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막이’ 우르르… 유착의 또 다른 단면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상장사 주주총회가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3월 넷째 주에는 12월 결산 상장법인 총 1017사가 정기주총을 개최했다. 12월 결산 상장법인 2070사 중 현대자동차 등 253사가 이미 정기주총을 완료했고 782사가 3월 다섯째 주 이후로 정기주총 개최를 확정했거나 마무리됐다.

증권시장별로 유가증권시장은 삼성전자 등 451사, 코스닥시장은 손오공 등 552사, 코넥스시장은 줌인터넷 등 14사다.

이들 기업의 사외이사 선임 출신 성분을 분석해 보면 교육계 인사를 제외하고 ‘세무(금융)’와 ‘법조’ 두 갈래로 나뉜다. 특히 오너 리스크가 존재하는 기업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일요서울은 대기업별 사정기관 고위직 출신 영입에 대한 두 얼굴을 알아본다.

기업 사외이사 절반 퇴직 관료 집합소
“무조건 반대보다 전문성과 독립성 봐야”

기업의 사외이사 선정 문제는 매년 지적돼 왔다. 관료 출신 영입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면서도 이듬해 주주총회 기간이 되면 새로운 사외이사 선임 또는 재임 과정에 관료 출신이 대거 영입되면서 논란이 되곤 한다.

실제로 30대 그룹의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지난해보다 더 높아졌다. 전체 사외이사 611명 중 관료 출신은 42.9%로 절반에 육박한다.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1.8%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또 전체 관료 출신 사외이사 가운데 법원과 검찰, 청와대 등 소위 권력기관 출신이 절반을 차지한다. 이어 국세청과 관세청,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선호도도 높다.

관료 출신 비중 43%, 전년비 1.8%p↑

대기업들이 상당수 사외이사를 관료 출신으로 채우다 보니 사실상 경영진에 대한 견제 역할이 아닌 다른 의도가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의 대(對)정부 로비를 위한 중용이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업 경영진의 불법·탈법 행위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보다는 또 하나의 대관 조직으로 전락했다”며 “사외이사 구성원들의 이력을 보면 본래의 목적보다는 대관이나 다른 경영상의 의도가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사외이사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논란이 설득력 있다. 지닌달 20일 LG전자는 주주총회를 열어 백용호 전 국세청장을, LS산전은 이병국 전 서울청장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백용호 전 국세청장은 이명박 정부 시절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세무법인 T&P고문이다.

이병국 전 서울국세청장은 사외이사(감사위원)으로 재선임됐다. 이 전 서울청장은 현재 이촌세무법인 회장이다.

LG 방계 회사 뿐만 아니라 대기업들에서도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 모시기에 나선 모양새다. 박용준 전 국세청 차장(CJ사외이사), 임창규 전 광주지방국세청장(현대글로비스 사외이사, 현 김앤장 고문), 이전환 전국세청 차장(이마트 사외이사), 김문수 전 국세청차장(신세계인터내셔날 사외이사), 이병대 전 부산국세청장(현대위아 사외이사, 세무법인 세연 회장), 이명래 전 광주지방국세청장(풍국주종공업), 손윤 전 서울청납세자보호담당관실(신화인터넥 사외이사-현, 세무법인 오늘 대표) 등이 3년간 대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한다.

유통업계는 각 정부기관 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사외이사를 대거 등용하고 있다. 이는 경제민주화 바람과 맞물려 유통업계 전반에 휘몰아친 ‘갑을 논란’과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위반혐의, 국세청과 검찰의 수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유통업계에 대한 정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기 때문이다.

먼저 롯데쇼핑 신임 사외이사 중 이재원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법제처 처장을 지냈고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관리 대학원장은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던 인물이다. 최석영 UN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은 외교통상부 FTA교섭 대표, 주미한국대사관 경제공사 등을 역임했다.

현대백화점그룹 계열 현대그린푸드는 감사원 재정경제감사국 출신의 박승준 김&장 고문을 사외이사로 올렸고, 현대홈쇼핑도 국세청 조사국 국장을 지낸 김영기 세무법인 티엔피 대표이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올렸다.

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WTO(세계무역기구) 무력화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무역전쟁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분석에 기업들이 통상 전문가 사외이사 영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수석대표와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김종훈 전 국회의원을 24일 주주총회에서 신임 사외이사로 선출할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이사회 산하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여러 인사들 가운데 김종훈 전 의원이 외교통상전문가로 글로벌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어 적임자로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기업들이 자신을 감시해야 할 목적이 아닌 사정기관의 조사에 대비하는 분위기로 이어지면서 선의마저 의심받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관료 출신이라고 무조건 반대하기보단 전문성과 독립성을 갖고 사외이사직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인지를 투자자가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한다.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팀장은 “사외이사 후보의 적합성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이 관 출신인지보다는 충분한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졌는지를 집중적으로 봐야 한다”며 “특히 기관투자자는 합리적인 기준으로 후보를 평가해 주주들에게 의결권 행사 기준을 제시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후적 책임추궁 강화 등 개선책 필요

한편 국내 기업들과는 달리 해외 기업들은 대부분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 미국 포춘 100대기업 사외이사 현황을 보면 전문성 있는 기업 출신 사외이사 비중이 74%로 나타났다.

국내 대기업들도 사외이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이사회 구성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일각에서는 사외이사 무용론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사외이사 제도를 폐지할 경우 지배주주, 경영진에 대한 사전 견제장치가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다”며 “사외이사 제도의 폐기를 논의하기보다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혁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사외이사 자격규제만 강화하는 방식의 기존 개선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자격요건 강화 외에도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회 위원의 분리 선출, 독립주주의 추천권 강화 등 선임 방법 개선, 사외이사에 대한 정보공개 강화, 이사에 대한 사후적 책임추궁 강화 등 다양한 개선책을 논의·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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