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성공한 군주는 세 가지를 갖추고 있었다. 자신에게 꾸지람을 해주는 ‘사부(師父)’와 세상사를 귀에 거슬리는 대로 말해주는 ‘지기(知己)’와 자신을 지켜주는 방패인 ‘조아(爪牙)’를 이른다. 지금은 국가존망지추(國家存亡之秋)의 난세(亂世)다.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 했다. 영웅의 출현을 위해서는 명참모의 조력이 필요하다. 명군과 명참모는 성공의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 간난신고(艱難辛苦)를 함께 한다. 명군은 ‘원수라도 등용’할 수 있는 포용의 리더십을 갖춰야 하고, 명참모는 ‘목숨을 건 진언’을 할 수 있는 충성심이 있어야 한다. 이 ‘활용과 설득의 변증법’이 한 국가의 성공 요체인 것이다.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지도자가 도량과 관용을 기르고 발휘해야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삼국지연의』에는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이긴 조조(曹操)가 “자신의 부하들이 원소에게 투항하겠다”는 내용의 편지 꾸러미를 원소의 병영에서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한 내용이 나온다. “원소가 강했을 때는 나조차도 마음이 흔들렸는데 다른 이들은 오죽했겠느냐.” 조조는 편지 꾸러미를 모두 태워 버리고 더 이상 거론하지 말 것을 명령해 군심을 안정시켰다. 후한의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도 한단을 함락시키고 왕랑의 반란을 평정한 후, 관리들이 왕랑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발견하고는 모두 불태우도록 했으며, 그 결과 민심을 안정시켰다. 자신을 죽이려고 한 원수를 중용한 제나라 환공, 당태종 이세민,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은 모두 명군이 되었다. 이처럼 ‘통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군주는 역사의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헌정사에 통치자들의 연이은 실패를 곱씹어봐야 할 이유이다.
 
‘열국지(列國志)’는 중국 춘추시대부터 진(秦)나라 통일까지의 550년 역사를 풀어쓴 책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자천타천 대통령 후보가 30명이 넘는 춘추전국시대의 군웅(群雄) 쟁투를 방불케 한다. 이제 어느 당의 누가 집권하든 보수와 진보, 좌와 우를 뛰어넘는 포용의 정치를 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한국판 대선 열국지를 한번 살펴보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의 후보 출마는 상수로 예상되며 보수중도 대연합의 성사여부에 따라 4파전 내지 5파전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크다. 따라서 5.9 조기 대선은 남의 표를 빼앗는 공성전(攻城戰)이 아니라 자기 표를 지키는 진지전(陣地戰)으로 전개될 것이다. 태극기와 촛불의 좌우 이념 대결구도가 이를 증폭시키고 있다.
 
진보좌파 진영은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안희정·이재명과 국민의당의 박주선· 손학규·안철수, 그리고 정의당의 심상정 중 3당의 후보 출마는 거의 확정적이다. 지지율 1~2위를 달리는 문재인·안희정은 당내 경쟁력에 있어서는 문재인이, 본선 경쟁력에 있어서는 안희정이 앞서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안희정이 전략적인 ‘대연정’과 ‘포용의 정치’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문재인이 김정은과는 대화를 말하면서 ‘보수척결’ ‘적폐청산’ 등 패권주의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17일 발표된 한국갤럽 대선 여론조사에서 후보 호감도가 문재인은 호감 47%, 비호감 50%로 비호감이 더 많았다. 그러나 반대로 포용적 태도로 일관한 안희정은 호감 56%, 비호감 37%로 호감이 훨씬 많았다. 이 조사는 경선 이변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다 볼 수 있다.보수우파 진영은 재기의 돌파구를 찾아 ‘보수의 간판’을 다시 세워야 한다. 반성은 하되 패배주의에 빠지면 안 된다. 보수의 위기가 대한민국의 위기가 되지 않게 해야 한다. 자유한국당에는 김관용·김진태·이인제·홍준표가 있다. 바른정당에는 남경필·유승민이 있다. 이들 중 최종 후보가 제3지대의 김종인·정운찬 등과의 보수·중도 대연합을 이뤄야 한다. 지지도에서 뒤지고 있는 세력이 앞선 세력을 제압하려면 상대의 예기(銳氣)를 꺾기 위해 숨은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보수·중도 대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연합’을 구축해야 한다. 바른정당은 ‘보수대연합’과 ‘국민의당과의 연대’ 사이에서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 선(先) 단일화, 후(後) 통합의 보수 정당 복원의 길을 가야 지리멸렬한 당의 활로와 보수 집권의 단초를 열 수 있다.
 
18대 대선일(2012.12.19) 45~47일 전인 11월 2~4일에 실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서 3자구도는 ‘박근혜41.3%-안철수25.7%-문재인22.7%’로 1~2위 간 지지도 차이는 15.6%였다. 11월 2~3일에 실시된 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양자구도는 ‘박근혜46%-안철수50.4%’, ‘박근혜47.3%-문재인46.6%’였다. 안철수가 박근혜에 4.4%, 박근혜가 문재인에 0.7% 앞섰다. 18대 대선보다 더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19대 대선은 현재의 지지도를 가지고 한 달 보름 후의 당락을 점치는 것은 무리다. 각 당의 경선 과정에서 이변이 속출할 수 있고, 본선 경쟁과정에서 마지막까지 예측불가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는 임계선이 있어 이를 넘어가면 본질이 변화하는 것이 유물변증론이다.
 
‘공심위상(攻心爲上) 공성위하(攻城爲下)’. 병법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공략하는 것은 하책이라고 했다. 상대를 타도하는 것은 ‘공성’의 전략이며, 함께 협치(協治)하는 것은 ‘공심’의 전략이다. 공성전략은 ‘익숙한 패배’로 연결될 수 있으며, 공심전략은 불리한 조건을 유리하게 역전시킬 수 있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진보좌파 승리의 내면에 ‘실패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진영논리에 매몰돼 있는 문재인 캠프는 욕속부달(欲速不達),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지도자는 어질고 넓은 도량과 관용을 가져야만 조직을 단결시킬 수 있으며, 선거에서 승리하고 치세(治世)를 열 수 있다. 한국 정치는 언제나 역동적이었고, 패권주의적인 대세론을 거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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