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수가 거짓 소문 퍼뜨리고 제자는 거짓 대자보로 알리고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성추행 누명의 충격으로 죽음을 선택한 젊은 대학 교수의 억울함이 진실규명을 포기하지 않은 유족과 경찰의 수사, 대학 당국의 진상조사로 8개월여 만에 밝혀졌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허위 내용을 유포한 혐의(명예훼손)로 부산 D 대학교 퇴학생 A(25) 씨를 기소의견으로 지난해 12월 검찰에 송치했다. A 씨는 지난해 5월 19일 대학 미술학과 S 교수가 성추행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허위 대자보를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과 D 대학교· 유족 측에 따르면, S 교수는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성추행 의혹이 대자보를 통해 학내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알려지면서 몹시 괴로워했다.
 
 
지난해 6월 7일 10시쯤 D 대학교 S 교수는 부산 자신의 아파트 9층에서 투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으로 촉망받던 조각가였던 S 교수는 부산시립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고, 2015년 부산바다미술제에서 관람객에게 큰 호응을 얻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S 교수는 지난해 3월 31일부터 1박2일간 경북 경주에서 열린 야외스케치 수업 뒤풀이에서 교수와 시간강사가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내용이 담긴 대자보가 학내에 붙으며 성추행 의혹에 시달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야외 스케치 이후 여학생을 성추행한 B 강사는 논란이 불거지자 스스로 학교를 그만뒀다.

S 교수는 술자리에 동석한 다른 교수가 당시 야외스케치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과 함께 ‘S 교수는 성추행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을 담은 진술서를 쓰면서 혐의를 벗는 듯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5월에 ‘성추행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실명과 사진을 공개하겠다’는 대자보가 붙고 성추행 교수로 사실상 자신이 지목된 데 대해 억울함을 토로해 왔다는 것이 주변 전언이다. S 교수는 학생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기 힘들 정도로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유족들은 S 교수의 억울함을 규명해 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조사에 나선 경찰은 문제의 대자보를 붙인 사람이 S 교수가 재직하는 학과의 4학년 학생 A(25) 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성추행 가해자 다른 교수로 밝혀져
 
S 교수의 죽음으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였던 이번 사건은 지난해 8월 1일 한석정 신임 총장이 취임한 뒤 시작된 D 대학교의 자체 조사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대자보는 사실상 가해자로 S 교수를 지목하고 있었지만, 정작 피해 여학생을 성추행한 교수는 S 교수가 아닌 같은 학교 동료 교수인 C 교수로 밝혀졌다.

S 교수가 죽음으로 내몰리는 고통을 겪는 사이, C 교수는 성추행을 저지른 피해 여학생에게 접근해 성추행이 없었다는 다짐을 받는 등 진실을 은폐하고 있었다.

C 교수의 보복이 두려워 말을 아끼던 피해 여학생이 지난해 10월 학교 측에 C 교수의 성추행 사실을 알리면서 진실이 드디어 드러나기 시작했다.

D 대학교 측은 C 교수가 피해 여학생을 입막음하고, 자신의 성추행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S 교수가 성추행한 것처럼 거짓 소문을 퍼뜨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C 교수는 고참 교수의 정년퇴임으로 자리가 비는 정교수 자리에 S 교수를 배제하고 자신의 후배를 앉히려 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C 교수는 2009년에도 성희롱 혐의로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당시 C 교수는 여학생을 성희롱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D 대학교는 C 교수에게 경고 처분을 하는 데 그쳤다. C 교수는 또 피해 학생이 나서지 않아 검찰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D 대학교의 한 재학생은 “당시 강력하게 징계를 하지 않아 제2의 성범죄가 발생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D 대학교는 지난 3일 C 교수를 파면했다.

그러나 C 교수는 “D 대학교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내가 성추행했다는 진술을 피해 학생에게 강요했다. 나의 해명은 받아들이지 않고 일방적으로 감사 결과를 내놓았다”고 주장하며 파면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D 대학교는 C 교수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특별조사본부를 이끌었던 손 감사실장은 “감사는 아무런 절차상 문제없이 진행됐다. C 교수가 작성한 진술서 등 근거자료도 확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D 대학교 측은 B 강사에 대해서는 학교를 이미 그만둔 상태여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찰과 학교 측은 A 씨가 거짓 대자보를 쓰는 과정에서 또 다른 동료 교수가 관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A 씨는 경찰조사에서 “미술학과 D 교수가 ‘S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학생회장인 제가 밝혀야 한다’며 ‘성추행 경위를 파악하라’고 지시해서 대자보를 붙였다”고 진술했다.

