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당연히 문재인 집권 저지다”. 본 기자가 ‘태극기 집회’ 취재 과정에서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건넨 “문재인 전 대표 집권 저지와 탄핵 찬성파 응징 중 우선순위를 정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었다. 망설임도 없었고 오히려 당연한 것 아니냐며 기자에게 반문하기까지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자유한국당-바른정당 간 ‘범(凡) 보수 대통합’이 급물살을 탄 원동력 역시 이와 같다고 평가한다. 범(凡) 보수가 대선이란 절체절명의 큰 판을 위해 사사로운 원한을 유보하고 ‘대의멸친’에 임하고 있다는 것. 당내 경선 흥행을 이끌어 내며 본격 보수 결집에 나선 한국당, 지지율 부진 속에 울며 겨자 먹기로 한국당과의 연대를 고민 중인 바른정당, 이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태극기 민심’. 이들이 꿈꾸는 9회 말 투아웃 역전 홈런 시나리오, 그 속으로 들어가 봤다.
ⓒ 일요서울 정대웅 기자
     - ‘사단’ 한국당, ‘여단’ 바른정당, ‘특공대’ 새누리당
- 앙금 뒤로하고 반문(反文)으로 하나 되나


‘제3지대’에서 논의됐던 ‘비문연대’ 구축은 실현 여부가 점점 불투명해지는 반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간의 ‘범(凡) 보수 연대’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각 당 경선 이후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홍준표·김관용·김무성·유승민, 단일화 ‘긍정’ 

일단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후보 중 후보 단일화에 긍정적인 주자는 홍준표 후보와 김관용 후보 둘이다. 이들 중 홍 후보가 가장 적극적이다. 홍 후보는 “좌파 정당 (집권을) 막을 수 있다면 중도 대연합까지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한국당의 중진의원들과 연일 접촉하며 보수 단일화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후보와 김무성 의원이 긍정적이다. 유 후보는 지난 2월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보수 진영 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힘들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엔 후보 단일화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며 “그래야 이번 대선을 치러 볼 만하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비록 바른정당의 또 다른 대선 후보인 남경필 후보가 보수 단일화에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지만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유승민 후보는 ‘보수의 심장’ TK에서 ‘배신자’ 낙인이 찍히며 연일 비난이라도 받으며 세간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남경필 후보는 비난조차 받지 못하는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남 후보의 지지율은 1%대로 추락했다. 속된 말로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고 연예인들이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것은 결국 비난을 받을 지라도 세상에서 잊히고 싶지 않다는 욕망의 표현이다. 그런 점에서 남 후보는 사실상 야권은 물론이고 보수에서조차 잊혀 가는 존재가 된 모습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는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큰 틀에서 보수 후보 단일화를 피력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필연코 이뤄져야 한다”며 “남경필 후보의 분열 조장론에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홍 후보와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 15일 단독 회동해 대선을 앞두고 보수 후보 단일화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홍 지사는 이날 부산 벡스코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한국당 대통령후보자 부산·울산·경남 비전대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이혼이 아니라 별거 상태인 만큼 걸림돌만 정리되면 다시 합할 수 있다”며 “김 의원에게 보수 후보 단일화하고 대선 후 당 통합을 얘기했다”라고 말했다.

바른정당 김용태 대선기획단장 역시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선 누구도 독자 힘으로 문 후보의 집권을 저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결국 반문(反文) 단일 대오를 만들어 협치냐 아니냐를 놓고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지지율 급락 바른정당, 외부에 끊임없는 ‘구애’

만약 이 같은 시나리오가 성사될 경우 현재 정당 및 대선후보 지지율이 압도적인 한국당이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데일리안이 의뢰해 여론조사 기관 알앤써치가 무선 100% 방식으로 실시한 3월 넷째 주 정례조사에 따르면, TK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 이후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6.8%로 전 주(18.0%) 대비 급락한 반면 한국당은 전 주(13.8%) 대비 10.3% P 상승한 24.1%를 얻었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22일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석하는 모습을 본 보수 지지층이 동정심으로 뭉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대선이 다가오니 보수가 결집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바른정당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선 경선 토론회를 해도 보수 지지층들은 결국 ‘보수는 자유한국당’이라는 생각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국당 지지율 상승 원인을 분석했다.

