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야권의 심장’ 호남 민심이 요동치고 있다. 호남은 선거 때마다 전략적 선택을 해 왔다. 이른바 ‘이길 수 있는 후보를 밀어주는 게’ 호남 민심이다. 현재 호남을 두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예비후보와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단판 승부를 벌이고 있다.

당내 경선은 예선이다. ‘맛보기 승부’인 예선에서 호남 민심은 공평하게 문 후보와 안 후보를 동시에 지지해 줬다. 하지만 때가 되면 호남 민심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문 후보일지 안 후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호남 민심을 얻어야 대통령에 당선될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호남 시민들은 고민에 빠졌다. ‘준비된 후보’로 대세론을 입증하고 있는 문 후보를 뽑아야 할지 ‘제2의 안풍(安風)’을 예고한 안 후보를 뽑아야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남 민심이 갈라지면 야권 후보인 문 후보와 안 후보에게는 치명타다. 반 토막 난 호남 민심으로는 정권교체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길 수 있는 후보’ 밀어줬던 호남, 올해는?
‘제2 안풍’으로 문재인 추격하는 ‘강철수’ 안철수


지난달 28일 문재인 예비후보는 더불어민주당 호남권 순회경선에서 총 60.2%를 득표해 ‘대세론’을 입증했다. 안철수 후보도 앞선 국민의당 호남권 순회경선에서 총 64%를 얻어 ‘제2의 안풍’을 예고했다.

호남은 늘 ‘가능성 있는 후보’ ‘이길 수 있는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지금까지는 문 후보와 안 후보를 동시에 지지해 주고 있지만 본선이 시작되면 결국 호남 민심은 정권교체에 적임자인 한 사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후보 평가 중’이라는 소리다.

문 후보 캠프 측은 호남권 순회경선 득표율에 대해 예상했다는 반응이었다. 국내 다수의 언론에서는 ‘반문정서’를 이유로 문 후보의 과반 득표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호남 시민들은 60%가 넘는 지지를 보내줬다. 만약 문 후보가 50% 이하의 지지율을 얻었다면 ‘반문세력’의 추격은 더욱더 거세졌을 것이다.

64%의 지지를 얻은 안 후보의 득표율은 ‘깜짝 소식’이었다. 다른 후보들보다 지지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득표율이 잘 나왔다. 덕분에 ‘안풍’이 제대로 불고 있다. ‘자강론’을 주장하는 안 후보는 이제 중도보진영의 단일후보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사실 안 후보의 경우 호남권 순회경선 직전까지만 해도 지지부진한 지지율로 문 후보와의 경쟁은 승산이 없을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문재인과 안철수
호남 민심 구애 중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 준 호남 시민들에게 ‘호남 차별 철폐’를 약속했다. 문 후보는 사실상 호남 출신 총리를 공약했고 안 후보는 인사·예산 차별 철폐를 제시했다.

대선 판도가 문 후보와 안 후보 1:1 구도로 진행된다면 이들의 구애 수위는 더욱더 높아질 전망이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 ‘호남의 선택’은 필승 조건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호남 민심이 두 후보를 공평하게 지지해 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때가 되면 호남 시민들은 진정성을 평가한 뒤 결국 ‘전략적 지지’에 나설 확률이 높다.

호남 시민들이 전략적 지지자를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사이 안 후보는 문 후보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기존에는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에 지지율이 밀렸지만 최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안 지사와 이 시장을 제친 것으로 드러났다.

쿠키뉴스가 의뢰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가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조사해 지난달 28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문 후보는 안 후보와의 양자 대결에서 44%의 지지를 받았다. 안 후보의 지지율은 40.5%로 둘의 차이는 3.5%였다.

이번 조사는 전국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ARS여론조사(유선전화49%+휴대전화51% RDD 방식, 성·연령·지역별 비례할당 무작위 추출)를 실시한 결과다. 표본수는 1,026명(총 통화시도 3만 75명, 응답률 3.4%,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포인트)이다. 그밖의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호남 시민 눈길 끈
안철수의 도전

 
안철수 후보의 선전은 호남 시민들을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당초 문재인 후보가 꾸준히 지지율 1위를 기록해 온 만큼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역시 문재인’이라는 여론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안 후보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안 후보는 여러 차례에 걸쳐 “이번 대선은 문재인과 안철수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 뒤 승리를 자신해 왔다. 그는 지난달 26일 전북 경선에서 승리한 후 발표한 입장문에서도 “국민의당 중심으로 정권을 교체하라, 문재인을 이기라는 호남의 명령을 기필코 완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독철수’ ‘강철수’로 변신하고 ‘자강론’을 내세우며 묵묵히 움직이는 안 후보의 모습에 호남 시민들이 하나 둘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안 후보는 이미지 변신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것이 발성이다. 안 후보 목소리에 대해 평소 작고 떨리는 목소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안 후보는 복식 발성으로 목소리가 더 굵고 커졌다. 표현의 강도도 더 세 졌다. 더 이상 웃기만 하는 선비가 아니다.
 
“지지율 1위는 내줬지만…”
호남은 국민의당 텃밭

 
안철수 후보가 호남에서 문재인 후보와 경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민의당이 호남 기반의 당이기 때문이다. 비록 문재인 후보에게 호남 지지율 1위를 내줬지만 국민의당의 정치적 텃밭이 호남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국민의당은 39명 의원 중 23명이 호남 지역구 의원, 당원 절반 이상이 호남 출신으로 호남 지분이 압도적이다. 호남은 총선에서도 국민의당과 안 후보를 밀어줘 호남을 대변하는 3당을 만들었고 이 같은 믿음을 대선까지 이어갔다.

이런 가운데 문 후보 및 캠프 영입 인사들의 말실수가 안 후보의 경쟁력 상승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문 후보는 ‘전두환 표창’ 발언으로 호남 시민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았다. 비록 문맥을 살펴보면 문제가 없는 발언이었지만 ‘전두환’이라는 이름 자체가 금기어인 호남 시민들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문 후보 측의 실수들이 이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미국으로 떠나 있는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5·18 발포가 전두환 지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문 후보는 그야말로 대세 후보다. 대선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는 만큼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당선까지 문제없을 거라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의 잦은 실수들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빗물에 돌이 갈라진다’는 옛말이 있다. 실수가 잦으면 실망이 쌓인다. 실망이 쌓이면 국민들은 언제든지 지지를 거둘 수 있다. 호남 민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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