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보복 심화, 둘로 갈린 정치권, 초긴장 재계…격변의 한반도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한·미 군 당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작업이 전격적으로 시작됐다. 국방부는 “미군이 6일 밤 발사대 2기와 일부 장비를 수송기를 통해 반입했다”라고 밝혔다. 사드 부지가 조성되지 않았음에도 장비부터 들여온 셈이다. 중국은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보복을 시작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중국 내 롯데마트다. 7일 현재 중국 롯데마트 23곳이 영업정지로 문을 닫았다. 뿐만 아니다. 한류 드라마와 예능에 이어 애니메이션 업계까지 보복 의심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정치권도 갑론을박이다.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이 맞부딪치면서 진흙탕 싸움이다. 탄핵 결정으로 야권에 힘이 실리면서 사드 배치 충격파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지만 미국과의 동맹으로 인해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美 ·中 절대 양보 없는 벼랑 끝 대치
中보복, 국내 피해기업 긴급 자금지원

이미 중국과 미국이 절대 양보 없는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운데 끼어서 눈치 보기 급급한 상황이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해도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중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배치를 한국과 계속 협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자원들을 투입할 준비가 돼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사드 반대 입장 표명에 미국이 정면 반박한 것이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중국과 러시아의 사드 배치 반대 입장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이 바위처럼 견고하다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에 대한 한미 양국의 협의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상호 군사협력을 한층 강화하며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러시아 타스통신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28일 만나 올해 역대 최대 규모의 육상과 해상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한미군 사드 배치를 시급한 현안으로 보고 강력하게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유통업계 집중포화 ‘씁쓸’

문제는 지금의 이 상황이 쉽게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이 취하고 있는 사드 배치 관련 보복성 조치로 인한 피해가 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중국 진출 국내 유통업계는 물론 국내 여행업계와 엔터테인먼트 사업까지 줄줄이 빨간불이 켜졌다.

<정대웅 기자>

중국 언론들은 연일 ‘롯데 때리기’로 소비자 불매운동을 부추기고 있어 중국 내 반한 감정도 극심해졌다. 롯데그룹 중국 홈페이지가 지난달 28일 해킹당해 10일 현재까지도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며 롯데면세점 모든 사이트가 디도스(DDos)공격으로 3시간여 마비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여기에 산둥(山東)성의 칭다오(靑島) 검험검역국은 최근 롯데제과 요구르트 맛 사탕에서 금지된 첨가제가 적발·소각 조치했으며, 롯데마트 중국 매장 중 절반이 넘는 55개 매장에서 소방법 위반 등의 이유로 영업 정치 처분을 받았다.

배치 결정 1년도 안돼 ‘속전속결’, 뒤집기는 힘들어
군 당국 정치 고려된 바 없다는 입장 재차 강조


이밖에도 면세점, 화장품, 식음료, 관광 등의 업계에서도 크고 작은 피해가 이어지면서 업계 전반으로 퍼지고 있다.

면세업계와 화장품 업계에서도 마땅한 대책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은 804만여 명으로 이중 개별 여행객과 단체 관광객은 6대4의 비율을 이뤘다.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따진다면 여행사를 통한 방한 중국 관광객은 이중 60~70%다.

면세업계 1위 롯데면세점의 경우 지난해 소공동 롯데면세점 본점에서 3조1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중 중국인 관광객의 매출은 2조6000억 원으로 80%가량 차지한다.

호텔신라가 운영하는 장충동 신라면세점도 지난해 매출 1조4000억 원 중 70~80%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그나마 대형 면세점의 경우는 어느 정도 타격을 예상하며 버텨낼 수 있지만 지난해 오픈한 신규면세점의 경우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도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 9일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에 따르면 오는 4월말 열리는 중국 항저우(杭州)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주최 측은 지난 8일 한국관의 설치와 한국업체에 대한 시설 대여 불허를 통보했다.

이유는 소방안전관리법 위반이다. 이는 중국 당국이 현지 롯데마트에 대해 대거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내세운 사유와 같다.

콘진원은 4월26일부터 5월1일까지 열리는 항저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한국관을 설치하고 한국 애니메이션업체 27개사의 작품을 홍보할 예정이었다. 또한 이들 업체가 바이어들과 수출 상담을 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국 측의 통보로, 사실상 한국업체들의 참여가 불가능해졌다. 한국업체가 개별적으로 참가신청을 해도 출입 패스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기업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사드와 탄핵을 한 번에 겪으면서 느끼는 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산 넘어 산이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특검 수사를 준비하다 중국의 역차별까지 대응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정신이 없다”고 전했다.

