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출마냐? 킹 메이커냐? 정중동 행보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홍석현 중앙일보·JTBC 회장이 지난 18일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대선 출마설이 나돌던 만큼 정치권은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홍 회장이 사퇴의 변을 통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로 결심했다”고 밝히면서 직간접적으로 대선에 영향을 끼칠 뜻을 보인 만큼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권 교체 후 차기 정권서 국무총리·서울시장 노린다?
정치권, 킹이든 킹 메이커든 상당한 영향력·폭발력 전망

 
홍석현 회장의 사퇴는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사내 직원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18일 중앙미디어네트워크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국가의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려 하는 지금, 저 역시 제가 지켜왔던 자리에서 벗어나 보다 홀가분한 처지에서 마음으로 저 자신과 우리 중앙미디어 그룹의 미래를 통찰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개월,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서 저는 많은 생각을 했다”며 “광화문광장의 꺼지지 않는 촛불과 서울광장에 나부끼는 태극기를 보며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깊은 고뇌에 잠기기도 했다”고 밝혔다.

홍 회장은 “우리 사회는 오랜 터널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과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며 “우리는 상생과 공멸의 갈림길, 그 기로에 서 있고 그런 상황에 저는 안타까움을 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저는 남북관계, 일자리, 사회통합, 교육, 문화 등 대한민국이 새롭게 거듭나는 데 필요한 시대적 과제들에 대한 답을 찾고 함께 풀어갈 것”이라며 “그러한 작업들은 명망 있는 전문가들에 의해 재단과 포럼의 형태로 진행될 것이며 그렇게 중지를 모아 나온 해법들이 실제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고 설명했다.

사실 사내에서 ‘홍 회장 대선출마’는 금기어였다.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대선 출마설을 제기했어도 직원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 홍 회장의 사퇴는 그야말로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계속된 대선 출마설
공식 언급 자제

 
홍석현 회장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말부터 불거져 나왔다. 지난해 9월 조한규 전 세계일보 사장이 ‘제3의 개국’이라는 책을 내자 이러한 소문이 더해졌다. ‘제3의 개국’은 우리나라가 처한 작금의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다음 대권 주자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인 조 전 사장은 20년 경력의 정치부 기자로 취재를 통해 얻게 된 사실에 입각해 이 책을 집필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가 지목한 인물이 바로 홍석현 회장이다.

저자인 조한규 전 사장은 책을 통해 홍석현 회장은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고 수준의 자유와 개방을 통해 세계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것을 ‘제3의 개국’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후 JTBC가 탄핵 정국을 맞아 최순실·고영태의 태블릿PC를 보도하면서 승승장구하자 출마설이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있었다. 일부 정치인들은 홍 회장의 대선 출마를 위한 기획이라고까지 부연했을 정도다. JTBC를 성공적으로 안착시키고 그 인지도와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대권을 노린다는 시나리오였다.

홍 회장은 대선 출마설을 계속 부정해 왔지만 그의 행보는 여느 당의 대선 후보 행보와 다를 바가 없었다. 홍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 직후인 지난해 말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올 초부터는 국가개혁을 내걸며 중앙일보와 jtbc를 통해 ‘리셋코리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리셋코리아에 참여하는 인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규모 싱크탱크를 꾸린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예비후보 못지않을 정도다.

‘리셋코리아’는 일명 국가개혁 프로젝트다. 정치·외교안보·경제·교육·보건복지 등 12개 분과로 나뉘어 다양한 회의와 토론을 거쳐 다양한 정책들을 도출해 낸다.

각 분과 위원장으로는 장훈 중앙대 교수, 김의영 서울대 교수, 장승조 전 합참의장,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 김병연 서울대 교수, 김현종 전 통상교섭본부장, 이종화 고려대 교수,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태유 서울대 교수,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송인한 연세대 교수, 주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종인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진보·보수를 아우르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대선 출마설
위험 부담 크다

 
홍석현 회장의 대선 출마 또는 킹 메이커 가능성은 높지만 그만큼 위험 부담도 크다.
그는 삼성가의 사돈이다. 과거와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중앙일보도 삼성과 뗄 수 없는 사이다. 게다가 조카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에 연루돼 구속됐다. 남매지간인 이건희 삼성회장 부인 홍라희 씨도 삼성미술관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선에 출마한다면 재벌개혁 등을 이유로 경쟁자들의 매서운 공격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과연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대선에 도전할까.

