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정치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조기 대선일이 5월9일로 확정됐다. 현재로선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가 지지도나 조직면에서 타 대선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반면 문재인 대세론이 지속되면서 반문정서도 강고해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민주당을 탈당해 ‘정치9단’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대표가 있다. 여의도에서는 중국 전쟁사에 빗대 문 전 대표를 ‘항우’로, 김 전 대표를 ‘유방’에 비유해 대선전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다. 천하무적 항우를 상대해 유약한 유방이 지방 제후들과 연합군을 형성해 승리를 거머쥔 사례가 이번 조기 대선에서 통할지가 관심사다. 한국 정치판에 되살아난 ‘항우’ 문재인과 ‘유방’ 김종인의 치열한 수싸움으로 들어가 보자.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빅텐트’ 무산시 유방 ‘일패도지’(一敗塗地) 염두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은 4년에 걸친 전쟁을 벌였다. 항우의 용맹은 천하제일이었으며 군대는 천하무적이었다. 항우에 비하면 유방은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두 인사의 싸움은 당연히 항우의 승리로 끝이 나야 했다.

하지만 유방에게는 항우가 못 가진 세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전략적 요충지인 진나라 수도 함양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전투 중 ‘배수진’(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결사적인 각오로 임한다는 말)전략으로 승리를 이끌어 유명한 한신이라는 참모가 있었다. 셋째로, 유약한 유방이지만 민심을 읽고 다른 제후들과 연대를 꾀한 전략가적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사면초가에 빠진 ‘용장’ 항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덕장’ 유방이 천하를 평정했다.

조기 대선을 맞이해 문재인 전 대표는 조직과 대선후보 지지도 면에서 당 내외 잠룡군을 압도하고 있다. ‘민주당 경선 후보=20대 대통령’라는 말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나고 있다. 또한 인수위 없는 대통령 당선자라는 특성상 ‘문재인 캠프=예비내각’이라는 인식으로 돈과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용장’ 항우 맞선 ‘덕장’ 유방의 운명 따르나

반면 문재인 후보를 제외한 상대 후보는 거론하기조차 민망할정도로 열악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문 전 대표에 맞선 유력한 여권 후보들은 중도 하차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가 대표적이다. 대선 장기판에 차포가 사라진 범여권 진영은 참혹한 상황이다. 여당인 자유한국당 후보군은 즐비하지만 문 전 대표에 맞설 인물은 부재하다시피하다. 최근 대선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 경남지사가 7%대로 부상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의 한참 뒤다.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바른정당 유승민, 남경필 두 후보는 3%를 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표에 맞서 경선을 준비 중인 안희정 충남지사나 이재명 성남시장의 지지율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범여권 내에서조차 차라리 후보를 내지 말자는 냉소적인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또 다른 야권 후보인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두 자릿수로 선전하고 있지만 승리를 장담하기는 2% 부족하다. 국민의당에서 안 전 대표와 경선을 준비 중인 손학규 전 대표는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꼴찌를 달리고 있다.

문 전 대표에 맞서 승리를 이끌 수 있는 후보군을 찾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77세의 ‘정치9단’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대표가 민주당을 탈당해 반문재인 전선 구축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김 전 대표는 3월7일 민주당 탈당을 전후로 국민의당 손학규 전 대표와 회동을 시작으로 한국당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대선 출마선언한 김관용 경북지사,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과 남경필 경기지사, 정의화 전 국회의장, 정운찬 전 국무총리 등 킹과 킹메이커들을 주로 만났다.

김 전 대표가 아직 만나지 못한 대선 후보는 안철수, 안희정, 유승민 후보 정도다. 김 전 대표가 이처럼 대선을 앞두고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데는 유방의 전략이 숨겨  있다는 분석이다. 문 전 대표에 맞서 힘과 세력에서 약체인 군소 잠룡을 개헌과 연정(연합정부)을 고리로 ‘빅텐트’로 모여 ‘원샷’경선을 치르자는 복안이 숨겨 있다는 진단이다.

김 전 대표는 대선 전 개헌과 연정에 부정적인 안철수, 안희정, 유승민 의원에 대해서도 “시간이 흐르면 충분히 함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있다. 김 전 대표의 반문연대 성패의 핵심 키를 쥔 사람은 안철수 전 대표와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전 대표의 경우 현재 ‘제3지대 빅텐트론’이나 ‘대선 전 개헌’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지만 연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이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와 경선을 준비 중인 안희정 충남지사는 연정에 매우 적극적이지만 탈당해 ‘제3지대 빅텐트’에 참여하는 데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결국 김 전 대표가 구상하는 반문재인 연대를 기반으로 한 ‘빅텐트서 후보 단일화’ 성사 여부는 안철수 전 대표의 참여 여부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김 전 대표는 안 전 대표가 끝까지 반대할 경우 손학규 전 대표가 연정을 바라는 호남 의원들과 연대를 통한 대역전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전 대표는 반문연대의 한 축인 외부 세력을 한데 묶는 작업과 동시에 민주당내 측근들을 ‘문재인 흠집내기’에 동원하고 있다. 민주당 내 친김종인 사람으로는 박영선 의원을 비롯해 진영, 최명길, 이언주, 최운열, 김성수, 변재일, 박용진 의원 등이 있다. 당 일각에서는 진영, 최명길, 이언주 3명의 의원은 김 전 대표에 이어 금명간 추가 탈당해 친문 패권주의를 부각시킬 것이라는 관측이다.

당 밖 ‘빅텐트론’ 당 안 ‘문재인 흔들기’ 투트랙

아울러 박 의원을 비롯해 변재일, 박용진 의원 등은 안희정 캠프에 들어가 문 전 대표 공격에 선봉에 서고 있다. 안 캠프의 정책 담당을 하고 있는 변재일 의원은 3월1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문 전 대표가)김 전 대표를 모실 때와 보낼 때가 다르다”며 “김 전 대표에게 비례대표 2번을 제안한 것은 문 전 대표였다”고 폭로했다.

이어 변 의원은 “‘셀프공천’으로 당이 휘청거렸을 때 문 전 대표가 ‘내가 제안한 것이다’고 한마디만 했어도 당을 어렵게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가 ‘삼고초려’해 모셔놓을 때와 떠나보낼 때 차이가 나는 것은 ‘예의를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공세를 높였다.

민주당뿐만 아니라 김 전 대표는 손학규 전 대표를 통해 국민의당도 흔들고 있다. 이미 손 전 대표는 경선 룰 확정 과정에서 안 전 대표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바 있다. 결국 안 전 대표가 양보해 ‘현장투표 80%, 여론조사 20%’로 확정했지만 경선 일정을 두고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다.

안철수 캠프에서는 “손 전 대표 요구대로 현장투표 비율을 높였지만 경선 과정에 동원경선 등 불미스러운 일들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걱정하고 있다. 경선 과정에서 불법적인 사건이 벌어질 경우 손 전 대표보다 안 전 대표가 더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는 셈이다.

한편 김 전 대표가 반문정서에 기대어 정당 후보 간 ‘가교 역할’을 자청하고 있지만 유방의 ‘일패도지’(一敗塗地, 대장을 잘못 뽑으면 패하여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 고사성어처럼 짐짓 대장 자리를 양보하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결국 연합군의 맹주가 된 유방의 뒤를 따르지 않을까 하는 의심도 정치권으로부터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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