TK는 ‘보수의 심장’이다. TK 민심을 얻지 못한 정당은 보수정당이라 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TK에서 시작돼 지난 3월 1일 촛불을 꺼버리기에 이른 ‘태극기 세력’은 바른정당을 ‘가짜 보수’로 칭하고 ‘진짜 보수’ 자유한국당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보수 단일화가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1인 대선후보, 3인의 선대위원장?

관건은 친박계다. 친박계 없는 ‘보수 결집’은 앙꼬 없는 찐 빵이다. 한국당 내에서 홍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태극기 영웅’ 김진태 후보는 바른정당과의 단일화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배신자’들과는 절대 함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일각에서는 자유한국당에 지지를 보내는 ‘태극기 세력’이 바른정당의 ‘응징’을 외치고 있는 만큼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범(凡) 보수 대통합’을 이뤄낸다 할지라도 정작 지지층은 결집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박 전 대통령의 등에 칼을 꽂은 패륜 세력과는 머리를 맞댈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김진태 후보의 말처럼 ‘태극기 세력’은 ‘배신자’들의 응징을 강하게 원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본 기자가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 다수에게 ‘문재인 전 대표 집권 저지’와 ‘바른정당 응징’ 중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를 물었을 때 응답은 예외 없이 문재인 전 대표의 집권 저지였다.

김 후보는 태극기 민심을 가장 잘 받들어 존중하고 있다. 그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지는 못했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의 대답 역시 ‘태극기 민심’과 대동소이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실제로 김 후보는 22일 오후 부산 KNN 스튜디오에서 열린 영남권 방송3사(KNN,TBC,UBC) TV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대선을 앞두고 바른정당과의 재합당에 대해 묻자 “바른정당과 재합당하더라도 김무성·유승민 의원과는 같이 갈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김 후보가 바른정당과의 연대 자체에 결사반대를 외쳤던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처럼 ‘범(凡) 보수 대통합’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자 일각에서는 경선 과정에서야 한국당 후보들이 바른정당과의 연대에 입장이 제각각이고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기도 하지만 경선이 끝난 후엔 1인 대선후보를 2~4위 후보가 공동선대위원장으로서 ‘지원 사격’ 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는 상황이다.

경선 승리가 유력시되는 홍 지사가 항소심 무죄 판결 직후 친박계를 향해 겨눴던 칼끝을 더는 겨누지 않는 모습도 이 같은 주장에 신빙성을 더한다. 한국당 내 친박계의 조직력이 월등하고 TK 지역의 지지를 받고 있는 친박계의 원조 없이는 정권 재창출은커녕 본인의 경선 승리도 장담할 수 없음을 그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동계’로까지 불리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한 강성 친박계를 두고도 홍 지사는 “인간적인 정리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표현했다. ‘독설가’로 알려진 홍 후보의 성격을 감안했을 때 이례적인 발언이다.

다만 ‘범(凡) 보수 대통합’을 통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이 9회 말 투아웃에서 역전 홈런을 친다 할지라도 ‘태극기 민심’이 ‘배신자’로 지목하고 있는 유승민 후보와 김무성 의원 등 탄핵 찬성 세력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단적인 예로 유승민 후보가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본인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 재출마했을 때 그가 당선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 후보가 국회에 다시 입성하는 것을 TK 그것도 대구 민심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편 지난 16일 대구 엑스코 325호실에서는 새누리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이날 창당대회를 주도한 친박단체와 ‘탄핵무효를 위한 국민저항운동본부’ 측은 대구를 시작으로 부산, 경남, 서울에 이어 인천과 경북이 각각 20일과 21일 창당대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창당대회에는 약 700여 명의 당원이 참석했다. 사회자는 대구시당에 등록된 당원이 1300여 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의 면모를 갖추어 가고 있다는 평가다.

이에 정치권은 만약 바른정당이 보수 본류인 한국당에 힘을 실어주고 새누리당이 ‘특공대’ 역할까지 해준다면, 대권 재수생 문재인 전 대표가 삼수를 준비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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