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팀>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오랜 기다림 끝에 롯데 신격호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가 지난 3일 오픈했다. 롯데가 1984년 서울시에 초고층 건축물 건립 가능성을 문의한 지 30년 만이다.

신 총괄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남은 인생을 걸고 세계적인 관광시설을 만들겠다. 세계에 자랑할 만한 건축물을 조국에 남기려는 뜻밖에 없다"고 말해 롯데월드타워 건립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설계 단계부터 직접 챙기며 애착을 보였으며 사흘 연속 롯데월드타워 보고만 받았다는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다만 공식 오픈행사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3일 555m 롯데월드타워 그랜드오픈 // 호텔·오피스·주거·전망대 등 갖춰

오랜 꿈은 이뤘지만 개장 행사 불참 // 단일 제과업체에서 국내 5대 그룹으로

<정대웅 기자>

롯데의 30년 숙원사업이던 롯데월드타워가 지난 3일 그랜드 오픈식을 갖고 공식적으로 개장했다.

신동빈 회장은 이날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간담회를 갖고 “롯데월드타워가 드디어 그랜드오픈을 했다. 1987년 사업지로 선정된 이후 30년 만이다”라고 감회에 젖은 뒤 “롯데월드타워는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의 기업보국 정신에서 시작됐다”며 신격호 회장의 공을 분명히 했다.

신 회장은 “그동안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힘에 부칠때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필두로 임직원들과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헤쳐나갔다”며 “이제 롯데월드타워는 국가대표로 자랑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도 롯데월드어드벤처와 연간 1억 명의 관광객을 유치해 관광대국을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건설 단계마다 새 역사

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30년 전인 1987년 “잠실에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며 대지를 매입하면서부터 시작됐다.

2010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됐고 2015년 3월 국내 최초로 100층(413m)을 돌파했으며 같은 해 12월 22일 꼭대기 123층에 대들보(마지막 철골 구조물)를 올렸다.

지난 2월 신 총괄회장의 부지 매입 후 약 30년 만에 사용승인(준공)을 얻고 국내 최고층 건물(123층·555m)이자 전 세계에서 다섯째로 높은 빌딩인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열게 됐다.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쓰인 5만 톤의 철골은 파리의 에펠탑 7개를 지을 수 있는 양이며, 사용된 22만㎥의 콘크리트로는 105㎡형(32평형) 아파트 3500세대를 지을 수 있다. 건설 현장에 투입된 40만 대의 레미콘 차량(8m)을 한 줄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3번 왕복하고도 남을 정도다.

이런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롯데월드타워의 건물 기초는 두바이의 부르즈할리파(두께 3.7m)보다 1.8배 두꺼운 세계 최대 규모의 기초매트(MAT)를 깔아 견고함을 더했다. 이 공사를 위해 5300대의 레미콘이 32시간 동안 8만 톤의 고강도 콘크리트를 연속 타설했다. 초고층 프로젝트를 공적 차원이 아닌 민간기업 주도로 진행된 것도 롯데월드타워가 처음이다.

롯데월드타워는 한때 ‘사고 타워’로 불릴 만큼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공사과정에서 싱크홀이 생기고 인부 사망 등 안전사고도 이어졌다. 5년간 송사로 진흙탕 싸움을 해야했고 성남공항 안전성 문제로 무산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룹 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많았다. 일부는 신 총괄회장이 작고하면 백지화될 사업이라고 수근거렸다.
모든 난관을 돌파한 것은 신 총괄회장의 집념이었다. 입지, 설계, 시공까지 모든 걸 진두지휘했다. 디자인도 23번 변경에 300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본인 병세가 완연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두 번이나 현장을 방문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다. 하지만 신 총괄회장은 롯데월드타워 개장식에 함께하지 못했다.

롯데는 신 총괄회장이 머무르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관할하는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에 롯데 임직원 일동 명의의 롯데월드타워 초청장을 보냈으나 신 전 부회장 측에서 답변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랜드마크로 ‘우뚝’

롯데월드타워는 초호화 시설, 최신식 기술로 완성됐다.
타워의 1층부터 12층까지는 ‘포디움’으로 불리는 금융센터, 메디컬센터, 피트니스센터 등의 복합생활시설이 들어선다. 또 8층과 9층은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확장해 자리 잡을 예정이다.

14층부터 38층까지는 ‘프라임 오피스’로 기업 사무실이다. 프라임 오피스에 지난 13일부터 입주해 있는 롯데물산은 사무실을 국내 최초 스마트 오피스로 디자인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마트 오피스는 직원들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위한 공간으로 지정좌석이 없고 휴게실과 업무 공간을 분리하지 않은 특징을 가진다.

42층부터 71층까지는 오피스텔인 ‘시그니엘 레지던스’ 공간이 들어왔다. 시그니엘 레지던스는 공급면적 기준 209~1227㎡(구 63~371평형)며 총 223실이다.
이 중 최상층에 위치한 7개 룸은 일종의 펜트하우스로 복층형 설계인데 분양 받은 사람이 직접 내부 인테리어를 할 수 있다.

76층부터 101층까지는 6성급호텔인 ‘시그니엘 서울’이 들어서며 108층부터 114층까지는 ‘프리미어 7’으로 1개 층을 모두 사용하고자 하는 기업에게 오피스 공간으로 제공한다.

117층부터 123층까지는 ‘서울스카이(전망대)’로 활용된다. 서울스카이는 전망대로서 개장 기준 500m로 세계 3위의 높이다. 123층에서는 맑은 날이면 서쪽으로 50km 떨어진 인천 앞바다나 송도 신도시 등을 볼 수 있다.

전망대 118층에는 유리로 된 ‘스카이 데크’가 있어 아래 도심과 한강을 보며 걸을 수 있다. 스카이 데크는 전망대 두 곳에 설치돼 있고 방문객들에게 118층 높이를 실감할 수 있는 ‘아찔한’ 기분을 제공할 예정이다. 이 시설물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직접 걸어보며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한다.

롯데 측은 이번에 개장한 롯데월드타워에 해외관광객 500만 명을 포함해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했다. 취업 유발 인원이 2만 명이 넘고, 경제효과는 연간 10조 원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한편 롯데그룹은 지난 3일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롯데의 성공은 일본 고학생 시절 빌린 돈 5만 엔으로 사업을 일으킨 신 총괄회장의 경영 신화와도 역사를 함께한다.

1940년대 초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 우유 배달 등의 일을 하면서 일본 와세다 대학까지 고학했던 신격호 총괄회장은 첫 사업이 폭격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어려움을 겪지만 허물어진 군수공장에서 비누를 만들어내며 사업가의 길에 들어선다. 신 총괄회장은 이후 롯데의 상징이자 뿌리인 껌을 다음 사업 아이템으로 주목하며 롯데의 기틀을 마련한다.

빌린 돈 5만엔으로 시작한 롯데

1961년에는 일본 가정에서 손님 접대용 센베이가 초콜릿으로 대체될 기미가 보이자 초콜릿 생산을 결단하는데 이 결정은 롯데가 초콜릿 시장을 장악하고 종합메이커로 부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후 롯데는 캔디, 비스킷,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부문에도 진출해 성공을 거듭한다. 이후에도 백화점 사업 호텔사업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2004년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에 취임한 신 총괄회장의 차남 신동빈 회장이 취임하면서 본격적으로 ‘뉴 롯데’를 준비해왔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