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꼰대부터 강압적인 젊은 꼰대까지

.<일요서울 정대웅 기자>
권위 집착하는 2·30대 상사, ‘젊은 꼰대’ 신조어 탄생
호칭 파괴, 유대감 높일 수 있는 동아리 가입 유도 등 노력

 
[일요서울 | 남동희 기자] 기업 내 각종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일부 직장인들은 남모를 고충을 토로하기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내 근로자는 연간 평균 직장에서 2000시간을 넘게 보낸다.
 
국내 대기업의 직원 수가 적게는 300명부터 국내 최대기업인 삼성의 경우 25만여 명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많은 이들이 회사에서 일 년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시간을 보낸다.
 
일요서울은 기업 내부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건사고를 들여다봤다. 이번 호는 직장내 위계질서로 인한 해프닝을 다뤘다.
 
#1. 입사 2년 차인 직장인 권모씨(27)는 ‘예의·질서’를 중요시 여기는 부장 때문에 매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부장은 권 씨의 입사 첫날부터 “요새 젊은이들은 군기가 빠져서 예의도 없는데, 또 자유분방하다고 해서 창의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권 씨에게 업무보다 예의와 질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권 씨는 그 후 조금이라도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 않거나 부장이 원하는 대로 깍듯이 인사 하지 않으면 바로 옆 부서 장교 출신 신입사원과 비교 당했다.
 
권 씨의 아이디어로 업무 성과가 나도 부장의 반응은 무덤덤한 반면 ‘예의·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어김없이 부장의 고함을 듣는다. 권 씨는 하루에 몇 번이고 ‘여기는 군대가 아니라 회사지 않냐’며 부장에게 큰 소리 치고 싶지만 불이익을 당할까 봐 참고 있다.
 
#2. 이제 막 직장인이 된 김지혜(가명·26·女)씨는 최근 여성 상사의 ‘꼰대’ 성향 때문에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 중이다.
 
지혜 씨의 상사는 1989년 생이다. 이 상사는 본인보다 2살 어린 1991년 생 지혜 씨 앞에서 “앞에 9가 붙기 시작하면 협동심도 없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많이 하는 것 같다”라며 “윗분들도 90년대 생부터는 세대 차이가 나 불편해 한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리고 점심시간, 회식 때 젓가락을 놓거나 컵을 배치할 때도 직급 순서대로 놓지 않으면 ‘지혜 씨가 어려서 예의를 잘 모른다’ 등의 지적을 한다.
 
최근에는 회사에 치마를 입고 온 지혜 씨에게 “어려서 남자 직원들이 그런 차림을 불편해 하는 줄 모른다”며 “내 입사 초기 때는 꿈도 못 꿀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지혜 씨는 어렵게 들어온 직장에서 이 젊은 상사의 계속된 지적으로 근로 의욕이 떨어진다고 호소했다.
 
수직적 관계 계속될 수밖에 없어
 
직장 내 위계질서 중시 문화는 주로 일본 기업의 호봉제 임금체제에 기인한 부작용이었다. 국내에는 60~70년대부터 일본 기업 구조가 전파되며 자리 잡았고, 현 기성세대인 50~60세대까지 이어져왔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창의력·효율성 저하 등을 문제 삼으며 위계질서 문화를 개선해왔지만 아직 경직적인 곳도 있다.
 
시장조사전문기업 마크로밀 엠브레인이 지난해 말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위계질서와 직급체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절반이 넘는 직장인(57.2%)이 직장 내 위계질서가 존재하며 상사와 부하직원은 서로를 수직적 관계로 인식한다는 데 동의했다. 또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급제 폐지에 반대했으며 그 중 82%가 직급이 없어져도 또 다른 위계질서가 생겨날 것 이라는 데 동의했다.
 
최근에는 권위에 집착하는 기성세대의 부정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20~30대 직장인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젊은 꼰대’라 불리며, 관련 일화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20~30대이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예의범절 질서유지 등을 후배에게 강요하는 모습이다.
 
지난 13일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최근 회원 750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꼰대’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가 회사에 꼰대가 ‘있다’고 답했고 꼰대 직급으로는 ‘부장급’이 31% ‘과·차장급’이 24%로 바로 다음을 차지했다. 기업에서 과 차장급의 연령대가 평균 30대인 점을 감안하면 이 시대 젊은 꼰대 수가 상당한 셈이다.
 
그렇다면 각종 꼰대들이 중요시 여기는 직장 내 위계질서는 업무에 도움이 될까. 전문가들은 사내 엄격한 위계질서는 오히려 업무 효율을 떨어뜨린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직장 폭력으로 이어질 수도
 
미국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는 직장 내 위계질서는 직장인이 극도의 신체와 정신의 피로감으로 무기력해지는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의 원인 중 하나로 꼽았다. 또 이런 직장 내 위계질서는 언어적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16일 여성가족부의 조사에 따르면 위계질서가 있는 직장에서 직장 내 폭력을 경험한 비율이 ‘경험한 적 없다’의 대답보다 절반이 많았다. 또 위계질서가 엄격하다고 답한 응답자 중 ‘모욕감을 주는 폭언, 고함’ 등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여성 20.6%가 그렇다고 응답했고, 남성의 경우 11.5%가 경험했다고 답했다.
 
또 위계질서가 있는 직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 중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어, 시선, 신체접촉’과 관련된 항목에선 여성 12.4%가 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남성의 경우 2.7%가 그렇다고 답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위계질서가 강한 기업은 강압적인 분위기로 인해 사건사고가 많을 수 있다”며 “현재 많은 기업들이 위계질서 폐지를 위한 ‘사내 호칭 파괴’ 캠페인 등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호칭 파괴 같은 경우 도리어 업무에 혼선을 줄 수도 있어 고려하지 않는 기업들도 많다”며 “사내 동아리 및 동호회 가입을 적극 장려하는 것도 직원들 간 유대 관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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