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꼼수가 판을 친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아산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지난 1977년 7월 1일 그룹 모체인 현대건설 창립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사재 50억 원을 출연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했다. 당시는 복지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때다.
 
“사람에게 가장 큰 비극은 굶주리는 것이고, 그 다음은 병들어도 돈이 없어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다.”
 
정 명예회장이 생전에 강조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현대건설의 주식을 상장하면서 전체 주식의 50%를 아산사회복지재단 이름으로 출연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사업은 크게 의료, 사회복지, 장학, 학술 등으로 나뉜다. 설립 초기 현대적 의료시설이 열악했던 정읍, 보성, 보령, 영덕, 홍천, 강릉 등 농어촌지역을 비롯해 전국에 8개의 대규모 종합병원(아산병원)을 건립해 현재까지 양질의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의료뿐 아니라 노인 복지시설, 아동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등 각종 사회복지단체를 지원하는 사회복지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학술연구 지원사업, 장학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재단은 정 명예회장이 타계할 때까지 4500억 원대의 사업비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몽준 이사장
다양한 공익사업

 
초대 이사장인 정 명예회장이 2001년 타개한 후 그의 6남인 정몽준 이사장이 물려받았다. 정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다. 다양한 공익사업을 추진하는 만큼 재단의 규모도 상당하다. 국세청에 가장 최근 자료인 2015년 공익법인공시를 보면 이 재단의 총자산가액은 1조7074억 원이다. 5512억 원대의 부동산과 1731억 원대의 주식, 6000억 원대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기타 자산 3828억 원).
 
같은 해 고유목적사업인 공익사업(사회복지, 의료복지, 장학사업)에 172억여 원이 사용됐다. 고용직원과 자원봉사자 수를 합하면 1만 명을 훌쩍 넘는다. 기업 이미지 개선 차원에서 재단 간판만 걸어놓고 활동은 하지 않는 일부 기업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 한 대목이다.
 
재계에서 영향력이 크게 작용하는 만큼 기업과 기업인들의 기부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KCC 10억여 원, 현대성우홀딩스 10억 원, KEB하나은행 2억 원 등 현금 총 57억 원가량의 기부금을 모금했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공익사업뿐 아니라 아산병원을 통해 수익사업도 벌이고 있다. 2015년 한 해 의료수익은 1조6610억 원에 달한다. 이 밖에 295억 원대의 이자수익, 115억 원대의 임대료 수익도 올렸다.
 
현대중공업 지분 보유
유동성 지원 창구

 
그러나 재단이 현대중공업의 경영권 강화 및 승계에 활용된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아산사회복지재단은 현대중공업의 지분 2.53%(192만 주)를 보유하고 있다.
 
특수관계인만 놓고 보면 정몽준 이사장(10.15%), 현대미포조선(7.98%)에 이은 3대주주다. 정 이사장이 정 명예회장 서거 10주년을 기념해 설립한 아산나눔재단도 0.65%(49만2236주)를 보유해 뒤를 잇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이 5% 이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가 모두 면제된다. 성실공익재단의 경우 10%까지 적용된다. 재단이 가진 지분은 최대주주의 우호지분에 포함된다.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현대중공업이 정 이사장의 아들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전무에게 지분을 물려주면서 재단이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향후 재단 이사장직을 물려주면 세금은 피하면서도 지분을 넘겨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재단을 활용해 회사의 유동성을 확보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아산나눔재단에 412억 원 규모의 서울 종로구 소재의 건물을 매각했다. 해당 부동산은 현대건설 빌딩 11~12층 두 개 층으로 현대중공업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 빌딩 외에 울산시 동구 서부동에 위치한 토지 및 건물도 비영리법인 현대학원에 매각했다. 현대학원은 정 명예회장이 1985년 세운 학교법인이다.
 
한 재단 관계자는 “아산재단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뜻으로 설립한 뒤 실제로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어 재계에서 롤모델로 여겨지기도 한다”면서도 “그러나 재단이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사주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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