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관계, ‘상전벽해 (桑田碧海)’ 변화 실감
존 틸럴리 전 사령관, “한국은 비상사태 잘 다룰 능력 있다”


“이제 중국은 우리의 밥줄입니다. 중국을 빼놓고 더이상 우리의 미래를 말할 수 없습니다”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중국지역본부를 책임지고 있었던 이효수(李曉秀) 본부장은 한·중수교 12년 만인 지난 2004년 6월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부상한 중국의 존재를 ‘밥줄’로 비유했다.

반세기 전 ‘원한의 피’를 흘리며 전쟁을 치른 적, 그리고 한동안 ‘뿔달린 또 다른 빨갱이’로 불리던 과거 ‘중공’을 기억하는 한국인이 거의 사라진 오늘, 그의 표현은 당시의 각종 통계에서 그대로 확인됐다.

2003년 당시 우리 나라는 1천943억3천만 달러의 사상 최대 수출을 기록하며 155억4천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거뒀다. 당시 내수경기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유일한 효자 역할을 한 수출 내용을 들여다보면, 한마디로 ‘중국 덕분에’로 요약됐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357억달러로 25.5%의 증가율을 보였던 것이다.

당시 국가별 비중이 18.4%에 달했던 중국은 342억달러(비중 17.6%)의 미국을 제치고 최대수출국으로 사상 처음 부상했다. 중국 수출로 거둬들인 흑자는 134억6천만달러로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게다가 중국의 위상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었다. 지난 2004년 5월말 기준 중국의 수출 비중이 19.0%로 올라섰고, 미국과의 격차도 어느덧 28억 달러 수준까지 벌렸다. 2003년 전체 8억9천100만 달러의 격차를 벌써 3배 이상 벌린 셈이다.

2003년 당시 중국으로 투자된 한국의 돈은 25억 달러로 전체 해외 투자액의 46%나 점유했다. 1988년부터의 투자누계액은 138억 달러로 미국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인적 교류만 하더라도 2003년 약 250만명의 한국인과 중국인이 상대국으로 오갔다.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은 200만 명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제1위 방문국으로 올라섰다. 한국을 찾은 중국인은 50만 명이었다. 1991년과 비교하면 인적 교류는 약 25배나 증가했다.

당시 베이징(北京)이나 상하이(上海), 칭다오(靑島) 등 중국의 주요 도시에 가면 한국거리가 흔하게 조성돼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이 중국땅에서 활개를 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열풍까지 불어 “이 땅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린다”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양국 관계의 발전은 경제 및 인적 교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정치와 외교는 물론이고, 군사 분야의 협력도 전면적, 포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한때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이었던 북한을 상대로 한 외교전에서 중국이 우리의 대북(對北) 포용정책을 지지했고, 남북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화해, 교류 및 협력관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대목에서는 ‘전쟁의 그림자’를 찾으려래야 찾을 수 없는 변화를 느끼게 했다.

당시 베이징(北京)에서 진행된 북핵 6자회담에서 의장국인 중국의 ‘건설적 역할’은 한반도 안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요인이 됐다. 국제무대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유지, 역내 안보 분야 협력을 강조한 중국의 목소리는 유엔은 물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 국제무대에서 어김없이 우리와 호응하고 있었다.

지난 2003년 7월 중국땅을 밟은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존경하는 인물을 묻는 질문에 한국전쟁의 한 주역이었던 마오쩌둥(毛澤東)을 거론하기까지 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한중 관계를 ‘전면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규정시켰다. 1998년 11월 당시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방중시 ‘21세기 협력동반자 관계’를 선언한 데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한국전쟁의 참전용사들의 입에서 조차 “과거를 딛고 밝은 미래를 건설해나가자”는 ‘축복’을 받는 한중관계의 오늘은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변화를 느끼게 한다.

