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해림 선수
-KLPGA, CLPGA 요청으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합류했지만 뒤통수 맞았다
-전인지 메인 스폰서 계약, 中기업이 무산…스포츠 교류 행사도 일방적 취소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비롯해 주요 골프 투어가 시즌을 시작한 가운데 한국여자선수들이 맹타를 날리며 일찌감치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 부상으로 등락폭이 컸던 박인비가 건재함을 과시하며 벌써 1승을 챙겼고 지난 시즌 KLPGA 상금왕인 박성현까지 LPGA 투어에 가세해 한국선수들의 가파른 상승세가 예고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9일 중국에서 열린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중국이 사드 보복을 노골적으로 가하며 치졸한 모습으로 일관해 골프관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 중국 발 악재에 스포츠계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최근 중국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대한 노골적 항의를 이어오는 가운데 정치적 갈등이 스포츠계로 불똥이 튀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김해림은 지난 19일 중국 하이난 하이커우 미션 힐스 골프장 블랙스톤 코스(파73·6362야드)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SGF67 월드 레이디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연장 접전 끝에 배선우를 따돌리고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로써 시즌 첫 승을 챙긴 김해림은 1억5000만 원의 상금을 챙기며 우승을 만끽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발생했다. 당시 중계 영상 제작을 맡은 중국 CCTV5+는 우승을 차지한 김해림의 모습을 제대로 송출하지 않은 데 이어 마지막 라운드 중계영상에서도 김해림을 멀찌감치 잡거나 뒷모습만 보이게 하는 등 TV를 통해 관람하던 시청자들의 공분을 샀다.

특히 이들은 김해림의 모자 정면에 새겨져 있는 메인 스폰서 롯데 로고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비정상적인 중계로 일관했다. 이뿐만 아니라 CCTV 측은 시상식 중계도 건너뛰면서 빈축을 샀다.

노골적 사드 보복
손 쓸 틈 없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위에 대해 마땅히 손 쓸 방법이 없어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앞으로 KLPGA 투어 2개 대회가 중국에서 열리기로 해 여전히 해법이 필요하다.

당초 이번 대회를 앞두고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최근 중국 내 ‘반한감정’이 도를 넘어 혹시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이를 걱정해 KLPGA는 중국여자프로골프협회(CLPGA)에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CLPGA 측은 “정치는 정치고 스포츠는 스포츠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답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염려한 부분들이 현실화되면서 양국의 갈등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세계적 골프 투어로 손꼽히는 KLPGA 투어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특히 이번 대회는 원래 CLPGA와 유럽여자프로골프(LET) 투어 공동 주관 대회로 개최되다가 지난해부터 CLPGA의 요청으로 KLPGA가 합류했다.

하지만 KLPGA투어 선수들은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더욱이 실력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선수들의 참가는 재능기부에 가깝다. 중국 프로골프의 수준은 우리나라 3부 투어에 불과하다. 결국 KLPGA도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과의 교류 측면에서 함께 추진해온 사업들에 대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흘러나온다.

이번 대회 우승자인 김해림은 한국으로 돌아와 지난 21일 자신의 SNS를 통해  “#하이커우에서 우승 먹었습니다. 비록 얼굴 없는 플레이어였지만, #햄볶아요”라고 올려 중국의 비상식적인 행동에 대해 꼬집었다. 김해림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오히려 더 유명세를 타며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그냥 우승했던 때보다 더 많이 주목을 받았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도 우승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것도 기분이 좋다”며 소감을 남긴 바 있다.

다만 김해림은 2018년 대회에 디펜딩 챔피언으로 참가하게 되는 가운데 한·중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김해림은 시상식 때 “정치는 잘 모르지만 한·중 교류가 활발하게 되살아나길 바란다”라고 말해 현지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전인지 선수
중국의 분탕질
체육계 곳곳 불똥

이처럼 중국의 몰지각한 행보가 이어지면서 스포츠 교류마저 경직돼 사방으로 불통이 튀고 있다. 우선 ‘한중투어 7년 만의 부활’을 기치로 추진됐던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이 2018년 시즌으로 잠정 연기됐다.

지난 21일 한국프로골프협회(KPGA)에 따르면 오는 6월 중순에 열릴 예정이던 한중투어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이 중국 측의 요청을 연기됐다.

지난해 중순부터 대회개최를 주진해 왔던 한중투어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은 양국 협회 및 스폰서의 합의를 통해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격년제로 열기로 했었다. 그 첫 대회가 오는 6월 15일부터 나흘간 경기도 용인시 소재 레이크사이드CC에서 156명의 양국 프로들이 출전해 총 상금 8억 원을 걸고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합의했던 중국골프협회(CGA)가 개최 확정 발표만을 남겨놓고 일방적으로 연기해 향후 한중투어 개최는 다음 시즌 개최조차 기약하기 힘들게 됐다.

또 지난 20일 끝난 LPGA투어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공동 준우승을 차지한 전인지는 성공적인 LPGA투어 2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그는 실력과 함께 빼어난 외모로도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하이트진로그룹과의 후원 계약 종료 후 아직 메인 스폰서를 찾기 못해 업계 관계자들의 의문을 사고 있다.

