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서는 진짜인데 물건은 가짜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미인도 등으로 ‘감정 논란’에 휩싸인 고미술계가 좀처럼 활기를 띠지 못하고 있다. 고미술계에서는 가짜가 진품으로 진품이 가짜로 둔갑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미인도를 둘러싸고 검찰은 진품이라 주장하고 프랑스 민간 감정기관은 가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누구 하나 한쪽 편을 들 수 없는 게 고미술계의 현실이다. 자연스레 고미술품을 둘러싼 소송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진짜로 둔갑한 가짜 고미술품을 소재로 한 드라마까지 나올까.
 
유통 과정·출처 등 불분명해 사기당하는 경우 많아
똑같은 물건에 감정가는 제각각 ‘믿을 수가 없다’ 

 
SBS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영애, 송승헌 주연의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는 안견의 금강산도가 등장한다. 유명 갤러리 대표와 한국 미술사 실세인 한 대학교수가 가짜 금강산도를 진품으로 속이는 내용이 나온다. 이들은 가짜 금강산도로 은행에서 거액의 대출을 받아 내고 국보로 지정받을 계획을 세운다. 가짜 금강산도에 대해 위작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고미술품인 만큼 이를 증명할 자료가 마땅치 않아 판세를 뒤집지 못한다. 드라마 속 이야기지만 이와 유사한 사건과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다.
 
고미술품은 많은데
가치 평가는 제 맘대로

 
지난해 5월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은 A씨도 고미술품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횡령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지만 자신도 잘못된 감정으로 인한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A씨는 B씨로부터 2011년 3월 23일부터 4월 17일까지 골동품 91점을 위탁판매 의뢰받았다. 하지만 위탁판매가 여의치 않아 같은 해 7월 13일부터 다음해인 2012년 2월 4일까지 B씨 소유의 골동품 중 11점을 제외한 80점을 모두 반환했다.

하지만 A씨는 B씨의 반환 요구에도 나머지 11점의 골동품을 돌려주지 않았다. B씨가 A씨에게 차용해 간 약 3억 7500만 원을 변제 받지 못해 담보로 갖고 있었다. 문제는 A씨가 이 물건을 B씨의 허락없이 다른 사람에게 담보로 제공하면서 발생했다. 법원은 이러한 A씨의 행위를 횡령으로 판단했다.

현재 A씨는 법원에 항소이유서를 제출하고 항고를 준비하고 있다. A씨 측은 B씨에게 대여해 준 돈을 변제받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골동품 11점을 B씨가 차용금을 갚기 전까지 담보로 갖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즉 A씨는 담보권자로서 자신의 담보권을 정당하게 실행한 것으로 이는 횡령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A씨가 B씨에게 위탁판매를 의뢰받은 골동품 91 점 중 대다수가 가짜였기 때문에 모두 돌려준다면 차용금을 모두 받지 못할 수도 있어 나머지 11점을 담보로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진품을 가짜로 만들어
사익 추구하기도


눈길을 끄는 것은 A씨가 B 씨에게 돌려주지 않았던 골동품 11점에 대한 감정가다. A씨의 항소이유서에는 B씨가 이 11점에 대한 가격을 35억 2300만 원이라고 주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A씨 측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감정가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최근에서야 고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매나 감정에 대한 관심이 커졌을 뿐 아직까지도 많은 고미술품들은 암암리에 거래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유통과정이나 출처 등이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자연스럽게 각종 사기행각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가장 흔한 사기 수법이 진품을 가짜로 판명하는 것이다. 헐값에 사들여 비싸게 팔아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많다. 또 거래처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 불법행위를 일삼기도 한다. 결국에는 고미술품 시장을 죽이는 일이지만 돈 앞에서는 양심을 파는 사람도 많다.

A씨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황당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B 씨에게 위탁판매 의뢰를 받았던 고미술품 중 한 개를 지인을 통해 감정사 C씨에게 보이고 감정을 부탁했다. 하지만 C씨는 황당하게도 감정한 고미술품이 가짜라며 기존 감정가의 1/10 가격으로 매입을 권했다고 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기존 감정가를 책정하고 감정서를 써준 사람도 바로 C씨였다는 점이다. A씨는 “감정서는 진품인데 골동품들은 가짜”라며 허탈해 했다. 고미술계에 이런 황당한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120억대 경매품도
가짜 판명

 
비단 고미술품계에만 감정 논란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미인도 논란이 거선 미술계에도 가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천경자 화백의 유족은 지난 1월 24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린 검찰의 결정에 불복해 서울중앙지검에 항고장을 제출했다.

당시 유족 측 대변인인 배금자 변호사는 “검찰의 ‘미인도’ 판정은 비과학적”이라며 “허위 문서를 통해 사자에 대한 명예 훼손을 했다”라고 주장하며 이같이 밝혔다.

배 변호사는 “검찰이 객관적인 증거에 대해 제대로 된 반박을 내놓지 못하고, 오히려 통계를 조작했다”며 “가장 신빙성이 있는 작가 본인의 말도 믿지 않고, 예전처럼 똑같이 화랑협회 관계자들 진술만 믿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천경자 화백 외에도 현대 미술의 거장 이우환(81) 화백 작품도 위작 논란에 휩싸이긴 마찬가지다. 화가 본인이 문제가 된 작품들에 대해 “모두 내가 그린 진품”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위작으로 판명해 위작을 그린 화가 등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해외도 가짜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영국의 경매회사 소더비는 16세기 네덜란드 거장 화가 프란스 할스의 ‘미지의 남자’를 조사한 결과 위작으로 드러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작품은 5년 전인 2011년 소더비 경매에서 850만 파운드(약 120억원)로 경매된 바 있다. 소더비는 이 작품을 구매한 고객에게 변상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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