당시 D 교수는 시간강사를 성추행했다는 투서가 총장 비서실에 접수돼 내부감사를 받던 중이었다.

학교 측은 D 교수가 자신의 투서 내용을 덮기 위해 S 교수의 성추행 의혹으로 관심을 돌리려고 A 씨에게 S 교수의 소문을 공론화할 것을 종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D 대학교는 지난달 졸업을 앞둔 A 씨를 퇴학 처분하는 한편, D 교수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S 교수의 유족은 “C 교수는 야외 스케치 뒤풀이 때 술에 취해 정신이 없었던 아들의 약점을 잡아 제자들과 짜고 성추행을 자백하라고 경위서를 강요하거나 학교를 그만두라고 협박했다”며 “D 교수는 정작 아들과 함께 야외 스케치를 가지도 않았던 A 학생에게 대자보를 쓰지 않으면 대학원에 진학 못 한다고 협박해 강제로 거짓 대자보를 쓰게 했다”고 말했다.

유족은 “아들이 C 교수 등에게 너무 시달려 학교를 그만두려 했으나 지도교수가 말려 그러지도 못했다”며 “아들은 학과 내 파벌싸움의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죽기 전까지 더러운 교수 사회에서 얼마나 치욕스런 나날을 보냈는지, 마음이 너무 쓰라리다”며 “진실을 밝혀내는 8개월 넘는 동안 말로 하기 힘든 고통이 따랐지만, 이젠 아들이 하늘에서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피해 여학생이 실상 밝혀
 
지난해 경찰은 대자보 작성자가 S 교수를 가해 교수인 것처럼 작성한 것에 대해서는 명예훼손 혐의로 입건 조치하기는 했지만 대자보에서 제기됐던 성추행 사건 자체는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피해 여학생들을 찾지 못해서인데 이번 D 대학교 자체조사에서는 S 교수 유족의 도움으로 8개월 만에 피해 학생이 나서면서 경찰이 수사를 진행할 단서를 얻게 됐다.

B 강사와 C 교수로부터 피해를 본 여대생은 기존에는 같은 인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각각 다른 2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별도로 억울한 누명을 쓴 S 교수는 다른 E 여학생에 대해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었다. 지난번 경찰 수사 결과에서는 동료 교수의 종용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한 학생이 대자보 등을 통해 S 교수가 속옷과 엉덩이를 더듬었다고 대자보를 통해 주장했고, 이에 학교생활이 힘들어질 것이라고 판단한 S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러나 대학 조사 결과 E 여학생은 단순히 술에 취한 S 교수를 숙소로 부축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E 여학생은 유족에게 “존경하던 교수님이었고, 전혀 성추행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B 강사와 C 교수의 성추행 사실은 학교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은 데 비해 S 교수만 안타까운 죽음에 이른 것이다.

경찰은 대학 측으로부터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직접적인 수사 의뢰가 없었지만, 의혹이 제기된 만큼 사실관계를 확인해 가해자를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경찰은 앞서 대학 측이 자체 조사한 감사 자료를 토대로 진상을 파악한 뒤 피해자 조사를 거쳐 성추행 연루자들을 소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D 대학교 측은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피해 학생이 말 못할 심적 고통을 겪었다. 경찰에 고발하면 재차 끔찍했던 성추행 상황을 진술해야 하기 때문에 그동안 수사 의뢰를 하지 않은 것이다”고 해명하며 “피해 학생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또다시 상처받지 않도록 최대한 돕겠다”고 말했다.

한편, D 대학교와 유족 측에 따르면, 故 S 교수 추모 전시회가 오는 5월 29일부터 6월 15일까지 D 대학교 부민캠퍼스 석당미술관에서 열린다.

S 교수의 유족과 동료들이 주축이 돼 이번 추모전을 마련했다.

전시회에는 개가 소변을 보고 있는 장면을 재미있게 표현한 ‘배변의 기술’ 등 S 교수가 남긴 100여 개의 작품 가운데 70여 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S 교수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2007년부터 숨진 지난해까지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D 대학교 관계자는 “S 교수의 넋을 위로하고 유족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추모 전시회를 열게 됐다”며 “S 교수를 좋아했던 사람,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그를 떠올릴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