마치 반세기 동안 ‘적대적 외면’을 해오던 양국이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그리고 깊이있게 관계를 발전시킨 것은 세계 역사상 그 유례가 없는 특별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리적 근접성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된 문화적 동질성, 그리고 경제구조의 상호보완성이 크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21세기 동아시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전략적 공동이익도 양국관계를 더욱 폭넓게 발전시키는 동인(動因)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시 상하이의 한 외교소식통은 “수교 12년만인 2004년에 한국의 최대 수출국, 최대 방문국으로 자리잡은 중국의 위상이 향후 10년, 20년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상상해볼 시기”라면서 “양국이 전략적으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관계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차이나 쇼크’에 한국증시가 폭락하는 데서 보듯 어쩌면 지나친 중국에 대한 의존이 새로운 ‘심리적 공황’을 안겨줄 수도 있고, 이로 인해 한국민들이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전쟁’을 치러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귀 기울일 때가 왔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었다.

한편, 2004년 당시 미국은 이라크전으로 크게 곤혹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라크와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테러범들에 의해 미국 민간인 2명이 참수 살해당한 데 이어 동맹국인 한국의 민간인 1명까지 살해됐기 때문이다.

미국은 54년 전 북한의 침공에 맞서 한국을 지키려고 한국전쟁에 참전했으며, 당시 베트남전 사망자의 두 배인 약 3만 4천 명의 미군이 희생됐다. 그 후 한국은 베트남전에서 미국을 돕기 위해 참전했고, 당시 이라크전에 3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한 상황이었다

당시 존 틸럴리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한미관계 모임에서 한국전쟁에서 많은 미군이 피를 흘렸던 역사를 토대로 구축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의 한국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기꺼이 도와주는 것이 동맹국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과 비슷한 내용의 발언이 한국전 참전용사들과의 인터뷰에서도 나왔다.

지난 1995년 한국전 참전기념비 건설을 위한 대통령 직속위원회 소속 12명의 위원중 한 명이었으며 한국전에 중령으로 참전했던 에드워드 보처트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국이 이라크에 3천여 명의 병력을 파견하는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면서 “과거 베트남전에서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존슨 대통령의 파병 요청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서 흔쾌히 승락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당시 주한미군 감축이나 한국 일각의 반미감정 표출 등의 의미는 별로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틸럴리 전 사령관은 한국 사회에 반미 감정이 불거진 이유를 한국 언론의 문제, 미국에 대한 북한의 위협을 전제로 취해지는 선제(preemptive) 공격 정책,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대한 불안감 등에서 비롯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보처트씨는 “한국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비무장지대로 데리고 가서 그들(북한)의 위협을 말해줘야 한다”면서 “우리는 한국이 통일되기를 원하며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바란다. 한국과 미국은 혈맹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전쟁에 AP통신의 사진기자로 참전했던 맥스 데스포 씨는 “나는 정말 반미감정을 믿지 않는다”면서 “그것은 미국이나 한국정부에 위협이 될 정도로 강력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은 주로 젊은 학생들이 주도하는 것이고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아는 기성세대는 반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데스포씨는 주한미군 감축에 대해서도 “한국은 한국전쟁에서 좋은 교훈을 얻어 자체 방위를 위한 병력을 잘 훈련하고 구축했다”면서 “한국은 비상사태를 잘 다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며 또 미국은 비상시 한국을 도우러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한국의 번영이 자랑스럽다는 것이었다.

틸럴리 전 사령관은 6.25 이후 남한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번영을 이룬 반면 북한은 황폐해졌다면서 남한에 대한 미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보처트씨는 “우리는 한국전 참전, 한국의 자유 민주주의에 공헌한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한국은 세계의 경제대국이 됐다”고 말했다. 데스포씨는 “한국은 세계에서 매우 강력한 경제세력으로 부상했으며 사람들이 행복하고 건강해보이는 것이 보기 좋다”고 말했다.

반면,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피터 벡 한국경제연구소(KEI) 수석 연구원은 “우리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교훈으로 삼아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미국의 노력은 그런 비극을 피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