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을 막아서는 아홉 고개 중 마지막 관문
- 정치적 곡예하면 암초 하나에도 좌초돼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여의도에선 몇달 전부터 ‘어대문’이란 말이 떠돈다. ‘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란 말의 약자인 이 말은, 문재인 팬덤에서부터 사용됐다. 처음엔 조소의 시선도 없지 않았다. 이 조어의 어원이 <응답하라 1988>의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였지만 결말은 달랐고, 이후 미국 대선에서 ‘어대힐’이라 불렸던 힐러리도 패배했기 때문이다. 그 말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면서 또한 역전가능성을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시선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은 정계 사람들과 기자들에게도 쓰인다. ‘어남류’와 ‘어대힐’도 모를 이들이 “요즘 ‘어대문’이라 그런다며?”라고 되묻는다. 작년 10월말 JTBC 태블릿PC 보도 정국 이후의 숨가쁜 사건들, 이재명·반기문·안희정 등이 올라갔다 내려오는 롤러코스터 구간을 지나 문재인 민주당 후보는 드디어 대통령 당선의 9부능선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안희정 바람’이 다소 지나간 지금은 경선 드라마조차 어렵다. 민주당 경선 선거인단이 190만 명에 육박한 상황은 고무적이나, 민주당의 텃밭인 2030세대와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크게 밀리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오직 선거인단에 합류한 중도층의 지지만으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 안희정에 호감을 표시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할 뜻이 없다.

김종인은 ‘안희정 바람’ 이후를 봤나

공교롭게도 김종인 전 민주당 비대위대표가 탈당한 시점인 7일은 ‘안희정의 역전승’의 가능성이 희미해지던 시점 이후다. 안희정 지사는 지난 2월 초 자신이 집권할 경우 김종인 전 대표에게 경제정책의 전권을 주겠다고 ‘러브콜’을 보냈지만, 김 전 대표는 안 지사를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하면서도 지지 선언에는 주저했다. ‘어대문’을 막아선 마지막 수문장이 안희정이라 사람들이 생각할 때, 김 전 대표는 이후 마지막 한 번의 승부수를 고민했을 수 있다. 

지난 15일 자유한국당, 바른정당, 국민의당 3당합의로 대선과 동시 국민투표를 진행하는 개헌안 합의가 있었다. 3당의 의석을 합쳐도 167석밖에 되지 않는다. 개헌안이 국회라도 통과하려면 200석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3당에서 이탈자가 없더라도 민주당에서 적어도 33명의 동의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민주당 내 개헌파와도 교감이 있지 않은가 하는 추측이 있었고, 혹자는 김종인 전 대표의 영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합의안의 핵심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 국회에서 단일개헌안을 만들어 통과시킨 후, 대선과 동시에 국민투표를 하여 확정짓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얘기가 나왔던 것에 비교할 때, 변동의 폭이 크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다.
대선과 동시 개헌이 되려면 사실상 여론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은 개헌이 된다.

의원이든 유권자든 설득하려면 6공화국 헌법을 기초부터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아마 대통령 견제방안, 대선과 총선의 간격을 일정하게 조정하는 임기보정, 4년 중임 정도만 바꾸려고 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야 그나마 통과될 확률이 커진다.

그런데 다들 왜 이렇게 개헌에 집착하는 걸까. 야권의 핵심지지층들은 현재의 개헌논의에 격렬한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특히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까지 포함된 개헌안 합의에 대해선 박근혜 정부의 권력 연장 시도라고 보기도 하고, ‘신3당합당’이나 ‘보수대연합’과 같은 단어로 규정하기도 한다. ‘촛불민심에 대한 배신’이란 표현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다만 이 개헌안에 대한 찬반과는 별도로, 개헌으로 친박의 권세가 연장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반기문이란 주자가 친박과 연합할 때에나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심지어 그 시나리오가 온전히 성공했을 때조차 새로이 대통령이 된 반기문이 친박세력에 의한 상왕정치를  순순히 받아들였을지는 의문이다. 이는 6공 초기, 인재풀을 공유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전두환·노태우 두 전 대통령 사이에서도 불가능했던 일이다.

3당 개헌안 합의는 1일천하로 소멸

좀 더 합리적인 찬반양론도 있다. 조기개헌에 동의하는 쪽에선 5년단임제가 개헌에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개헌을 하고 싶어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이는 없으므로, 단임제 대통령은 임기 초엔 개헌을 의제에서 미뤄둔다. 이후 중후반기에 개헌을 띄우고자 하면, 이제는 후임대통령을 노리는 정치세력들이 모두 반대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기 때부터 반복됐던 일이다. 일각에선 지금 개헌안의 취지가 노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안’ 취지와 다르지 않은데, 이를 반대하는 친문은 일관성이 없다 비난한다.

반대하는 쪽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의 의석구조, 국회선진화법, 그리고 탄핵 결정문에서 명시한 대통령에 대한 높은 도덕적 요구 등을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든 연정과 협치, 더불어 개헌까지 추진하고 싶을 거란 것이다. 대선 후 논의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해서 결정하자는 민주당 당론이 설득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대체 왜 정치가 파행인지를 제대로 분석도 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대통령 권한을 쪼개는 것만으로 개혁이 될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 오히려 강한 개혁을 위해서도 당분간 대통령제는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찬반양론을 떠나서 3당 개헌안 합의 결정은 1일천하가 되는 분위기다. 당장 당일부터 문재인·안철수·유승민 등 유력대권주자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민주당 개헌파도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들이 반대하면 시도도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현재의 정세에선 아무리 잘 그린 그림이라도 곡예를 하다보면 암초 하나에도 좌초할 수밖에 없다.

김종인 전 대표가 아무리 노회해도 남의 판돈으로 도박을 해서 대박을 내기는 어렵다. 남은 수는 두고 봐야겠지만, 적어도 개헌연대만은 실패라고 봐야 할 것이다. 
<한윤형 시대정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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