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특기생들 머리 굳어 공부해도 안 되는 상황에 좌절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문화체육관광부와 체육계가 ‘제2의 정유라’ 사태를 막기 위한 규정을 올해부터 시행키로 함에 따라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이하 총장협)가 대학생 선수들에게 ‘C제로 룰’을 적용했다. ‘C제로 룰’이란 평점 평균 C학점 이상을 받지 못한 대학생 스포츠선수는 국내 대학리그 경기 출전이 전면 금지된다는 규정이다. 이에 대학선수, 학부모, 지도자 등 학교 스포츠의 3대축이 일대 혼란에 빠졌다. 엘리트 스포츠 시스템을 밟으면서 머리가 다 굳은 애들한테 성적 나쁘면 경기에 못 나가게 하는 규정에 적응이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총장협은 공부하는 운동선수를 만들기 위한 정책을 계속 강력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라 그동안 운동에만 전념했던 대학 선수들에게는 타격이 클 전망이다.
 
 
올해부터 대학 운동부 학생은 직전 2개 학기 평점평균이 C제로(보통 2.0) 미만일 경우 다음 학기 대학리그에 나가지 못한다.

총장협 관계자는 “운동부를 운영하는 92개 회원 대학이 대상이며 해당 대학리그는 축구와 배구·농구·핸드볼”이라며 “이미 2016학년도 각 대학의 선수 성적자료를 취합해 이번 학기 리그에 출전하지 못하는 선수를 가려냈다”고 설명했다.

대학리그는 대학 운동부 학생들의 프로 무대 진출을 결정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대학리그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 성적이 없으면 당연히 국가대표 선발에도 지장이 크다.

체육계는 그동안 각 대학 자율에 맡겼던 학업성적 관련 경기출전 규정을 대폭 강화하면서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보편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선수·학부모 한숨
 
이 같은 ‘C제로 룰’은 최순실 씨 딸 정유라와 같은 체육특기자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대학 선수와 학부모 등은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비선 실세’ 최순실(61)씨의 딸 정유라(21)씨가 체육특기생 제도를 악용해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특혜를 받은 불똥이 애먼 학생들에게 튀었다는 것.

대학 측은 사회정서상 체육특기생에게 특혜를 적용해 더 이상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교수들 역시 이화여대 교수들이 줄줄이 사법처리되는 모습 앞에서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지만 그동안 운동만 하도록 교육받은 특기생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올해 출전이 금지된 선수만 해도 102명에 이른다. 축구가 89명으로 가장 많고 농구(7명), 배구(4명), 핸드볼(2명) 등이 뒤를 잇는다. 연세대의 경우 축구팀 선수 28명 가운데 14명이 C학점 미달이었다.

E대학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한 A(21)씨는 “정유라 사건이 일어난 후 더 공부를 열심히 했기 때문에 2학기에는 학점이 잘 나올 줄 알았으나 오히려 1학기 때보다 성적이 훨씬 나빴다”며 “팀원들 모두 2학기 성적이 떨어졌는데 정유라 사건 때문에 체육특기생 성적을 짜게 준 거 아니냐는 얘기가 돈다”고 말했다. 그는 “올 시즌 경기에 못 나가면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고 울먹였다.

‘C제로 룰’ 때문에 올해 출전이 금지된 대학 축구 체육특기생 아들을 둔 B(52)씨는 “아들 하나 프로축구 선수로 키우기 위해 평생을 바쳤는데 선수 생명이 끊길 지경이 되었으니 큰일이다”며 “잘못은 정유라가 했는데 그 대가를 왜 다른 대학 선수들이 받아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축구로 장학금을 받고 입학한 아들이 지난해 평점 C가 안 나와서 학칙에 따라 장학생 자격을 잃었으면 됐지 대학리그까지 출전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억울해했다.

총장협 관계자는 “그동안 체육 특기생 선수들에게 공부보다는 운동에 전념하라는 의미에서 특혜를 주는 정책으로 흐르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며 “체육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다”고 밝혔다. 극히 소수에 해당하는 선수들만이 프로 선수나 국가대표선수로 뽑히고 대다수의 운동선수는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찾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사례가 많았다는 것.

총장협은 앞으로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모토 아래 대학교 입학 때 체육 특기생들도 입학 특례를 받을 수 없게 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총장협 관계자는 “운동선수가 머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릇된 편견이다”며 “탁구선수 유승민은 올림픽 무대에 섰던 IOC 위원들이 경제학자 법률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굉장히 부러워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골프선수 미셀리는 학업 때문에 오래 동안 무대에 못나왔던 적도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메달 지상주의적인 방향보다는 미래를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제 경기 기간 중 외국선수는 시간이 나면 학업을 보충하기 위해 호텔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여유 있게 노는 선수를 보면 대개 한국 선수였다”며 “앞으로 운동은 일정 시간으로 제한하고 나머지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 뿌리내리게 할 예정이다”고 전했다.
 
정부, 폐단 막기 위한 정책 시행
 
그러나 대다수의 대학 선수와 학부모는 “어렸을 때부터 쭉 축구에만 전념해서 공부하는 머리를 발달시키지 못한 상황에서 새삼스럽게 성적 나쁘면 경기에 못 나간다고 하는 것은 억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고 항변했다.

정부는 이 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올해부터 최저 학력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초·중·고 학생 선수는 각종 대회 출전이 어려워지고, 출결도 엄격하게 관리된다. 사실상 제2의 정유라 사태를 막기 위한 대책인 셈이지만 선수의 장래를 위한 정책이기도 하다.

먼저 경남교육청이 올해부터 최저 학력에 미달하는 학생선수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체육단체가 개최하는 각종 대회에 출전 제한을 받게 된다고 지난 14일 밝혔다.

초등학교 선수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을 대상으로 소속 학교 해당 학년 평균 성적의 50%, 중학생은 40%, 고등학교 선수는 국어, 영어, 사회 등 3개 과목 성적이 해당 학년 평균의 30%를 넘어야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최저 학력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는 ‘e-school'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대회 참가가 허용된다.

학생 학습권 보호를 위해 대회 참가 횟수도 연 2~4회로 제한된다. 남자축구는 주말리그 외에 방학기간을 포함해 연간 2회 이내로만 출전할 수 있고, 대회 기간도 6일 이상을 초과하면 안 된다. 또 정구, 탁구, 역도, 복싱, 테니스, 핸드볼 등 41개 종목은 연간 3회 이하로 참가 횟수가 제한되고 육상, 체조, 수영 등 13개 종목도 4회 이상 출전할 수 없도록 명문화했다.

이 밖에도 올해부터 학교운동부 합숙소 운영이 전면 금지되며, 학교운동부 지도자 인건비와 운영비를 학교회계에 기탁해 운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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