특히 외모로 인해 한동안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지 못했던 박인비나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에서 세 차례나 상금왕에 올랐던 안선주처럼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올 시즌 모자에 아무런 후원사 마크를 달지 못한 채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전인지는 중국 기업 두 곳으로부터 깜짝 놀랄 매머드급 계약을 제안 받았다. 하지만 성사 직전에 사드 문제가 불거지면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일본 굴지의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불편한 한일관계를 고려해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전인지는 이 같은 위기를 든든한 서브 스폰서 계약으로 채우고 있다.

전인지는 현재 LG전자, 태그 호이어, 나이키, SAP, 스릭슨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서브 스폰서 계약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는 메인 스폰서가 없다는 건 중장기적으로 선수생활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더욱이 중국 기업의 일방적인 취소로 인해 안정적인 선수 생활을 기대했던 전인지로서는 아쉬울 뿐이다.

이 때문에 전인지 측은 메인 스폰서 계약에 신중을 기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인지 소속사인 브라이트 퓨처의 박원 대표는 “전인지가 선수생활을 마칠 때까지 지속적으로 후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파트너를 원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골프계가 중국 발 사드 보복에 피해를 입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치졸한 행태가 지속될 것으로 보여 체육계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주요 체육행사를 훼방놓은 듯한 인상을 남기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19일부터 대구에서 열리고 있는 ‘2017 대구세계마스터즈 실내육상경기대회’는 총 75개국 4000여 명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고 있지만 외국인 선수단 중 가장 큰 규모인 중국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흥행 실패로 피해를 겪고 있다.

또 오는 4월 열릴 예정인 프로배구 한중 클럽 대항전도 중국 팀이 출전하지 않기로 해 대회 무산 위기에 놓였다.

여기에 지난 23일 중국 창사의 허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6차전에서 중국 홈 팬들은 한국의 애국가가 연주되고 대형 태극기가 한국 응원단 쪽에서 펴질 때 야유를 보내는가 하면 한국 응원단의 응원 구호를 자신들의 응원으로 뒤덮는 인해전술을 펼치며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등 각종 스포츠 행사에서 악영향을 끼치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관계자들은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2017 대구세계마스터즈 실내육상대회장
  여자골프 신구 조화로
정상 탈환

한편 중국의 농간에 한국 골프계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이에 요동치지 않고 한국 선수들은 실력으로 맞대응하며 세계 무대 평정에 나서고 있다. 대표 여자골프 투어인 LPGA의 경우 올 시즌 한국인 선수들은 ‘신구 조화’를 앞세워 역대 시즌 최다승을 노리고 있다.

한국 선수들은 2015년 역대 최다승인 15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 대표 주자인 박인비가 부상으로 개점휴업에 들어가며 9승에 머물렀다. 하지만 올 시즌 초반부터 한국 선수들의 기세는 뜨겁다. 이미 열린 5개 대회에서 3승을 챙기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

먼저 골프여제 박인비의 복귀가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인비는 지난해 8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이후 왼쪽 손가락 치료에 매달려 왔다.
박인비 선수

지난 2월 복귀한 그는 LPGA 두 번째 대회인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정상에 오르며 부활을 알렸다. 특히 특유의 ‘컴퓨터 퍼팅’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난해 KLPGA투어에서 7승을 올리며 대세로 자리 잡은 박성현은 올 시즌 LPGA에 데뷔 했다. 미국 골프채널은 박성현에 대해 ‘2017년에 주목할 만한 남녀 골프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선정할 정도로 현지 관심도 뜨겁다. 박성현은 이 같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이미 세계 랭킹 12위에 이름을 올리며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 신인왕과 베어트로피(최저타수상)까지 거머쥔 전인지는 시즌 첫 출전 대회인 혼다 타일랜드 대회에서 공동 4위로 마쳤고 최근 열린 뱅크 오브 호프 파운더스컵에서 공동 준우승을 기록하며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 지난해 12월 KLPGA투어 2017시즌 개막전인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서 우승한 김효주를 비롯해 최나연, 장하나, 김세영, 유소연 등도 승수 쌓기에 나섰다. 여기에 올 시즌 초반 1승을 이미 챙긴 양희영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한국인 선수들의 분발이 이어지면서 이미 LPGA는 아시아선수투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3일 기준 여자골프 세계랭킹을 살펴보면 1위부터 10위중 아시아 선수들은 무려 9명에 달한다.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2위 레이야 쭈타누깐(태국), 2위 전인지, 4위 펑샨샨(중국), 5위 유소현, 장하나(6위), 박인비(7위), 양희영(8위), 렉시 톰슨(9위·미국), 김세영(10위)이 이름을 올렸다. 더욱이 한국은 약 60%를 차지하며 골프 강국임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골프계에서는 1위~10위까지 아시아 선수들로 다 채워질지를 두고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유일한 미국 선수인 톰슨은 시즌을 시작하면서 점점 하락세를 그리고 있어 ‘슈퍼루키’ 박성현이 치고 올라올 경우 ‘톱10’이 아시아 선수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온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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