 목욕탕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적었다. 남탕과 여탕 모두 저녁 8시 이후로 영업을 종료하고 청소를 해 몰래카메라 설치가 쉽다며 범행 수법에 대해 밝히기도 했다. 이 여성은 초소형 카메라를 구입해 남자 목욕탕 속 틈 있는 곳에 설치한다며 주로 비누통 같은 곳에 숨겨놓았다고 밝혔다.

지난 1월엔 경기도 안양의 한 목욕탕에서 40대 남성이 여장을 하고 여탕에 들어가 몰카를 찍은 사건이 있었다. 이 남성은 주요 부위를 가린 채 목욕탕 대기실에서 지나가는 여성 2명을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휴대전화 반입 찬반
어느 쪽 우세?

 
목욕탕 스마트폰 반입 여부는 ‘몰카’에 대한 우려와 타인 배려 등 이유로 반입을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과 급한 전화 등 업무상 필요하거나 자녀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찍기 위해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나뉜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최모(37)씨는 “아이들과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좋은 장소 중 하나가 목욕탕”이라며 “다른 사람의 신체가 나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애들 사진만 찍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씨(33)는 “뭐 성격상 ‘나를 찍진 않겠지’라며 크게 개의치 않을 것 같다”고 찬성의 뜻을 밝혔다.

반면 서울 양천구 주민 박모씨(34)는 “급한 전화는 끝내고 목욕하면 되고, 본인 자식도 소중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남한테 피해 주는 행위는 자제하는 게 기본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공무원인 권모(30)씨도 “자녀들이 물 속에서 즐겁게 노는 사진이 찍고 싶다면 굳이 목욕탕 와서 남에게 피해줄 것이 아니라 펜션 같은 곳에 가는 것이 맞다고 본다”며 “만약 반입을 허용하면 어떻게든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목욕탕 반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은 반대가 오차범위 내로 소폭 우세했다. 반대 응답이 48.4%로, 찬성 응답 41.9%에 비해 6.5%p 높았다. 다만 이 조사에서 목욕탕 범위는 탕 안뿐 아니라 ‘대기실’까지 포함한 조사였다.

온라인 이슈 토론 공간 ‘네이트큐(Q)’에서 지난 2일 종료된 결과는 반대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네이트큐(Q)’가 “‘방수 스마트폰’ 목욕탕 반입 갈등…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설문 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97%로, 찬성 의견은 3%에 그쳤다.

목욕탕 내 몰카 촬영 단속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몰카가 의심돼 신고를 해도 경찰이 개인 휴대전화를 강제로 볼 수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강제 확인하려면 압수수색 영장이 필요하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교수는 “사회 어느 영역이든 법보다 윤리규범이 선행돼야 한다”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까지 이어지면 법적 제재가 필요하지만 지금은 예절과 도덕의 관점에서 ‘자정 능력’을 갖춘 시민들의 스마트폰 이용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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