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의 대표적 단어로 ’탈(脫)진실(Post Truth)‘을 꼽았다. ’탈진실‘의 뜻은 여론형성에 있어서 객관적인 ’진실‘ 제시보다는 선정적인 호소가 더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여론은 냉철한 사실보다는 뜨거운 감정과 느낌에 쉽게 흔들린다는 의미이다. 작년 예상을 뒤엎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도 유권자들이 선정적 감정 호소에 넘어간데 기인했다. ‘탈진실‘ 시대의 부작용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시위대의 격분과 매주말 벌어지는 촛불집회도 ‘탈진실’ 사회의 부산물이다. 시위 참여자들이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채 허위 폭로와 선정적 감정 호소에 격분한 탓이다. 
우리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책 입안과 결정 과정에서 최순실 씨에게 의존했다는 언론보도에 분노했다. 박 대통령은 특정 사안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에게 “최(순실)선생님 의견은 들어봤나요?”라고 물었다고 보도되었다. 국민들은 이 대목을 접하며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일개 비선 아줌마에게 의존했다는데 실망과 좌절을 터트렸다. 촛불 시위대는 “최 선생님 의견은 들어봤나요” 대목을 띄우면서 시위 군중을 더욱 자극했다. 
하지만 한참 후에서야 검찰은 그 보도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허위 유포로 국민들은 이미 격분할 대로 격분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해 판단하지 않고 근거 없는 악성 루머에 분개한 때문이다. ‘탈진실’ 사회가 빚어낸 최순실에 대한 증오 확산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사태 수습을 지휘하지 않고 관저에서 미용 시술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국민들을 분노케 했다. 박 대통령이 그날 오전 관저에서 필러·보톡스 등 미용 시술을 받았거나 프로포플을 맞고 잠자느라고 늑장 대응해 세월호 참사를 빚어냈다는 주장이었다. 이른바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문”이다. 박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문”은 탄핵 사유에까지 포함되었다. 
그러나 지난 2년여에 걸친 조사 결과 4월16일 미용 시술은 없었던 걸로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7시간” 동안 계속 청와대에서 집무한 것으로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보고를 받기 30분 전 세월호는 이미 50도 이상 기울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의 미용 시술과 늑장대응으로 빚어졌다는 근거 없는 주장이 꼬리를 물어 결국 탄핵 사유에도 포함되었다. 이것도 객관적인 사실을 외면한 채 선정적인 감정 자극에 흔들린  ‘탈진실’ 사회의 부작용이다. 
작년 10월28일 서울의 한 일간지는 청와대 경찰 경비 책임자인 경호실 경찰관리관(경무관)과 101경비단장(총경)이 좌천되었는데 그 이유가 최순실 씨에게 잘못 뵌 탓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 경찰관들이 청와대를 출입하는 최 씨를 알아보지 못하고 검문검색을 했기 때문이라는 보도였다. 그러나 해당 경찰관들의 보직 변경은 “인사 주기에 따라 정상적으로 발령난 것일 뿐 좌천된 게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이 또한 ‘탈진실’ 시대가 빚어낸 사실 왜곡이었다.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탈진실’ 사회가 떠올린 허상이라며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최순실 국정농단은 법대로 단죄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 규명에 입각해야 한다. 객관적 사실을 외면한 채 뜨거운 감정과 느낌에 파묻힌다면 최순실 국정농단보다 더 무서운 국가적 폐해를 몰고 온다. 헌정과 법질서를 파괴한다. 빈대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워선 아니 된다는 데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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