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간의 기념비적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마지막 주

[일요서울|이창환 기자]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3월 19일까지 대학로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동명 소설 원작으로 1부와 2부가 독립돼 총 7시간 진행된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인물들은 신의 정의를 고백하다가도 잘못된 길에 현혹되고 길들여진다. 고통으로부터 도망치다가도 고통이 더는 쫓아오지 않으면 그 옆을 기웃거린다. 거의 모든 단계의 동정심을 드러나며 육체는 몰락하거나 스스로 어둠 속으로 간다. 선의는 오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더러운 음모는 신념이나 사랑을 제압한다. 불의를 비난하면서도 내면의 모순은 끝까지 외면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담긴 메시지(대사)는 끝없는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기 때문에 무엇을 간추리든 어설퍼 보이고 불필요하게 보이기 쉽다. 어떤 방향으로 디디든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기분이 들 수 있다. 그러므로 방대한 관념의 바깥을 책임지고 있는 배우에게 눈을 돌렸다. 대사의 무게를 피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배우들의 연기가 한 발 먼저 그리 인도했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배우들은 조명이 어두운 순간에도 빛났다. 원작에 누를 끼치지 않은 극화와 뛰어난 연출을 바탕으로 동작, 잔상, 물체, 색채, 공간의 미장센을 받은 배우들은 무대 깊이 앉거나 엎드릴 때도, 높은 곳에 서 있을 때도, 분열과 희생과 절규마다 빛났다.
 
연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지난 3월 9일~10일 네이버에서도 생중계됐는데 한 시청자가 대화창에 ‘1부의 이반(지현준)은 어른스럽고 멋졌는데 2부에서는 어린애가 됐다’라고 썼다. 그 말처럼 1부의 이반은 과묵하고 차분하나 2부에서는 존재감이 폭발한다. 과묵함의 근저는 자신감, 오만함, 적개심이었는데 이반의 분신이자 적에게 사로잡힌 후 급변한다. 시청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1부의 지현준은 귀족이었으나 2부의 지현준은 광인이었다.
 
스메르쟈코프 역의 이기돈은 지난해 공연된 <더 파워> 이후 다시 만났다. 이기돈은 <더 파워>에서 자본주의에 깔린 소시민으로 나왔는데 소시민은 자신의 욕망을 상상 속에서나 실현했다. 고통이 수반되는 그 상상은 병적이며 공격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스메르쟈코프는 억눌린 봉인을 해제하고 현실로 이룬다. 배우 이기돈의 특별한 목소리와 표정에서 두 개의 연극은 연작 같았다.
 
드미트리 역의 김태훈은 과거 <에쿠우스>를 비롯해 <비극의 일인자> 등에서 봤는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담긴 불꽃을 가장 적극적으로 흡수한 것처럼 보였다. 김태훈의 정적인 톤은 세련된 기교 같은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성향을 유지한 채 표현하는 격정적 연기는 개인적으로 즐거운 자극이었다.
 
그 외 도스토예프스키(해설자), 조시마 장로, 대심문관, 식객 역을 두루 맡은 배우 정동환, 표도르의 박윤희, 알료샤의 이다일 등 모든 배우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명성에 어울리는 연기를 했다.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한 번 발 디디면 다시 못 빠져나오게 하는 힘이 있다. 거기에 담긴 관념은 거대하고 알아차리기 쉽지 않은 질서 속에서 복잡하다. 이성과 감성은 공존하고 갈등하는데 그 쪼개짐은 내면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세계와 세계 사이에서 모두 진행된다. 정신은 생각을 위대하게 만드나 행동의 순간에는 비극적 선택을 하도록 종용한다. 공연은 고전의 감동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다시 고전을 읽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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