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의 미국 이민 갈수록 어려워진다

“제도 도입 25년 지났으니 인플레 반영해야” 주장
 고학력자에게 내주는 이민 비자도 더 까다로워져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일정 금액을 투자하면 미국 영주권을 얻는 투자이민(EB-5) 제도를 통해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은 2014 미국 회계 연도(2014년10월~2015년 9월)에 162명으로 중국인 다음으로 많았으며, 2015 회계 연도에는 89명으로 중국·베트남·대만에 이어 4위였다. 한국인에게 미국으로 이주할 중요 수단 중 하나로 꼽히는 EB-5의 최소 투자금액이 대폭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전문지 배런스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부(DHS)는 EB-5 비자 신청에 요구되는 최소 투자금액을 현행 50만 달러에서 135만 달러로 크게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DHS는 오는 4월 11일까지 주민 의견을 청취한 다음 투자금액을 확정한다. 

현행 EB-5 제도는 일자리 최소 10개를 창출하는 농촌 공동체나 고(高)실업 지역의  사업에 투자하는 사람에게 영주권을 준다. 경제가 활발한 지역의 최소 투자금액은 100만 달러이며 DHS는 이를 180만 달러로 올릴 방침이다. 하비법무법인의 경영파트너 바스티엔 트렐캣은 “그런 식으로 최소 문턱을 높이는 것은 EB-5 향후 투자자들의 면모를 전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제도 변경의 파장을 예상했다. 

그간 이 제도의 주된 신청자는 중국인이었다. 이번 EB-5 제도 손질에는 미국 토지 가운데 어느 부분이 저비용 투자지역인지 판정하는 권한을 DHS에 주는 것이 포함돼 있다. 이는 DHS로 하여금 EB-5 기금을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 배정토록 한다는 취지다. 배런스는 주(州) 정부가 주도하는 현행 제도는 무원칙으로 흐르기 일쑤며, 최악의 경우 개발업자들로 하여금 관련성이 희박한 토지 조각들을 얼기설기 모아 고(高)실업 지역 요건을 충족토록 허용한다고 지적했다.

이민 변호사들은 1990년대 초 이래 처음인 EB-5 제도 변경을 지지한다. 대형 법무법인 코즌오코너의 파트너 스콧 베트리지는 “때가 무르익었으며 변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소 투자금액 인상도 필요하다면서도 주민 의견 청취 기간을 거치는 과정에서 DHS의 목표 액수가 낮아질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법무법인 위더스버그만의 파트너 레아즈 자프리는 미국보다 작은 나라들이 훨씬 더 높은 액수의 투자를 요구하는 판에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목적지”인 미국으로 가는 값싼 티켓을 EB-5가 너무 오래 제공해 왔다면서, 지중해의 소국 사이프러스가 약 200만 유로(210만 달러)를 부동산에 투자해야 시민권을 제공함을 들었다. 자프리는 지난 25년간의 인플레를 감안하면 “투자금액 인상은 무척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EB-5는 지금까지 중국인들에게 손쉬운 미국 이민 수단으로 각광받아 왔다. 이민 관련 자문회사인 로젠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중국인 투자 이민자들은 2010년 EB-5를 취득한 이래 지금까지 최소 95억 달러의 투자와 2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중국인들이 너무 많이 몰려오자 미국 정부는 2015년 다른 나라 출신에게도 EB-5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EB-5에 대해 연간 쿼터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15 회계 연도(2015년 10월~2016년 9월)에 EB-5 비자가 9764건만 발급됐다. 그랬는데도 전체 비자 발급 가운데 84%인 8156건을 중국인이 차지했다. 그만큼 중국 출신 이민 희망자들의 투자 자금이 넉넉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대학·대학원 졸업자에게 내주는 미국 취업비자도 얻기가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 근로자 채용 최우선’ 정책을 예고해 온 가운데 미국 의회가 전문직 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하는 H-1B 취업 비자 발급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법안의 심의에 이미 착수했다. 경제전문지 포천 등에 따르면 미 하원 법사위원회는 현재 H-1B 비자 발급 요건을 강화하는 법안을 심의 중이다. 

새 법안은 H-1B 비자를 통해 채용된 임시직 근로자들에게 고용주가 연봉을 현행 최소 6만 달러에서 최소 10만 달러로 높여 지급하고 인상한 최저 연봉을 앞으로 인플레이션에 연동시키라는 것이 골자다. ‘미국 일자리를 보호하고 키우는 법’으로 알려진 이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 데럴 아이사 의원(공화·캘리포니아 주)이 발의했다. 

H-1B 비자 프로그램은 미국 기업들이 미국인 가운데 적임자를 찾지 못할 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을 쉽게 하는 것이 그 취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들이 외국인 고급 인력을 채용하기는커녕 미국인들로 일자리를 채울 수 있는데도 신입 단계의 외국 인력을 싸게 쓰려고  H-1B 비자를 사용하고 있다며 제도를 축소하거나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상당한 증거가 있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아스 테크니카는 얼마 전 하워드대학 공공정책 연구원 로닐 하이라의 미국 의회 증언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하이라는 “H-1B는 대단히 분명하게 미국 노동자들에게 대규모로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에는 극적인 사례 하나가 일반에 알려졌다. 한 기술자 집단이 디즈니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그들은 H-1B 법률의 취지에 어긋나게 그들을 교체할 외국인 직원들을 교육하도록 강요당했다고 말했다.  이 소송을 계기로 입법 개혁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H-1B 비자 법률은 1998년 개정을 거쳐 H-1B 근로자들에 대한 최저 임금을 설정했다. 하지만 현재 미 하원에 상정된 새 법안은 그 개정 법률의 임금 요건이 1998년 이후의 임금 인상을 반영하지 않았으며, 그때 이래 미국 근로자 보호가 약해졌다고 주장한다. H-1B 근로자의 최저 임금 인상은 이론적으로 외국인을 덜 매력적으로 만들지만 기업들이 더 기술적인 일을 아예 외국에 외주함으로써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 

트럼프가 최근 기술 산업계 지도자들과의 토론회에서 논의했듯이, 다른 가능한 프로그램 수정 방안으로는 ▲비자 신청 수수료 인상 ▲최고 연봉을 제시하는 기업들에 H-1B 비자를 몰아주기 등이 있다. 또 다른 가능성 하나는 외주 또는 임시직 일자리 기업들에 의한 H-1B의 사용을 구체적으로 제한하는 것이다. 그 기업들이 현재 H-1B의 다수를 수령하며 디즈니 사례를 포함해 비자 오용 혐의의 초점이 돼 왔다. 

H-1B 개혁은 인재를 구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할 수밖에 없을 기업들과, 임금 인상과 일자리 안정이라는 이득을 누릴 수 있게 될 미국인 근로자들 사이에서 불화를 빚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언론은 전망한다. 외국인 입장에서는 이래저래 미국으로 이민 가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