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운운하는 북한에 일격, 국제사회 움직일까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8일 말레이시아에서 암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의 동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됐다. 공개 초기만 해도 김한솔이 맞는지 의문도 제기됐으나 국정원에서는 ‘김한솔이 맞다’고 확인했다.

김한솔 스스로 자신의 영상을 공개한 배경에 대한 관심이 커 지고 있다. 아버지의 피살 이후 김한솔을 비롯한 김정남의 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시신 인수에 나서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일요서울에서는 김한솔 동영상 공개 배경과 그의 도피를 도운 사람들을 집중 조명해 봤다.
 
말레이시아와 북한 사실상 외교 단절 수순
김한솔 중심으로 한 북한망명정부설 재등장 

 
김한솔은 8일 공개된 영상에서 영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내 이름은 김한솔이다. 북한에서 왔고 김씨 일가의 일원”이라며 자신의 여권까지 보여줬다. 비록 검은 자막으로 여권 내용을 가리긴 했지만 아버지 김정남을 쏙 빼닮은 외모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여권을 보여준 뒤 “아버지는 며칠 전에 살해당했다”라고 말한 뒤 현재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있다”고 말했다. 김한솔이 가장 최근 언론에 노출된 것은 지난 2012년 핀란드의 한 방송과의 인터뷰가 마지막이었다.
 
父 암살 배후는 북한
사실상 선전포고
 

김한솔이 영상을 직접 공개한 첫째 이유는 자신을 포함한 가족의 안전을 알리기 위한 것과 동시에 아버지가 북한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북한은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범행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증거와 정황이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있다. 김한솔 본인을 포함한 가족의 신변이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김한솔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표현을 썼다. 그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북한을 향한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현재 주말레이시아 북한 대사였던 강철 대사와 유력 용의자였던 이정철은 말레이시아에서 추방당한 상태다. 또 다른 용의자인 현광성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2등서기관과 김욱일 고려항공 직원은 치외법권인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내에 숨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피살된 김정남의 신원 확인조차 거부하고 있다. 암살당한 사람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라고 주장하고 신경작용제 VX로 인한 피살이 아닌 심장마비라고 주장하고 있다. 더 나아가 김정남 암살 사건을 말레이시아 정부와 한국 정부의 공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김정남 암살 사건을 계속 부인하고 은폐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고 김한솔이 직접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숨기보다는 세상으로 나와야 사건의 진실을 알릴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는 얘기다.
 
피신 도운 세력 누구?
네덜란드·중국·미국 등

 
김한솔의 영상이 공개되자 그의 소재나 행적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마카오를 떠나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국정원도 김한솔의 소재나 행적 등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다.

현재 김한솔은 제3국으로 피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유튜브 영상에서 “아버지는 며칠 전 살해당했다”고 말한 것에 비춰 보면 동영상을 찍은 시기는 암살 직후인 2월 말 이후로 추정된다.

김한솔 영상이 공개되면서 동영상을 게시한 천리마 민방위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천리마 민방위는 그동안 전혀 공개된 적이 없는 단체다. 탈북자 지원단체로 추정되는 천리마 민방위는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김정남 피살 이후 그 가족에게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이 왔다”며 “급속히 그들을 만나 안전한 곳으로 직접 이동해 드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김정남 가족의 현 행방이나 탈출 과정에 대한 사항은 이 이상 공개하지 않는다”며 “긴급한 시기에 한 가족의 인도적 대피를 후원한 네덜란드 정부, 중국 정부, 미국 정부와 한 무명의 정부에게 감사를 표한다”고 언급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피신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특히 천리마 민방위는 “갑작스레 도움을 요청했을 때 우리에게 급속히 응답을 주신 주조선-주한 네덜란드 엠브레흐츠 대사님께 특별한 감사를 표한다”면서 “엠브레흐츠 대사님은 인권과 인도주의를 향한 네덜란드의 오랜 원칙적 입장을 입증하신 분”이라고 이름을 따로 언급하며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대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천리마 민방위 주목
‘무명의 정부’가 한국?

 
눈길을 끄는 부분은 천리마 민방위가 말한 ‘무명의 정부’다.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국가란 의미인데 일각에서는 이 정부가 한국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 이유는 국정원이 김정남 암살사건 이전에 이미 김정남과 꾸준히 접촉하고 있었음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이 ‘무명의 정부’라고 하더라도 김한솔을 국내로 데려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과거 김정남의 이종사촌이었던 이한영이 피살을 당했고 고인이 된 황장엽 북한 노동당 비서에 대한 암살 시도가 끊이지 않았던 점에 비춰 본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한솔의 피난처로는 네덜란드가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천리마 민방위가 네덜란드 엠브레흐츠 대사에게 특별히 감사함을 표한 만큼 김한솔 피신에 네덜란드가 깊숙이 개입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북한 인권 문제에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덜란드에는 국제형사재판소도 있다.

네덜란드가 공식적으로 김한솔의 소재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피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을 감안하면 네덜란드에 김한솔이 머무르고 있거나 안전 확보가 가능한 유럽에 김한솔이 피신해 있을 확률이 높다. 유럽은 김한솔이 유학 생활을 한 곳이기도 해 정서 안정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이와 함께 김한솔을 중심으로 한 북한망명정부 수립설도 다시 나오고 있다. 아버지였던 김정남을 대상으로 했던 시나리오에서 대상이 김한솔로 수정됐다는 설이다.

한편 김정남 암살 사건으로 인해 북한은 외교적 고립상태다. 말레이시아와는 사실상 외교 단절 수순을 밟고 있다. 현재 말레이시아와 북한은 자국 내 상대국 국민들의 출국을 금지한 상태다. 지난 7일 말레이시아는 자국 내 불법 체류하고 있는 북한 국적의 건설노동자 37명을 무더기로 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 암살사건이 외교 마찰로 변질된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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