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도 사회도 보호 못하는 그들 ‘우리가 지키자’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지난 18일 오전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 안과 밖은 연기가 자욱했고 아기를 안은 주민까지 황급히 건물 밖으로 빠져 나오던 상황. 당시 아파트 내부는 전기가 나가고 방송 시설도 기능하지 않아 대피 사실조차 알릴 수 없었다. 평소 심장 질환을 앓던 아파트 경비원 A(60)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15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민들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A씨의 대피 유도로 주민들은 건물을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A씨는 갑작스러운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의식을 잃었고 한 주민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지고 말았다. A씨의 마지막 길은 아파트 주민들의 애도 물결로 쓸쓸하지 않았다. 시민들도 그를 ‘의인’으로 부르며 추모했다. 경비원이었던 A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열악한 환경에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들이 재조명 되고 있다.

300세대 이하 소규모 아파트 경비원들, 법적 사각지대 놓여 있다
경비원 인권 실태… 경비원 29.7% 입주민에게 ‘부당한 대우’ 받아


아파트 화재 당시 지하 1층 기계실에서 시작된 화재는 삽시간에 아파트 전체로 번졌다. 토요일 아침이다 보니 아직 일어나지 않은 주민도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15층 높이의 아파트 계단을 일일이 오르내리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고 결국 62명의 주민을 모두 대피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목숨을 지키지 못했다.

A씨는 평소에도 성실한 태도로 주민들과 신뢰를 쌓았다고 한다. 또 밤샘 근무를 이어가며 월 120만 원이라는 빠듯한 월급을 받고 세 식구를 책임져 왔다. 그의 마지막 소식을 접한 아파트 주민 100여 명은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A씨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아파트 주민들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빈소에 찾아오지 못한 동 주민들은 대표를 통해 조의금과 함께 애도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그가 1년여 동안 지키던 경비실에는 그를 추모하는 헌화와 손편지가 가득했다. 한 편에 있는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들의 영웅이세요. 몇 년이 지나도 아저씨 꼭 기억할게요”라는 메모가 눈에 띄었다.
 
인격적인 대우
꿈도 못 꾸는 경비원들

 
우리 곁에는 아직도 많은 아파트 경비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하며 비인격적 대우를 받고 있다. 입주민들에게 비인격적 대우를 받거나 열악한 환경 속에 시달려도 호소할 곳이 없다.

특히 300세대 이하 소규모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은 근무환경, 대우 등이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300세대 이상 아파트 경비원들은 인권과 처우개선 등을 보장 받고 있지만 소규모 아파트 경비원들은 법망 관리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2015년 홍익사회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300세대 미만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경비원들의 평균 휴게시간은 1일 4.92시간(종일 근무 기준)으로 300세대 이상 아파트 경비원 7.21시간보다 적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소규모 아파트 경비원 10명 중 3명~4명은 근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일하고 있으며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4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300세대 이상 아파트 경비원의 근로계약서 작성 비율이 98%, 4대 보험 가입률이 90%인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다.

지난 1월 11일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가 광주지역 아파트 경비원 212명을 대상으로 노동조건과 인권 현황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9.7%가 입주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입주민과 갈등을 겪는 원인은 주차관리 33.8%, 택배관리 27%, 음주 폭언 15.3%, 청소 10.4 %, 아이들 소음문제 7.7% 입주민 대표 폭언 4.5%순이었다.

이 같이 부당한 대우를 받은 횟수는 월 5회 미만이 68%로 가장 많았고, 월 15회 이상이 7%인 것으로 드러났다. 부당한 대우에 대처하는 방법으로는 ‘참는다’가 9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B씨는 “자식들을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나니 임금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게 됐다. 하지만 자식뻘되는 사람들이 입주민이라며 사소한 일에도 삿대질과 욕설을 할 때 ‘나도 한 가정의 가장인데’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며 “일이기도 하지만 입주민들을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근무하는 경비원들에게 최소한의 인권은 지켜줘야 된다는 생각이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노쇠한 몸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심적으로 힘들다”고 심경을 밝혔다.

B씨와 다른 아파트에서 일하는 경비원 C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그는 “처음 경비원을 시작했을 때는 한 살이라도 젊다 보니 의욕을 가지고 입주민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성실히 일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할수록 나에게 돌아온 것은 불평, 불만들이었다”며 “100개 중 1개만 잘못해도 물어뜯는 사람이 입주민 대표들이다. 겨울이면 경비 초소가 너무 추워 개인 난방 기구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난로를 켜놓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입주민 대표가 와 ‘초소를 다 태울 셈이냐’며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다. 해명을 해봤지만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고 하소연했다.

이외에 경비원들은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근무시간에 비해 적은 임금’을 손꼽기도 했다. 경비원을 경시하는 풍토 등 인식부터가 문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격적인 대우를 바라는 건 꿈도 못 꾼다. 폭력·폭언에 시달리는 그들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입주자대표회의 갈등으로
임금 못 받기도

 
앞서 밝힌 연구결과에서 경비원 평균 임금을 아파트 세대 규모로 구분하면 300세대 미만은 약 132만 원, 500세대 미만은 약 146만 원, 1000세대 미만은 약 145만 원, 1000세대 이상은 약 146만 원으로 밝혀졌다.

사고로 숨진 A씨는 약 120만 원가량의 임금을 받으며 근무해온 점을 봤을 때 광주 경비원들의 평균 임금에도 못 미친 것이다.

최근에는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들이 단체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생겨났다. 3000세대가 넘는 입주민이 사는 대규모 아파트에서 근무하는 80여 명의 경비원들이 한 달치 급여를 못 받고 있다. 당시 주민들은 ‘우리들이 내는 관리비는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이냐’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원인은 입주자대표회의 구성과 관리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입주자대표회의 인감도장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결국 인건비, 용역비, 공사대금 등을 지출하지 못해 아파트 경비원들과 청소 용역원, 관리사무소 직원들의 급여가 체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최저임금을 받는 경비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생계 위협으로 무작정 기다릴 수 없는 형편이므로 주민들이 나서서 해결 해 달라”고 호소문을 아파트단지에 붙이며 사정을 호소한 바 있다.

결국 성남시는 지난 22일 “소송 중에 운영 공백이 발생해 사회적 약자인 경비원 등의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며 “조속히 직무대행자를 선임해 인건비 지급 등이 정상화되게 해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감정노동, 낮은 임금, 임금체불까지 겪고 있지만 하소연 할 곳 없는 아파트 경비원들의 상황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경비원 C씨는 “관리비 증가 등을 내세워 입주민들의 불만만 더욱 늘릴 것이 아니라 지자체 측에서 심층적 회의를 거쳐 아파트 경비원들의 대우나 근무환경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방안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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