박영수 특검팀으로부터 수사를 넘겨받은 검찰의 칼끝이 탄핵 인용으로 더 날카로워졌기 때문이다. 야권 후보가 차기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검찰은 조직 보호를 위해서라도 전례없이 강하게 재계를 압박해 ‘희생양’을 삼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제) 기업은 그냥 죄인이 돼버린 상황이다. 인용된 만큼 검찰 수사가 무섭다”며 “그냥 목만 드리우고 있는 것이 재계의 공통 상황일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중장기적으로는 경제민주화 법안들도 고민이다. 현재 국회에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 대표소송 도입, 자사주 처분 규제 부활 등 기업 경영권을 제약하는 ‘경제민주화법안’이 대거 계류돼 있다. 탄핵안이 인용으로 친박 성향의 자유한국당이 사실상 와해될 경우, 야권 주도로 관련법안들이 대거 통과될 수도 있다.

또 야권 후보 사이 선명성 경쟁을 위해 ‘경제민주화 공약’이 대선 공약으로 대거 제기될 경우 기업 경영 환경은 또 한번의 변곡점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사드 배치 신경전 최고조

정치권도 대립하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북 핵·미사일 위협이 고조된 상황에서 올바른 결정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자유한국당의 김성원 대변인은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북한이 어제도 탄도미사일을 4발이나 발사하며 대한민국과 동북아시아의 안위를 위협하고 있는 안보 위기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사드를 배치하는 것은 올바른 결정으로 환영한다”고 전했다.

바른정당의 유승민 의원은 같은 날 “사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용 무기인 만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철수 전 대표는 사드 배치 문제가 이미 미국과 합의한 것이라 되돌리기 어렵다는 견해다.
안 전 대표는 지난 3일 ‘설왕설래’와 진행한 페이스북 생방송 인터뷰를 통해 “지금은 최대한 중국을 설득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미 미국과 합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안 전 대표는 “외교의 중요한 원칙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국익이 최고의 가치고 두 번째는 국가 간 합의한 사항은 다음 정부에서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는) 국가 사이에 합의한 것이지 정권끼리 합의한 것이 아니다. 국가는 연속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은 국회의 의견을 무시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전 대표는 3일 오후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진행된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에 참석해 “차기 정부가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며 “탄핵당한 정부가 결정해버리면 다음 정부가 외교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표는 또한 “어려움을 외교적으로 해결해 안보를 함께 지켜낼 복안과 자신이 있다”라며 “중국의 과도한 조치에 유감을 표현하고, 경제보복 중단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만약 사드 배치를 거부하면 한국과 미국의 동맹관계를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안 지사는 지난달 13일 SBS에서 방영된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출연해 “사드 문제를 박근혜 대통령은 북핵으로부터 우리 안보의 이익을 이야기했지만, 사실은 미국이 해외 주둔지 방어무기 체계로 보내는 것”이라며 “(사드 배치를) 거부하는 것은 한미동맹을 근본부터 흔드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군 당국은 정치가 고려된 바 없고 정치 일정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결정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또 한번 소용돌이 칠 전망이다.

반면 차기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한미 동맹 간 사드 배치 약속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미국이 한반도 사드 배치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만큼 한국이 사드 배치 재논의를 요구할 경우 한미 동맹의 균열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피해업계 지원 방안 강구

한편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배치 결정 이후 발생하는 중국과의 통상문제와 관련해 필요하다면 관련업계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유 부총리는 지난 8일 정부 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최근 불거지는 통상문제 영향과 금융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필요 시 관련업계에 대한 지원방안 강구, 시장안정조치 등 신속하고 단호한 대응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드 배치로 피해를 보는 업종에 지원책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유 부총리는 “최근 중국에서 발생하는 일련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 우리 기업과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중국과의 경제·외교적 노력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9일 중국을 향해 사드 배치 시작 이후 더욱 강경해지고 있는 경제보복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정 이사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소상공인연합회와 동반성장국가혁신포럼이 공동주최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에 가슴이 아프다” 며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에 있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청도 중국 사드보복으로 인한 중견·중소기업들의 피해가 우려되는 바, 이날 ‘대(對)중국 수출 중소기업 간담회’를 열고 중소기업진흥기금 운영계획 변경을 통해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예산을 750억 원에서 1250억 원으로 500억 원 늘릴 계획을 밝혔다.

긴급경영안정자금 신청요건에 ‘보호무역 피해기업’을 추가하는 등 피해기업 지원책을 마련하고, 지난 2월부터 전국 14개 지방수출지원센터를 통해 운영 중이던 보호무역 모니터링 체계를 중국대응 TF로 격상한다. 아울러 아세안, 아(阿)중동, 중남미, 인도 등 신흥지역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 특정국가 의존도를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 롯데 등 한국 기업의 제품을 많이 팔아주자’며 국민 차원의 피해보상 운동까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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