이런 이유로 홍 회장은 대선 출마보다 킹메이커로 나설 확률이 높다는 전망이 많다. 5월 9일 대선까지 두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눈 앞의 목표를 이루기보다는 대선 이후 나아가 정권 교체 이후를 바라보는 게 현실적이다. 국무총리설, 서울시장설이 나오는 이유기도 하다.
 
각 정당들 모두 환영
차기 정부 요직설

 
홍 회장이 킹메이커로 나선다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을 확률이 높다. 가장 친분이 있는 곳은 더불어민주당이다. 일단 홍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 주미대사를 지낸 인연이 있다. UN 사무총장까지 노렸던 만큼 친한 인사들도 많다. 또 전문성을 가진 외교 안보 분야에서 활약할 수도 있다. 홍 회장은 외교는 물론 통일 등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만큼 홍 회장이 민주당에서 활동한다면 당 경선 과정에서 내분으로 갈라진 당을 재정비하고 중도 지지층을 흡수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특정 후보를 도운 뒤 차기 정부에서 요직에 오를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당 행보도 무리는 아니다. 일단 지역적 인연이 있다. 홍 회장 모친인 고 김윤남 씨의 출생지가 전남 목포다. 홍 회장은 원불교 신자인데 원불교 역시 호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종교인 만큼 국민의당으로 갈 경우 큰 힘이 될 전망이다. ‘호남당’ 이라고 불릴 만큼 호남 지역 특생이 강한 국민의당 입장에선 홍 회장 영입은 고무적인 인사다.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지기는 했지만 제3지대로 향할 가능성도 있다. 자유한국당 비박 주자인 홍준표 경남지사,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등을 두루 접촉해 비문 인사를 하나로 규합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좀더 적극적인 킹 메이커 역할을 하게 된다. 중도와 보수를 통합할 수 있는 조력자로 이미지 메이킹을 할 수도 있다.

홍 회장은 아직 대선 출마 선언이나 킹 메이커 자임 등 회장직 사퇴 후 자신이 펼칠 구체적인 진로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밝힌 만큼, 이번 대선에서 모종의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각 정당 대선 후보들은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그런 가운데 홍석현 회장의 사퇴는 정치권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그만큼 그가 갖는 중량감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사퇴 일주일이 지나도록 홍 회장은 뚜렷한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김대중 정부에서 세대교체 필요성이 있어 홍 전 회장을 국무총리로 강하게 검토한 바 있다. 대통령 후보로도 검토했다”면서 “킹이 되든 킹 메이커가 되든 상당한 영향력과 폭발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주의 대권설에
JTBC 배수의진
 
여의도에서는 홍석현 회장 사퇴 배경에 JTBC가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미 최순실·고영태의 태블릿PC 보도를 기획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만큼 중앙일보와 JTBC의 총 책임자였던 홍 회장의 정치권 진출은 그동안 쌓아 놓은 두 언론의 명예에 타격을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 회장이 사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자칫 자신의 야망으로 인해 중앙일보·JTBC 관계자들이 오명을 안을 수 있는 만큼 배려를 한 선택이라는 의미다.

실제 20일 오전 방송된 tbs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김어준은 홍석현 전 회장의 사임 소식에 대해 “만약 대선에 출마하면 최대 피해자는 손석희”라고 말했다. 또 “손석희에게는 정치적 날벼락이라고 본다. 그동안의 보도가 홍석현 정치를 돕기 위한 것이었냐는 프레임에 강제 입장 당하는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손석희 앵커는 이날 ‘JTBC 뉴스룸’에서 의미심장한 앵커멘트를 공개했다.

손 앵커는 홍 회장의 대선 출마설과 관련해 “지난 주말부터 JTBC가 본의 아니게 입길에 오르내렸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저희가 그동안 가장 견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던 저희의 진심이 오해, 폄훼되기도 한다는 것”이라며 “저희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명확하다. 저희는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어도 모두가 동의하는 교과서 그대로의 저널리즘은 옳은 것이며 그런 저널리즘은 특정인이나 특정집단을 위해 공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손 앵커는 “JTBC 구성원 누구든 저희들 나름의 자긍심이 있다면 그 어떤 반작용을 감수하고도 저희가 추구하는 저널리즘을 지키려 애써왔다. 그리고 저는 비록 능력은 충분치 않더라도 저는 그 실천의 최종 책임자 중 하나이며 책임을 질 수 없게 된다면 저로서는 책임자로서의 존재 이유를 찾기 힘들 것”이라며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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