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는 선수 지원, 뒤에선 월급 ‘슬쩍?’

▲ 이천대교여자축구단 홈페이지 캡쳐.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눈높이 학습지’로 유명한 대교그룹의 강영중 회장은 국내 체육계와 인연이 깊은 기업인으로 꼽힌다. 강 회장이 지난 20년간 열악한 환경에서 땀 흘리는 국내 체육인들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데다, 각종 스포츠 단체의 요직을 맡아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순수한 의도’가 의심을 받는 상황에 처했다. 계열사의 한 대표이사가 그룹 소속 스포츠단의 월급 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으면서다. 이 대표는 그룹 스포츠단 단장, 사회공헌실장을 동시에 맡고 있다.
 
강 회장은 IMF 구제금융 위기가 불어 닥친 지난 1997년 ‘대교눈높이 배드민턴단’을 창단하면서 체육계와 처음 연을 맺었다. 비인기 종목으로 분류돼 형편이 좋지 못한 배드민턴 선수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가 식기 전 ‘대교캥거루스 여자축구단’을 창단해 선수들을 육성했다.
 
그의 지원은 물밑에서 그치지 않았다. 강 회장은 세계배드민턴연맹 회장,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등을 거쳐, 지난해까지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대한체육회 회장을 역임하며 체육계의 이익을 대변했다.
 
또 예체능 유망주를 발굴해 지원하는 세계청소년문화재단을 설립, 직접 이사장을 맡아 수영·육상·체조 등 기초종목 선수들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강 회장의 전폭적인 후원은 열악한 스포츠계에 ‘한줄기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체육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비인기 종목의 경우 어렵게 생활하는 선수들이 많다. 간혹 훈련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스포츠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없는 건 아니지만 대교그룹만큼 오랜 기간 애정을 쏟은 곳은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런 강 회장의 ‘스포츠 사랑’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있다. 강 회장과 가장 가깝다고 알려진 서명원 대교에듀캠프 대표다. 그는 1997년 배드민턴단에서 감독직을 맡으며 강 회장과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 대표는 배드민턴 국가대표 선수 출신이다.
 
재계 관계자는 “서 대표는 강 회장의 최측근”이라며 “(서 대표가) 스포츠단 단장을 맡으며 방수현, 라경민 등 걸출한 선수들을 배출시키고, 여자축구단을 W-K리그에서 3번이나 우승 시키면서 강 회장의 총애를 받게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대교스포츠단 단장, 그룹 총괄 스포츠단 단장, 대교그룹 비서실장 등을 차례로 맡았고, 지난해에는 그룹 계열사인 대교에듀캠프와 강원심층수의 대표자리까지 꿰찼다.
 
강 회장과 서 대표의 물질적·정신적 후원은 재계와 체육계 안팎에 크나 큰 귀감으로 남는 듯 했다. 그러나 대교그룹이 경찰의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분위기가 급반전했다. 지난달 21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대교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했다.
 
혐의의 내용은 이렇다. 대교그룹 사회공헌실 소속 임직원 3명이 지난 8년간 그룹 소속의 스포츠단 선수들 20여 명의 월급 계좌에서 100~200만 원씩 빼돌려 수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 경찰은 이런 정황을 포착하고 확보한 계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해 빼돌려진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 비자금이 체육계 로비로 활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런 내용은 제보를 통해 언론사로 흘러갔고 세간에 알려졌다. 경찰은 압수수색을 벌인 사실을 밝히면서도 수사 방향과 일정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벌인 건 맞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다”며 “이르면 이번 주(3월 2째주) 안에 압수품 분석을 완료한 뒤 관련자를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교그룹 소속의 여자축구단 측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눈치다. 이천대교여자축구단 관계자는 “방송 보도를 통해 (압수수색에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선수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본사 스포츠단에 물어보라며 말을 아꼈다.
 
특히 혐의를 받고 있는 임직원 3명 가운데 1명이 서 대표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그룹이 조직적으로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교 측은 그룹과의 연관성을 차단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교그룹 관계자는 “직원 개인의 문제로 알고 있다. 그룹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며 “(비자금 혐의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가 입증될 경우 재계는 물론 스포츠계에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국내 스포츠 선수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던 대교그룹의 이미지 타격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비자금이 체육계 로비 자금으로 사용됐다면 온갖 비리가 만연한 체육계에 또 다른 뇌관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방해를 우려해 앞으로의 수사방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의혹의 중심에 있는 서 대표 측은 무혐의 결론을 받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서 대표의 혐의가 인정된다하더라도 조직적 연루에 대해서는 부인할 가능성이 높다. 향후 경찰의 조사 결과에 재계는 물론 체육계 안팎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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