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초 세자 이제(훗날 양녕대군)는 태종 이방원에 이어 제4대 왕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태종의 후원에도 불구하고 끝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혹자는 그가 충녕대군(훗날 세종)에게 왕위를 양보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혹자는 그가 애당초 왕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자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를 ‘대왕세종’이라는 TV드라마에서 찾아볼까 한다.

이제는 세자 시절 명나라 요동정벌을 결심한 뒤 세금을 더 많이 거두기 위해 세제를 개편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중신들은 시기상조라며 극력 반대한다. 이에 이제는 격노한다. 반대의 목소리를 가장 높인 예조판서 허조를 면전에서 파면하라고 명령한다. 영의정 유정현에게는 그의 안위를 거론하며 협박한다. 중신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하나같이 혀를 찬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이 제는 점점 멀어져가기 시작한다.

충신 또는 간신이 될 것인가를 선택하라는 최후통첩을 날리고 밖으로 나온 이제는 이번에는 정인지 김종서 등 하급관리들과 충돌한다. 중신회의에서 일어난 일을 익히 알고 있던 이들은 이제에게 충고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중신들이 말을 듣지 않아 화가 머리끝까지 나있던 이제는 정인지, 김종서 등 하급관리들까지 자기를 핀잔하자 폭발하고 만다. 김종서가 "폭군이 되려느냐"고 하자 그를 당장 파직하라고 소리친다. 처음에는 이 제를 따랐던 하급관리들은 이제의 이 같은 안하무인격 태도에 실망하며 그의 왕제로서의 자질까지 의심하게 된다.

비록 TV드라마이긴 하나 실제로 양년대군은 세자 시절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비리를 저질러 신하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신하들이 그를 버린 것이다.

결국 이제가 폐위되어 어부지리로 세자가 된 충녕대군은 세자로 책봉된 지 2개월여 만에 왕에 오른다. 그가 조선왕조 최고의 왕으로 추앙받는 세종이다. 세종은 충녕대군 시절 때에도 그랬듯 재위 기간 항상 신하들의 직언을 경청했다. 그리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였다. 자신의 생각을 관철할 때는 치열한 토론 끝에 신하들을 설득했다. 신분과 관계없이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는 등 지인지감이 가장 뛰어났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스라엘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왕인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했던 사울 왕을 두 차례나 없앨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끝내 죽이지 않았다. 자신의 손에 굳이 피를 묻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울은 제거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데 자신이 직접 죽일 이유가 없었다. 당장의 민심은 사울의 제거였으나 후에 사울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오명을 덮어쓸 수도 있음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사울은 드높아가는 다윗의 인기가 두려웠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다윗이 자신의 왕위를 뺏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사울은 아스라엘 민족의 신이 자신을 왕으로 정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왕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울은 왕으로서의 책무는 제대로 하지 않고 오직 다윗을 죽이는데 골몰했다. 민심이 다윗으로 향하고 있는 와중에 죽이려고까지 했으니 민심은 더욱 다윗에게도 다가갔다.

양녕대군과 사울이 실패한 것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가져야할 미덕 중 하나인 ‘넉넉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위고하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쓴 소리하는 사람의 말을 경청해줄 수 있는 넉넉함, 나 보다 더 잘난 사람 칭찬해줄 수 있는 넉넉함, 허락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남의 허물까지 덮어줄 수 있는 넉넉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도 양녕대군, 사울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쓴 소리 듣기 싫어하고 자신보다 인기 있는 주자를 깎아내리기 데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남의 약점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아량은커녕 포용력도 없어 보인다. 모두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앙갚음한다. 수신제가(修身齊家)도 하지 못한 사람이 치국(治國)을 논한다. 참으로 어이없다.

지지율이 낮은 주자들은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치자.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고 있는 주자들마저 그러고 있으니 한심하다. 특히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주자답지 않은 초조함을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다. 선두주자의 넉넉함은 없고 무언가에 쫓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불안하다.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사사건건 간섭한다.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될 일에 굳이 피를 묻히고 있다. 말도 상황에 따라 바꾼다. 그러다 당 대통령 후보 경선은 물론 본선에서 다른 후보에게 역전당할 수 있다. 국민들은 넉넉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을 찾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장성훈 편집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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