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요금 인하·일자리 창출 공약 ‘포퓰리즘 논란’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조기 대선’이 확정됐다. 오는 5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다.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선심성 복지, SOC(사회간접자본) 공약이 속속 나올 기세다. 이미 일부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몰이 중이다.

문제는 이들 공약이 공수표로 끝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는 점이다. 과거 큰 선거 때마다 후보자들이 시민들의 귀에 솔깃한 공약을 내놓았지만 달콤한 공약에 그칠 뿐 실제 이루어지는 경우는 적었다.

일부 후보의 공수표 공약은 서민의 삶을 옥죄기도 했다. 기업들도 정부 정책에 따르려다 된서리를 맞는 등 피해를 호소했다. 이 때문에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는 공약 남발로 인한 피해가 없어야 된다는 각계의 주장이 잇따른다.

임금인상·사병 월급 조정·사회간접자본 등 허황된 공약 부지기수
당선되면 ‘모르쇠’…이행 여부 떠나 검토 안하는 경우도 ‘수두룩’


정치권이 오는 5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통신요금 인하와 일자리 창출 공약을 내놓겠다고 나서면서 재계가 긴장하고 있다.

소비 침체에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금리 인상 등으로 기업경영이 악화된 상황에서 대선 주자들의 공약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뜬구름만 잡는다’ 비판도

한 대기업 대외협력담당관은 “(과거) 표심을 얻기 위한  대선 후보들의 선심성 공약으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며 “무책임한 행보를 보이는 대선 후보라도 정치적 보복이 두려워 지켜볼 수밖에 없고 이들의 (선심성) 공약 남발에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은 후보자가 당선되면 관련 공약 이행과 관련해 “(당선됐으니) 기업이 나서서 공약을 이행해야 하지 않느냐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고 시민단체들이 앞다퉈 기업에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도 하는데 당선자가 공약 의지를 내비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이럴 땐 기업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거나 불매운동 전개로 기업 이미지만 타격을 입는 경우가 있다”고 억울해 있다. 이번에도 대선 주자들이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있어 대선이 끝난 후 또 다시 보복성 질타가 이어질까 우려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전날 오후 국회에서 의원 워크숍을 열고 대선 공약을 논의했다. 이때 의원들은 ICT(정보 통신 기술) 관련 정책 중 하나로 ‘데이터요금 인하’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인 민주당 정책위 관계자는 “최근 1인 창업자나 스타트업들 대다수가 모바일 플랫폼 위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있다”며 “데이터 무제한이라고 해도 밤샘작업 한 번이면 기본 데이터 제공량이 모두 소진돼 속도 지연의 불편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동안 소비자 중심으로 통신요금제 논의가 이뤄진 만큼, 앞으로는 인터넷, 모바일 창업 및 스타트업의 비용절감을 위한 데이터요금 인하를 중점적으로 추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ICT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선거철마다 통신비 인하 공약을 내놓고 일반 국민들을 현혹하는 일을 이번에도 되풀이하고 있다”며 “산업 발전과 국가 경제의 실익은 따지지 않은 채 공약을 내놓고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공약이 이번에는 근절돼야 한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통신비 인하 공약으로 인해 차세대 통신인프라인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준비에 당장 제동이 걸릴 것이라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수혜 대상으로 거론된 ICT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데이터요금 인하 등 선심성 공약이 장기적으로는 창업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앞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지난 2월 1일 “야당이 대선 후보 중심으로 재원마련 방안이 없는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야당은 정치 입법에 몰두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특히 그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일자리 공약과 관련 “최근 문 전 대표는 4대강 사업비 22조원이면 연봉 2200만 원 일자리 100만 개를 만든다고 공약했다”면서 “일회성 사업으로 일자리를 1년만 만들고 그 다음에 어떻게 할지 대책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채용한 젊은이 100만명의 향후 몇십 년 인건비, 임금인상 재원 대책은 어떻게 할 것이냐. 향후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은 언급조차 없다”라며 “결국 연봉 2200만 원짜리 일자리 100만 개는 양질의 정규직이 아니라 단순 무책임한 일자리”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대선 주자인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일자리 100만 개 창출을 약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없다. 뜬구름 잡는 식의 허황된 공약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지난 15일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실업자 수는 135만 명으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월 이후 최대치다. 4개월 연속 증가세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5.0%로 2010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청년실업률은 12.3%로 지난해 2월(12.5%)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높다. 고용의 질도 문제다. 우리 경제의 기반인 제조업 취업자는 8개월째 감소세이고 자영업자는 7개월째 증가세다. 양질의 일자리가 급속히 줄고 있음을 뜻한다.

