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0일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파면되었다. 적지 않은 국민들은 박 대통령 탄핵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 탄핵으로 ‘법치와 민주주의’가 ‘한 단계 성숙’ 되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박 대통령 탄핵이 ‘법치’를 벗어난 촛불 시위 겁박으로 시작돼 촛불 시위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은 정치적 목적을 헌정질서와 법치 아닌 위압적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폐습을 지녔고 지배계층은 그런 힘의 위압에 겁먹고 굴복한다. 국회와 헌재의 박 대통령 탄핵도 “박근혜 탄핵하라”고 외쳐대는 촛불 시위 겁박 속에 채택되었다. 
국회와 헌재가 박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끌어내리는 데 촛불 시위 위력이 크게 작용했음을 반영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법치를 벗어난 위압적 군중 시위가 탄핵 정국을 지배한 것이다. 박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 태극기 시위도 군중집회의 힘으로 탄핵을 저지하려 했다는 데서 촛불 시위대와 다르지 않다. 태극기 시위도 군중시위의 위압에 의존했다는 데서 그렇다.
박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이었던 서석구 변호사는 헌재의 탄핵 결정과 관련, “강력히 유감”을 표명한다고 했다. 서 변호사는 탄핵 기각을 위해 변호인 측이 증인들을 여러 명 더 신청했으나 헌재측이 무더기로 기각해 박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처리했다고 항변했다. 그는 헌재 측이 “증인 신청을 무더기로 기각”했을 때 “이미 그 당시에 8대0의 결론이 나와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헌재가 촛불 시위에 눌려 증인 신청을 기각한 게 아닌가 의심케 한 항변이었다. 
지난 12일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나 서울 삼성도 사저에 도착한 직후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 탄핵이 국회와 헌재에서 촛불 시위 중압속에 서둘러 처리되었음을 감안할 때, 박 대통령 탄핵이 옳았는지는 앞으로 재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안창호 헌재 재판관은 탄핵 심판 보충 의견을 통해 박 대통령 탄핵의 근본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고 했다. 안 재판관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비선 조직의 국정개입, 대통령의 권한 남용, 재벌기업과 정경 유착”을 낳았다며 “탄핵 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고 하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비선 조직의 국정개입’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무관하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40년 질긴 인연이 빚어낸 후유증이었을 따름이다. ‘재벌기업과 정경 유착’도 산업화 이후 50여년 관행으로 굳어진 정경유착의 제도화 탓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때문이 아니라 법치주의 결여와 후진적 정경유착이 가져온 부산물이다. 후진적 정경유착 의식이 먼저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뜯어고쳐 ‘머슴 대통령제’나 ‘내각 총리제’로 바꾼다 해도 정경 유착과 측근의 국정농단은 청산될 수 없다. 
또한 안창호 재판관은 박 대통령 탄핵이 “헌법 질서 수호”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도리어 대통령 파면이 헌법 질서를 혼돈에 빠트릴 위험을 수반한다. 촛불시위를 벌이면 대통령이 탄핵된다는 학습 효과로 인해 걸핏하면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요동칠 수 있다. 서울은 탄핵 촛불시위로 밤이 시작돼 촛불시위로 날이 밝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 
다음 대통령부터는 대통령이 촛불처럼 훅 불면 꺼지는 ‘촛불 대통령’으로 전락돼 불안만 증폭시킬 수 있다. 박 대통령 파면이 ‘법치와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킬지, 아니면 촛불 시위 만능 풍조를 확산시켜 혼돈만 자아낼지 속단키 어렵다. 박 대통령 파면을 걱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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