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석희를 중용한 계몽군주는 홍석현
- 홍석현 정치 활동 JTBC 냉정하게 비판해야


2016년 가을, JTBC는 마법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 박근혜 대통령 파면 정국의 1막을 열어젖힌 이들은 언론이었다. TV조선과 한겨레도 혁혁한 공로를 세웠고 최순실을 정조준하고 있었지만, 10월 말 태블릿PC를 공개한 JTBC의 보도가 발군이었다. 특히 보수정부인 이명박 정부가 허가한 두 종편방송이 그 후임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 일익을 담당하게 된 역설적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JTBC가 여타 종편과 다른 길을 걸으리라는 것은 2011년 12월의 개국부터 예측된 바였다. 제작비가 낮은 시사토론 일색 방송으로 노년층의 쉬운 지지부터 이끌어냈던 여타 3사와는 다르게, 타 방송국보다 큰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드라마와 예능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 JTBC의 분기점은 손석희 사장의 취임이었다.

2013년 5월, 논란 속에 성신여대와 MBC를 떠난 손 사장의 JTBC 합류는 이 방송사가 박근혜 정부 시기를 여타 방송과 다르게 보낼 거란 사실을 알려주는 신호탄이었다. 갸우뚱한 부침의 시기가 있긴 했지만, 특히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JTBC는 다른 지상파·종편 방송과 확연히 다른 편집으로 어떤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다.

손석희 뒤 홍석현 있다?

사람들은 예전의 이력과 위상을 유지한 채 JTBC 사장으로서 개혁에 나서고 정점에 선 손석희에게 관심을 보였다.  21세기 이후 몇몇 개혁 정치인들이 이러한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이 있지만, 언론인으로선 사실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업계 사람들의 시선은 달랐다. 손석희는 그를 영입한 JTBC가 기대한 것 이상의 역량을 발휘하여 여기까지 왔지만, 업계 사람들이 보기엔 손석희가 계몽군주가 아니었다. 계몽군주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면서 손석희 사장을 데려온 사람이었다. 중앙일보 사람들은 사석에서 “홍 회장은 진보도 문제없이 포용한다”는 말을 즐겨한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엔 별 차이를 못 느낄지 몰라도, 주류 사회의 시선으론 이른바 ‘조중동’이라 묶이는 보수언론 중에선 확실히 진보에 포용적이었다는 평가다. 홍 회장은 결국 미국 리버럴 정도의 정치적 위치를 점유하는 미디어그룹을 만들고 싶어할 거란 희망 섞인 기대도 있었다.

그랬던 홍석현 회장이 최근 출마설에 휩싸였다. 중앙미디어네트워크 회장을 그만두면서 임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의 내용이 의미심장했던 탓이다. "오랜 고민 끝에 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습니다"란 발언이 사실상의 정치 참여 선언처럼 보였다. 대권 출마설, 입각 밀약설 등이 나돌기도 했다.

혹자는 홍석현 전 회장이 삼성가의 압력으로 미디어그룹에서 축출당했다고 진단한다. 합리적이지 못한 해석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전개과정을 보면 삼성은 정부의 요구에 매우 순응적이었다. 삼성이 JTBC를 통제할 수 있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애저녁에 삼성을 동원하여 JTBC를 통제했을 것이다.

홍 전 회장은 이건희 전 회장의 처남이다. 하지만 이재용 회장에겐 외삼촌, 친척 어른이다. 이 전 회장이 쓰러진 지 만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시점에서 JTBC가 갑자기 삼성의 통제에 놓여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손석희 사장과 JTBC는 오히려 자사 방송이 삼성의 영향력에 놓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그간 노력해왔다. 그런 손 사장에게 홍 전 회장은 전권을 줬다. 지난해 발간된 자서전에선 본인이 손 사장을 영입한 상황을 삼고초려에 비유하기도 했다.

JTBC에게 홍 전 회장 정치행보 난감

손석희 사장과 JTBC에게 홍 전 회장의 정치 행보는 난감한 일일 것이다. JTBC가 그간 추구한 정론의 길이 특정인의 이미지 구축을 위한 것이었느냔 냉소적 반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론 그렇기에 손 사장이 홍 전 회장 행보를 온정적으로 대하기 어렵다. 언론계에서 흔히 쓰는 말로 ‘업계 떠나면 더 이상 선배 아니다’란 말이 있다. 언론계를 떠나 정치권에 가면 출신 언론에서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 손 사장과 JTBC도 그간 만들어온 것이 있기 때문에 물러설 곳이 없다. 

홍 전 회장이 얼마나 대중적이며 정치력이 있는 인물이냐도 문제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홍 전 회장은 반기문 대신 참여정부가 배출한 UN사무총장이 될 수도 있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계몽군주 홍석현’은 ‘미디어 영웅 손석희’만한 인지도도 없다.

업계 거물들은 본인의 영향력과 대중적인 인지도를 쉬이 혼동하곤 한다. 본인이 나서면 강호제현이 나서 도우리라 기대하지만 현실은 한물간 정치낭인, 쭉정이들이 먼저 붙는다. 쭉정이들의 아부 섞인 정치판 분석은 정치 영역을 처음 경험하는 이들에게 달콤하다. 그 말을 믿으면 몰락의 길로 간다. 홍 전 회장보다 훨씬 관료나 의원 경험이 길었던 이들조차 그렇게 되곤 했다. 홍 전 회장 아닌 손 사장이 직접 입문했다 해도 어려운 길이다. 

홍 전 회장의 퇴사는 손 사장에게 나쁘기만 할까? 이미지 재구축이 필요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홍 전 회장의 측근들이 보수적이고 ‘반손석희’인 경우가 많기에, 그들이 동반퇴진한다면 외려 위상이 강화될 거란 관측도 있다. 그리되면 그야말로 손 사장이 계몽군주로 군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 경우 아마 언론으로서의 JTBC의 향후 과제는, 이 강화된 군주의 권한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가 될 것이다.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