당면한 실업대란은 경기 불황과 구조조정에 따른 기업 채용 축소, 탄핵 정국으로 인한 정부 정책 추진력 저하 등이 맞물려 발생했다. 소비 침체에 중국의 사드 보복,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금리 인상 등을 감안하면 고용 한파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역량을 집중한다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근로소득 등 기본에 충실해야

문제는 앞으로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파격 공약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점이다. 파격 공약은 여야 구분도 없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전 국민에게 연간 30만 원씩, 청년 등 사회적 약자 2800만 명에게는 연간 100만 원씩 지역 화폐 개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4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재원은 법인세 인상과 국토보유세 신설 등으로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부자들에게 돈을 더 걷어 저소득층에 나눠주겠다는 취지다. 

바른정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는 사병 월급을 최저임금의 50% 수준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같은 당 유승민 의원도 “국가가 체불임금을 근로자에게 선지급하고, 해당 업체에 대해 구상권을 행사해 받아내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체불임금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조 원을 돌파, 지난해 기준으로 1조4000억 원에 이른다.

이들 주자는 우리 정부의 재정상태가 아직은 소외계층을 위해 더 많은 돈을 투입할 여력은 있다거나 증세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하면 재정 여력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증세도 말처럼 쉽지 않다. 증세 과정의 사회적 갈등 비용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최근 “무차별적으로 공약을 남발하고 있어 국민이 정치를 걱정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며 “국가 부채를 갚아서 재정 건전성을 높이겠다는 대선 후보는 한 명도 안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선주자들이 청년복지수당과 노인연금인상 기본소득제 등 복지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국민의 혈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세금을 만들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이 선행되어야 한다. 바로 그러한 일자리가 민생과 복지 모두를 아우르는 근원적 해법이 될 것이다.

한 관계자는 “역대 대선 후보들의 공약대로라면 청년 실업 문제는 이미 해결됐을 것이다. 그런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하고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더욱 답답한 것은 대선 때만 되면 상투적인 화법으로 표심을 얻기 위한 일자리 창출 공약이 남발된다는 점이다”고 꼬집었다.

사실 선심성 공약 남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지적된다. 앞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지난 4월 19일 “(여야 총선공약에서)선심성 공약은 확고한 입장으로 대응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정책실명제 도입’해  책임 물어야

유 부총리는 이날 기재부 1급 이상 간부들이 참석한 현안점검회의를 개최한 자리에서 “여야 총선 공약은 타당성, 실현가능성, 소요 재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용 가능한 부분은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노동개혁법, 서비스산업기본법, 규제프리존법 등이 19대 국회 잔여 임기중 통과될 수 있도록 제가 앞장설 것이며 간부들도 여야 의원 설득 노력을 강화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무분별한 복지 공약보다 ‘충분한 근로소득’과 같은 기본적인 복지 분야에 충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15일 서울대 우정관에서 열린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사회보장론 수업’ 특강에 특별 강연자로 참여해 “정치인들이 선거철마다 이 공약 저 공약 들고 나와 약속하는 게 무책임하지 않냐”며 “근로소득과 같은 기본 항목들에 대한 사회보장률을 높여나갈 때에만 우리 삶의 불안요소를 제거하고 국가의 미래 대응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크게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성실한 근로에도 합당한 가치가 부여되기 어렵다”며 “현재와 같이 소득재배분이 실패한 경우에는 정부의 지출로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메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근로소득 외에도 새로운 복지 공약을 내세우기보다 4대 보험 수급률 향상, 가족 의무부양제 폐지, 보육지원 등 지금까지 제시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선 선심공 공약 남발의 문제해결을 위해 반드시 정책 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공약을 이행할 재원은 결국 국민 지갑에서 나온다”며 “공약폭탄은 곧 세금폭탄이라는 생각으로 유권자들이 현명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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