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 기록서 삭제된 제5공화국 “안타깝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내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가 출간되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가 지극히 주관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서전은 역사서가 아닌 만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이 여사의 책에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전 전 대통령과의 결혼, 영부인이 돼 처음 청와대에 들어가던 날에 대한 기억, 백담사 생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 대한 추억 등이다. 일요서울에서는 이 여사의 자서전을 들여다봤다.
 
“이희호 여사 통해 김대중 국민통합·화해정신 느꼈다”
청와대 들어가기 전날, 두려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 여사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을 본 첫 느낌은 마치 일기나 편지를 읽는 것 같았다. 정치인의 아내가 쓴 자서전이니 딱딱할 것이란 선입견은 금방 사라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줄곧 ‘그분’이라고 칭하는 호칭 때문일 수도 있다. 자서전을 읽다보면 전 전 대통령을 향한 이 여사의 마음이 어떤지 자연스레 알 수 있다. 다음은 책 첫 페이지에 적혀 있는 문구다.

“나의 애인이었고 신랑이었고 남편인 그분, 자식들의 아버지이고 손자 손녀들의 할아버지인 그분, 대한민국 제11대·제12대 대통령으로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그분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다”
 
백담사 유폐 시절
시작된 글쓰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닌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 출간 소식은 의외였다. 우리나라에서 영부인이 자서전을 출간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자서전을 직접 저술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그녀가 글을 쓴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서전 서문을 읽자마자 궁금증이 풀렸다. 이 여사의 본격적인 글쓰기는 바로 백담사 유폐 시절부터 시작됐다. 이 여사는 서문을 통해 “터져 나올 듯 가슴속 가득 차 있던 울분들을 종이 위에 한 자 한 자 글로 옮기자 모든 미움과 원망과 고통이, 촛불의 그을음을 타고 사라지면서 평안이 찾아왔다”고 적었다. 그녀는 스스로 찾아낸 자연치유법이라고 했다. 살기위한 글쓰기였던 것이다.

이 여사는 스스로 겪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했다. 그녀는 대동맥 혈관 이상으로 쓰러졌던 일을 추억하며 “내가 죽게 되면 써놓은 나의 삶의 진실마저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 일을 끝내기 전엔 죽어도 죽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글에 대한 애착을 표현했다.
 
“자서전은 신음하며
적어간 기록물이다”

 
이순자 여사는 “대통령 퇴임 후 제5공화국은 자랑스러운 우리 현대사의 기록에서 삭제되어 갔다. ‘5공’ ‘1980년대’란 말은 모든 부정적인 것의 대명사가 되었다”라며 “그분이 7년 반의 재임 기간 동안 나라를 위해 바친 모든 땀과 순정, 그리고 그 열매가 마치 유효기간이 지난 식품처럼 사납게 폐기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남편이자 대통령이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을 존경했던 그녀로서는 더욱 가슴 아팠을 것이다.

또 이 여사는 “특히 12.12, 5.17, 5.18에 대한 편집증적인 오해와 정략적인 역사 왜곡 앞에서 나는 몇 번이고 전율했다”고 적었다. 결국 이 여사는 자서전에 대해 “이 책은 내가 그분과 제5공화국을 향해 쏟아졌던 비난의 해일 앞에 묵직한 빗장을 지르고 앉아 신음하며 적어간 기록물이다”라고 밝혔다.
 
청와대 풍경서 느낀
비극적인 기운

 
이순자 여사의 자서전은 역사적인 평가를 담기보다 이 여사 개인적인 생각이 담겼다. 12.12 5.18 등에 대한 내용을 두고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이 여사는 진실을 적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 책에 대해 “내가 문자로 그린 그분의 진실된 초상화”라고 밝혔다.

자서전에는 전 전 대통령과 이 여사가 처음으로 청와대에 들어가던 날에 대한 기록도 있다. 이 여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청와대’라는 단어가 지닌 엄숙함, 무게감이 나를 압도했다”며 “청와대의 생활은 우리 가족들에게 대체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가. 남편은 과연 준비도 없이 맡게 된 그 엄청난 책무의 무게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이 여사는 청와대 풍경에서 정겨움보다 비극적인 기운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녀는 청와대를 ‘흉가’로 표현하며 그 음울함의 원인으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육영수 여사 암살, 박정희 대통령 시해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청와대 주인들에게 잇따랐던 비극의 역사는 저 먼 옛날이 아니라 기억도 생생한 현대사 30년 안에 일어난 사건들이었다”고 적었다.
 
“이희호 여사에 대한
내 존경심도 깊다“

 
이순자 여사는 자서전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 당선자 시절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설득해 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사면을 성사시켰다며 고마워했다.

이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 영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한 내 존경심도 깊다”고 적었다. 그 이유는 김 전 대통령 재임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도 이희호 여사가 전 전 대통령 내외 생일을 꼭 챙겼기 때문이다.

이 여사는 “그분의 생신과 내 생일에 선물을 보내 축하하는 일을 단 한 번도 잊지 않으셨다. <중략> 이 여사는 고령인데도 난 화분과 함께 장뇌삼을 보내면서 직접 쓴 편지까지 동봉해 보내주어 그 정성과 섬세함이 감동을 주었다”고 표현했다.

또 이 여사는 이희호 여사의 행동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실천한 국민통합과 화해의 정신을 새삼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고 적었다.

이 여사의 자서전은 700페이지가 넘는다. 전 전 대통령 내외의 만남부터 군인 시절, 재임 기간인 7년 반 그리고 백담사 유폐, 추징금 환수 시련 등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특히 추징금 환수에 얽힌 이야기들은 그동안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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