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서울대학교 본부 행정관 모습 <사진='서울대는 점거중' 페이스북>
서울대서 ‘소화기vs소화전’ 폭력…동국대 총장은 고발당하기도
전문가, “‘지체현상’ 있어…학내 주체 ‘교수→학생’ 변화”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성의 전당’ 대학 캠퍼스가 몸살을 앓고 있다. 대화나 타협은 온데간데없고 학교와 학생 간 물리적 폭력과 고발장이 오고 가는 실정이다. 지난 11일 국내 최고 지성 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학교에서 학교 측이 본부 점거 농성 중인 학생들을 퇴거시키면서 폭력적 상황이 발생해 아수라장이 됐다. 지난해 말 동국대학교에는 학생들이 ‘조교 처우 개선’ 문제로 동국대 총장 등을 고발하기도 했다. 일요서울은 대화보다 ‘힘의 논리’가 작동하는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을 들여다봤다.

지난 11일 ‘서울대 점거농성 강제해산’ 사태는 근래 보기 힘든 대학 내 최악의 분규로 꼽힐 만큼 폭력이 난무했다. 학생 측의 ‘소화기’와 교수·교직원 측의 ‘물대포’ 간 쌍방 폭력으로 캠퍼스는 난장판이 됐다. ‘시흥캠퍼스 설립 반대’를 주장하는 학생들이 지난 5개월여간 점거 중인 관악캠퍼스 본부 행정관에 당일 이른 아침 교수와 교직원 400여명이 들이닥쳤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강제로 쫓겨난 학생 30여명은 건물 재진입을 시도하면서 소화기를 난사했고, 이에 교직원 측은 소화전을 끌어다 ‘물대포’로 맞받아쳤다.

서울대 점거본부 이시헌 정책팀장은 “학교 측이 그라인더로 문을 부수고, 쇠사슬을 끊고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끌어낸 무력적인 침탈”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반면, 한규섭 서울대 협력부처장은 “5개월 간 학생들의 불법 점거로 엄청난 불편과 업무 방해를 겪었다”며 “지난 8일 학생 측에 건물 5층 중 4층만 점거 해제해달라고 공문을 보냈지만 거부당했다”고 행동 배경을 설명했다.

<사진='서울대는 점거중' 페이스북>
논란 씨앗 ‘시흥캠’
양측, 극명한 온도차


이번 무력 충돌은 ‘시흥캠퍼스 추진 사업’에서 비롯됐다. 이 사업은 경기 시흥시 내 배곧신도시에 글로벌 복합 연구 단지를 만들어 AI(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분야 등 첨단 벤처사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사업은 총 1조8000억 원 규모로 알려졌으며, 학교는 시흥시로부터 땅 20만 평과 4500억 원의 시설비 등을 지원받아 진행할 예정이다.

학교 측은 2007년부터 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시흥캠퍼스 조성이 4차산업혁명에 걸맞은 융합연구사업, 통일 시대를 대비한 사업과 시설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학생들은 학교 측 주장과 달리 이 사업이 학교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결국 대학의 공공성이 파괴될 거라고 주장한다.

이시헌 정책팀장은 “학교가 법인화(2011년)되면서 실제 올해 국고 출연금이 삭감되는 등 국가 예산과 책임이 줄었다”며 “학교가 재원 마련을 위해 캠퍼스에 외주 상업시설을 세우고, 특히 본부점거 뒤 확인한 문건에 의하면 학업과 무관한 시설인 호텔, 실버타운 등 시설의 설립 계획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원 마련을 위해 재벌 대기업에 의존한 산학협력연구로 학교가 돈에 예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기업의 입맛에 맞는 연구가 심화될 수 있는 데다 산학협력은 연구 부정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서울대의 산학협력 규모는 전국 1, 2위 수준인데 전체 연구 부정의 37%가 서울대 교수로 나타났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규섭 협력부처장은 이에 대해 “호텔, 실버타운 등 학생들이 확인했다는 그 문건은 여러 정책제안 가운데 하나”라며 “아직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발전계획에 따라 10년 동안 진행해 온 것이기 때문에 철회는 어렵다”고 밝혔다.

폭력 사태는 일단락 됐지만 후유증은 심각하다. 강제 해산 과정에서 다수가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학생 2명이 당일 구급차로 실려 갔고, 일부는 피를 흘리기도 했다. 학교 측은 소화기 분말로 인한 호흡기 문제로 20여명이 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았다고 밝혔다.

불씨가 여전해 후폭풍이 계속될 전망이다. 총학생회는 학교 측 폭력에 의한 강제 해산에 강력 반발하며, 지난 13일부터 성낙인 서울대 총장 퇴진 운동에 돌입했다. 본부 앞에 천막 농성에 들어갔으며, 16일 오전 11시 기준 학생 5000여명이 총장 퇴진 운동에 서명했다.

서울대 본부 행정관 앞 학생들의 천막농성장 <사진=서울대 총학생회 측>
법적 분쟁까지
“학생 파트너로 인정해야”


학내 구성원 간 갈등은 ‘법적 다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동국대 대학원 총학생회 등은 지난해 12월 ‘조교의 노동자성 권리’ 문제를 놓고 총장과 이사장 등을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서울고용노동청에 고발했다. 오랜 기간 갈등이 지속됐지만 결국 대학 내부에서 해결되지 못한 채 강제 수단이 사용된 것이다.

난감해하던 학교는 기존 인력의 20% 감축을 골자로 하는 ‘조교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최저임금 반영, 4대 보험, 퇴직금 등이 보장돼 이전보다 진일보했지만, 조교들은 실수령액이 되레 줄고, 학교의 인력 감원 방침에 따라 사실상 해고 사태가 발생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 학교 행정조교 A씨는 “학교 측에서 계산 결과 교육조교 8명을 줄여야 행정조교 2명을 더 유지할 수 있다고 해서, (우리 단과대는) 총 8명의 교육조교를 줄이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며 “다른 곳에서는 초상집 분위기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살아남았지만 다른 조교는 줄어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털어놨다.

동국대 관계자는 “등록금을 10년간 동결하는 등 학교 수입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지난해 대학원생 집행부가 조교 전체의 의사 수렴 없이 고발을 진행해 부작용이 나타난 것도 있다”고 밝혔다.

<사진=동국대학교 홈페이지>
‘대학원생 조교 처우’ 문제는 사실 동국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13개 사립대학 등이 연대한 전국 대학원 총학생회 협의회는 지난달 9일 대학원생 조교에게 근로기준법 적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회에서 열었다. 학생들이 점차 외부로 문제를 제기하는 모양새다.

고려대 김선우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학내에서 조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는데 학교의 답변은 ‘벼룩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며 “4월 둘째 주 국회의원, 교육부, 전문가 등과 함께 간담회를 가진 뒤 추후 대선주자와 이 문제를 놓고 토크콘서트를 여는 방식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대학교 학내 구성원 간 여러 갈등에 대해 ‘지체 현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초기 ‘엘리트 단계’에서는 대학 내 핵심 주체가 ‘교수’지만, 고등교육이 진화해서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보편화 단계’가 되면 학생이 중요한 주체가 된다. 대학과 교수 집단이 그 현상을 간과했을 수 있다”며 “대학은 의사 결정 등 과정에서 학생을 중요한 파트너로 여겨야 한다. 이는 이미 성공한 해외 대학들이 주는 교훈”이라고 강조했다.

권녕찬 기자  kwoness773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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