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재단은 서로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수익사업’을 하는 기업과 ‘공익사업’을 하는 재단이 어쩌다 이런 관계를 맺게 됐을까. 기업은 재단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활동을 한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다. 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기업의 시커먼 속내가 도사리고 있다. 세금 감면이라는 법의 허점을 이용, 재단은 기업의 지배·승계·상속은 물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악용된다. 정치권에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관련 법안 발의 등이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각종 꼼수가 판을 친다. 일요서울은 각 기업의 재단이 어떤 역할을 하며 돕고 있는지 시리즈로 알아봤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광주 지역에서 고 박인천 창업주가 광주택시로 창업한 게 모태다. 이후 광주여객, 금호실업, 아시아나항공 등을 차례로 설립해 운송·물류업에서 화학, 타이어, 건설 부문 등을 아우르며 한때 재계 순위 9위까지 오르는 등 대기업그룹으로 거듭났다. ‘금호’는 박 창업주의 호(號)다.
 
박 창업주는 클래식 음악과 미술, 장학 분야에 대한 지원을 위해 지난 1977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설립했다. 생전에 동양화와 서예 등 문화예술에 관심이 컸던 그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미술관 운영, 학자금 및 장학금 지원, 각종 시상 및 대회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현재 이사장은 박삼구 회장이다. 설립 당시엔 장학사업부터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광주·전남의 향토 문화예술을 지원한 게 재단의 출발이다. 이후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회사를 광주에서 서울로 옮긴 뒤 1990년대 들어 클래식 음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에 공시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34억 원의 고유목적사업 실적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27억 원이 학자금 및 장학금 지원이었고, 영화제 지원 4억 원, 창작스튜디오 지원 1억 원 등이 뒤를 이었다. 재단의 목적사업이 장학금 사업에 집중된 건 박 창업주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평소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았던 박 창업주는 과거 부친 죽호 박영숙의 호를 따 지역 영재를 육성하고 지방 교육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학교법인인 ‘죽호학원’을 설립한 바 있다. 죽호학원은 광주에 금호고등학교, 금호중앙여고 등을 운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총자산가액은 740억 원 규모다. 기업이 운영하는 재단 가운데 비교적 큰 규모에 속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주식 및 출자지분(534억 원)으로 이뤄져있다. 자산총액에서 주식이 차지하는 비율이 72.15%에 달한다. 이어 토지·건물 등 부동산이 160억 원, 금융자산 및 기타 40억 원가량이다.
 
자산의 주식 비중이 높은 건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재단은 금호홀딩스 지분 6.8%(보통주 20만 주), 우선주 57.1%(20만 주)를 갖고 있다.
 
금호홀딩스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사로 지난해 금호터미널과 금호기업의 합병으로 출범했다. 그룹 정점에서 금호산업, 아시아나항공 등으로 이어지는 지배 구조다. 재단은 또 금호산업 지분 0.02%(8352주)을 쥐고 있다. 죽호학원은 금호홀딩스 우선주 42.9%를 보유 중이다.
 
이는 ‘재단을 활용한 경영권 지배’라는 비판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현행법에 따르면 공익재단이 5% 이하의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속·증여세가 모두 면제된다. 성실공익재단의 경우 10%까지 적용된다. 계열공익법인에 주식을 기부하지 않을 경우 최고 세율은 65%나 된다.
 
의결권이 없는 우선주의 경우 보유 주식의 양과 관계없이 전액 감면 대상이다. 이는 경영권 승계 및 유지 과정에 활용이 가능하다. 현 이사장인 박 회장이 아들 박세창 사장에게 이사장직을 물려주면 한 푼의 세금도 들이지 않고 상당 부분의 지분을 물려주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그룹은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이 금호기업 주식을 시가보다도 비싸게 매수하는 등 지배력 강화에 공익법인을 활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회공헌 활동이 목적인 공익법인이 실제로는 재벌 등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분을 가지면서도 배당은 하지 않아 사실상 사업수입이 전무한 점도 지적된다. 문화재단의 2015년 사업수입은 총 80억 원의 기부금이 전부다. 이는 대부분 그룹 계열사로부터 출연 받은 현금이다. 이 가운데 아시아나항공이 가장 많은 30억 원을 내놨다.
 
한 재단 관계자는 “자체 수익사업을 펼쳐 공익 활동에 사용하는 게 재단의 역할”이라면서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은 (자산 가운데) 주식의 비중이 높으면서도 매각이나 배당 등으로 수익을 거의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사장이 사재를 내놓는 것도 아니고 계열사의 현금 기부로 운영하는 셈이다. 이는 재단의 주식 보유 목적이 지배권 유지나 승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금호아시아나는 문화재단과 죽호학원이 금호기업 주식을 매입한 것은 모든 절차를 밟아서 법적인 하자 없이 진행했으며, 매입한 증권은 상환전환우선주로 시중 정기예금금리(1.5%) 보다 높은 최소 2% 이상의 배당이 보장돼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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