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피살’을 둘러싸고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단교 직전까지 갔으나 두 나라가 김정남 시신과 말레이시아 국민 맞교환에 합의하면서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당초 말레이시아는 김정남 시신 수습에 대해 가족이 먼저라며 북한의 시신 인도 요청을 거절했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는 시신의 북한 이송을 요청한 가족들의 편지를 받았다며 김정남 시신 반출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김정남 시신 인도를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정작 시신의 신원에 대해서는 김정남이 아닌 ‘외교관 김철’이라고 주장하며 김정남 존재를 부인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그런 북한이 시신을 인도해 가자 그 배경을 둘러싸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태영호 “북한의 김정은 정권 내부는 썩어 들어가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권력 승계 이후 곁가지론 사라졌다


북한이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 가면서 더 이상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해졌다. 김정남 살해 배후가 북한이라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시신이 없어진 이상 더 이상의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북한이 말레이시아 국민들을 볼모로 삼으면서까지 김정남의 시신을 인수해 가자 그 배경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북한은 김정남의 존재를 부인해 왔다. 그런데 왜 김정남의 시신을 인도해 가려 했을까.

김정은, 정체성과 명분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어


최근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는 북한이 김정남 시신을 가겨간 이유에 대해 “김정은 체제가 안고 있는 정체성과 명분 문제”라고 분석했다.

태 전 공사는 지난달 2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비공개 간담회에서 “현재 북한의 김정은 정권이 겉으로는 공고해 보이지만은 내부는 썩어 들어가고 있고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면이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의 공산주의체제를 설명하며 북한이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유교문화의 영향권에 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교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체성과 명분을 가장 먼저 따진다”고 부연했다.

태 전 공사는 “김일성이 자기가 북한의 지도자로 나서기 위해서 엄청나게 역사를 수정했다. 국민들 앞에서 자기가 지도자라는 것을 납득시키기 위한 명분이 있어야 했다. 김정일도 똑같았다”고 전했다. 반면 김정은의 경우 정체성과 명분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 전 공사는 “2009년까지는 사람들이 김정은의 존재를 몰랐다”며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 지난 과거조차 밝히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는 “김정은이 자기가 백두혈통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김일성이하고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금 김정은으로서는 이 문제를 해명하고 가야할 사안인데 이것을 해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김정은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로 (알고)있다”고 전했다.

김정남 내친 이유
김정일이 만든 곁가지론 때문


태영호 전 공사는 김정은의 취약한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해 북한 노동당의 근간인 곁가지론을 설명했다. 곁가지론은 김정일이 자신의 후계구도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든 이론이다.

태 전 공사는 “생물로 말하면 나무가 제대로 토양에서 곧추 자라려면 기본 줄기가 곧바로 자라야 한다. 기본 줄기가 자라려면 곁가지는 잘라내야 한다. 이게 북한 노동당의 곁가지론”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걸 뒤집어 놓고 말하면 김일성이 후계자를 임명할 때가 되면 나(김정일)를 임명해야 한다. 내가 맏아들이기 때문에. 맏아들로 북한체제가 세습이 되어야 한다. 여기에 위배되는 것은 곁가지로 잘라버려야 한다”라는 게 김정일의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곁가지론은 김정일이 후계구도를 세우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곁가지론에 따르면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에게 북한의 정권이 넘어가야 하지만 김정남의 생모와 외할아버지가 문제가 됐다.

김정남의 생모는 북한의 일등 국민배우인 성혜림이다. 태 전 공사는 그녀에 대해 “제가 아이 때 티비를 틀면 성혜림 영화밖에 안 했다. (성혜림이) 북한 영화는 다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성혜림은 김정일과 만나기 전에 이미 딸까지 낳은 유부녀였던 것이다. 그녀는 월북 소설가로 유명한 소설가 이기용의 맏며느리였다.

태 전 공사는 이에 대해 “이기용의 맏며느리로서 그 집에 시집가서 딸까지 낳은 것을 모르는 북한 사람이 없는데, 그런데 김정남을 올리면 어떻게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또 “자기 공식 부인도 아닌데, 결국 김정남이 맏아들이지만 맏아들의 권위를 줄 수가 없어요. 그래도 김정은이 비록 생모 고영희도 공식 부인은 아니지만 둘을 비교해 보면 김정은이 더 나은 거예요”라며 “그래서 김정은한테 권력을 넘겨주었다”며 김정은의 권력승계 비화를 설명했다.

시신 못 가져가면
정체성 시비 때마다 언론 주목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권력 승계 이후 곁가지론이 사라졌다. 이후 등장한 것이 바로 백두혈통론이다.

이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백두혈통론은 맏아들이든 둘째아들이든 막내아들이든 관계없다. 피가 중요하다. 김정은이 막내아들이다. 그러니까 백두혈통론이 나오고 있다. 지금 이게 김정은의 가장 큰 콤플렉스”라고 설명했다. 결국 이러한 콤플렉스를 없애기 위해 김정은이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저 형님이 외국에서 어른들하고 만나고 북한에 이런 소식이 점점 들어가면 북한사람들이 의문을 갖지 않겠죠”라며 김정남·김정철·성혜림·고영희 등의 존재에 대해 “북한의 누구도 모른다. 이게 퍼지는 날에는 정체성과 명분 문제에서 큰 파장이 난다”라며 김정남 피살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또 태 전 공사는 “북한은 지금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저(김정남) 시신을 가져가려 한다”며 이들이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에 대해 “김정은 정권의 명분 정체성을 얘기 할 때마다 김정남의 묘를 언론들이 집중할 거다. 그래서 시신을 꼭 가져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지금도) 김정은 정권의 명분 정체성을 얘기할 때 마다 외국 언론들이나 한국 언론들이 김정남은 찾을 수 없으니 모스크바 공동묘지에 있는 성혜림 묘를 비춘다”며 “성혜림은 김정일의 첫 번째 여성이다. 이 사이에서 난 김정남이 첫째 아들이다. 이걸 계속 언론들이 비춘다. 이걸 시신을 못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라고 되물었다.

김정은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원천 차단하고 체제 안정을 꾀하기 위해 위해요소가 될 만한 것들을 없애기 위해 김정남의 시신을 북으로 가져가려 한다는 게 태 전 공사의 생각이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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