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찍히고 출국금지 당하고…글로벌 사업 차질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나라 밖에서는 보호주의·사드 보복, 안에선 출국금지·내수경기 냉풍이 분다. 기업들은 몸을 낮추고 위기 돌파에 골몰하고 있지만 해법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일부 총수들의 출국금지가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해외 바이어와의 거래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일부 총수들 사이에선 ‘이러려고 기업경영 하는게 아닌데’라는 푸념이 나온다. 검찰의 강압적인 수사에 대한 불만엔 괜한 불똥이 튈까 조심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檢, 최태원·신동빈 출금 30일 연장…끝없는 족쇄
“해제하라” 곳곳에서 원성…검찰 책임론 불거지기도

기업들에게 올해 상반기는 고난의 연속이다. 밖에서는 수출길 막히는 소리가, 안에서는 장사가 안 되는데 조사받으러 나오란 소리 들릴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고개를 살짝만 돌려도 잘못했다는 식으로 얻어맞는 형국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중앙지검장)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출국금지 기간을 30일 연장했다. 두 회장은 지난해 12월 중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이후 4개월째 국내에 발이 묶여 있다. 두 사람의 출국금지 해제는 지난 16일이었다.

박 특검은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출국금지하면서 최 회장과 신 회장을 출국금지 대상에 함께 올린 이후 출국금지 기간을 계속 연장해 왔다. 출국금지는 통상 1개월 단위로 내려지고, 필요 시 연장할 수 있다.

장기간 수사, 기업 곡소리로

재계는 즉각 기업 총수 출국금지를 해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검찰이 미르재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면서 기업 총수 출국금지 기간이 연장됐다. 대기업 오너들의 뇌물공여 의혹에 대해 좀 더 파헤치겠다는 검찰의 의지로 보인다.

문제는 검찰 수사 의지가 길어질수록 기업 입장에서는 곡소리로 이어진다. 실제 출국금지가 내려졌거나 구치소에 수감된 이재용·신동빈·최태원 회장 등은 한 해의 절반을 해외 현장을 누비며 각국 바이어와 만남을 갖고 사업을 이어가는 총수들이다. 그런 총수들이 해외에 나가지 못하고 검찰 수사로 발목이 잡히면서 오히려 기업경영은 물론 국내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포럼’에도 이들 총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 놓은 인맥들과의 연결고리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 예년에는 이 세 사람 포함 10여 명의 총수가 참석했지만 올해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만 참석 의사를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3년 이 포럼 이사에 선임된 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참석할 정도로 큰 관심을 보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2005년부터 해마다 참석했을만큼 국제 비지니스 의지를 보였다.

보아오 포럼만이 아니다. 요즘 국제 비즈니스 무대에서 한국 재계 리더들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애플의 팀 쿡과 알파벳(구글의 모기업)의 래리 페이지 등 세계적 IT 기업인을 불러 ‘테크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이 부회장은 초청을 받고도 특검의 출국금지 조치로 불참했다. 이 부회장은 매년 7월 미국에서 IT·미디어 분야 유력 인사 200여명이 모이는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작년까지 8년 연속 참석했으나, 올해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국이 5월 전 세계 정·재계 유력 인사들을 초청해 개최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국제포럼’에도 국내 기업인들이 얼마나 참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중국은 영국·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을 초청했으나, 한국에는 아직 초청장을 보내지 않았다.

이는 사드 보복으로 풀이된다. 사드 보복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롯데는 더욱 힘들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사업이 초토화되고 있는 실정이지만 정작 신동빈 회장은 현지 시찰조차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중국 고위층과의 친분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내에 발이 묶인 채 사드 보복 사태를 전해들을 수밖에 없다.

SK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일본 도시바의 반도체 사업부 매각 추진과정에서 주요 인수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중복수사와 조사 때문에 사실상 경영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이어 2위에 올라 있지만 낸드 부문만 떼어 놓고 보면 5위에 처져 있다. D램 부문과 비교해 낸드에서 열세인 셈이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에게 도시바 반도체 사업은 포기하기 쉽지 않은 매물이지만 25조 원에 달하는 인수가격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SK가 홍하이그룹과 연대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최 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출금 조치가 풀리지 않으면 해외 출장에 제약을 받으면서 인수전을 주도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죄 묻는 수사·솜방망이 처벌…질타로 이어질 수도

이 때문에 일각에선 검찰 책임론을 제기한다. 일부 총수에게 혐의가 있고 이를 입증할 증거가 있다고하면서도 결국 솜방망이 처벌로 마무리되는 것에 대한 불신이다.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는 검찰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총수 수사 초반에는 검찰이 강한 의지를 보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재벌 총수 망신주기로 끝나는 경우가 있다”며 “이럴 경우 검찰의 수사의지를 의심하게 된다. 무엇을 위해 기업인을 잡아두었는지 거꾸로 묻고 싶을때가 더러 있다”고 전했다. 검찰이 무턱대고 기소 또는 조사를 하지말고 정확한 근거로 총수들의 발목을 잡으라는 지적이다.

검찰이 잘못이 있는 총수에 대해 수사의 칼날을 치켜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죄를 묻기위한 검찰의 출국금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재계의 전반적인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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